롯데는 지난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본지는 롯데가 두 차례 우승할 때 영광을 함께했던 코칭스태프와 옛 선수들에게서 우승의 비법을 물어봤다.
# 팀은 필승 의지로 똘똘 뭉쳐 상승기류 타고
- "이기겠다" 의기투합 승리 밑거름
- 84년 최동원-92년 염종석·박동희
- 어려운 경기 뒤집은 일등공신들
- 선수 신구조화… 고참 역할 중요
■분위기-응집력
1984년 우승 주역인 김용희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우승의 비법으로 분위기를 꼽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응집력이 우승의 필수 요소라고 지적했다. 응집력이란 한마디로 이기겠다는 의지로 선수들이 똘똘 뭉치는 것이다. 1984년의 경우 그럴 만도 하다. 롯데는 1984년 전기리그에서 21승28패1무(승률 0.429)로 6개 팀 중 4위로 처졌다. 이 정도면 후기리그도 크게 기대할 만한 성적이 아니다. 그러나 롯데는 후기리그에서 29승20패1무(승률 0.592)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알고 있는 시즌 막판 삼성의 져주기 게임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후기리그에서 롯데의 돌풍이 없었다면 져주기 게임도 없었다. 그만큼 후기리그에서 롯데 선수들은 똘똘 뭉쳤다.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강병철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우승은 꿈도 못 꿨다. 전력 차가 너무 커 우승은 고사하고 일단 서울까지만 가서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1, 2차전은 대구 원정경기를 했고 3, 4차전은 구덕 홈에서 치렀다. 나머지 5~7차전은 중립지대인 서울에서 경기를 가졌다. 당시 삼성 사령탑이었던 김영덕 감독은 강병철 감독에게 훗날 "눈 감고도 이길 줄 알았는데 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을 만큼 롯데와 삼성의 전력 차는 컸지만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롯데가 첫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응집력은 두 번째 우승을 했던 1992년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멤버였던 이종운은 "우승보다는 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당시 2~4년 차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 롯데는 정규리그에서 강팀이던 빙그레, 해태, 삼성 등과의 경기에서 19승35패로 몰렸지만 OB, LG, 태평양 등 약팀에게는 40승14패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71승55패(승률 0.563)를 기록해 선두 빙그레(81승43패, 승률 0.651)에 무려 11게임이나 뒤진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롯데는 특유의 응집력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한국시리즈에서는 당시 최강이던 빙그레까지 격파하고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하겠다는 정신력으로 뭉치면 얼마나 팀 전력이 강해지는지 두 번의 우승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미친 선수(?)
야구계에서는 흔히 우승하려면 소위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이 부분은 굳이 당시 선수들에게 비법을 물을 필요조차 없을 만큼 유명하다. 더욱이 롯데는 두 번의 우승을 하면서 미친 선수 덕을 톡톡히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부산이 낳은 최고 야구 영웅 최동원이다. 최동원에게 미쳤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원래부터 한국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스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동원은 1984년 확실히 달랐다. 기록부터 보자. 그해 전기리그에서 9승을 올렸던 최동원은 후기리그에서 롯데가 치렀던 50게임 중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무려 31게임에 등판, 18승6패5세이브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다. 후기리그에서 팀이 거둔 29승 중 23승, 즉 79%를 혼자서 해냈다. 시즌 성적은 27승13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이다. 절대 열세라고 불리던 한국시리즈에서 롯데가 삼성을 꺾을 수 있었던 비결은 최동원 때문이었다.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4경기 선발을 포함해 5경기에 등판해 4경기를 완투하면서 무려 40이닝 동안 볼을 뿌려 4승을 올렸다. 1984년 우승의 1등 공신이 최동원이었다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야구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작 한국시리즈 MVP는 유두열 차지였다. 유두열은 가장 극적인 순간 딱 한 방으로 MVP를 거머쥐었다. 운명의 7차전 3-4로 뒤지던 8회 1사 1, 3루에서 김일융을 상대로 좌월 스리런 홈런을 터뜨려 6-4로 만든 주인공이다. 아이러니하게 그 전 타석까지 유두열의 한국시리즈 기록은 고작 20타수2안타였다.
1992년에는 염종석이란 걸출한 신인이 등장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갓 롯데에 입단한 염종석은 192㎝의 큰 키에서 내려꽂는 직구와 칼날 같은 슬라이더를 앞세워 정규리그에서 17승9패6세이브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염종석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0 완봉승을 이끌어내 롯데 우승의 분위기를 잡았다. 염종석은 해태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8회 선발 윤학길을 구원등판해 3회를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된 뒤 1승2패로 벼랑끝에 섰던 4차전 선발로 나와 해태 타선을 6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4-0 완봉승을 이끌어냈다. 염종석은 운명의 5차전에서는 마무리로 나와 세이브까지 올렸다. 플레이오프에서 2승1세이브.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는 200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박동희가 2승1세이브로 독무대를 이루면서 MVP를 받았다.
참고로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 명의 미친 선수가 더 있었다. 2차전 선발 윤형배와 4차전에서 맹타를 휘두른 조성옥이다.
# 선수는 경기마다 한명씩 미치고 운도 따라야
윤형배는 롯데가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2차전에서 빙그레가 정민철을 투입하자 주력투수들을 아끼기 위해 꺼낸 버린 카드였다. 그러나 윤형배는 의외로 8회까지 무실점의 호투를 하면서 롯데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윤형배의 예상치 못한 호투로 롯데는 2연승을 거두고 빙그레를 확실히 압도해 4승1패로 시리즈를 거머쥐었다. 또 노장 조성옥은 4차전에서 2루타 두 개를 포함해 5타수5안타의 맹타를 터뜨려 팀의 6-5 승리를 이끌었다.
■체력&젊은 패기
1984년과 1992년 두 번의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조성옥과 김민호 등 몇 안된다. 그 중 조성옥에게 우승 비법을 묻자 "첫째도 체력이고 둘째도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옥은 지난해 롯데를 예로 들었다. 롯데는 지난해 7월 말 체력이 떨어지면서 승률이 5할 밑으로 추락해 순위가 5위까지 처졌다. 그 뒤 베이징올림픽으로 한 달 가까운 휴식기를 가지고 재충전한 롯데는 파죽의 11연승으로 힘을 냈다. 조성옥은 로이스터 감독의 자율야구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는 아직 선수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길 수 있는 문화가 안돼 있다. 체력 문제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4년이나 1992년 후반기에 롯데가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이유로 조성옥은 체력을 꼽았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강병철 감독은 훈련을 많이 시키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조성옥은 "강 감독이 무식할 정도로 훈련을 시켰다. 매일 훈련한 양을 뛰는 거리로 치면 30㎞는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체력은 곧 훈련량과 직결된다. 이 문제는 지난 시즌 줄곧 프로야구 화두가 됐다. 지독한 강훈련을 시킨 SK 김성근 감독과 자율야구를 주장한 로이스터 감독의 지휘 방식은 언제나 비교 대상이 됐다.
다른 구단에 비해 롯데가 유독 체력 문제에 민감한 이유가 있다. 롯데는 매년 '봄데'라 부를 만큼 시즌 초반 잘나가다가 6월부터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여름철에 체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는 롯데의 이동거리와 관련이 있다. 수도권이 아닌 부산 사직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롯데는 다른 팀에 비해 이동거리가 훨씬 길다. 지난해 롯데의 이동거리는 1만1404㎞로 2위 KIA(9156㎞)보다 훨씬 길다. 더욱이 가장 적었던 히어로즈(6149㎞)의 배에 가깝다. 이는 길바닥에 선수들이 체력을 다 쏟아붓고 다닌다는 말이다. 2007년도 마찬가지였다. 8개 구단 중 롯데만 유일하게 1만98㎞로 1만㎞를 넘겼다. 이 때문에 지난해 로이스터 감독은 부산에서 서울로 원정갈 때 비행기 이동을 도입했다.
이와 관련해 1992년 우승 멤버 공필성은 또다른 의견을 내놨다. 1992년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패기로 체력 문제를 극복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를 분석해보면 일단 1984년은 제외해야 한다. 프로야구 출범 3년째여서 굳이 나이나 연차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다만 1984년 활약했던 32명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6.1세였다.
그렇다면 1992년은 어떨까. 당시 경기에 뛰었던 30명의 평균 나이는 26.3세였고 평균 연차는 4.6년에 불과했다. 특히 1~5년차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당시 롯데는 5명의 3할 타자를 배출한 공포의 소총타선이었다. 1~5번에 포진한 선수들이 그 주인공이다. 톱타자로 뛰었던 전준호(0.300)가 2년차로 23세였고 2번 이종운(0.314)은 4년차에 26세였다. 3번과 5번을 번갈아 쳤던 박정태(0.335)는 2년차에 23세, 김응국(0.319)은 4년차에 26세였다. 유일하게 4번 김민호만이 프로 9년차에 나이도 30세를 넘긴 31세였다. 그만큼 롯데는 젊었다. 이뿐 아니다. 하위타선에 있었던 박계원은 22세에 신인이었고 공필성 역시 3년차로 25세였다. 포수를 번갈아 봤던 김선일(4년차)과 강성우(신인)도 프로경력이 짧았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올해 롯데의 우승 전망(?)은 밝다. 롯데는 올해 선수들 평균 나이가 27.2세로 두산(26세)에 이어 두 번째로 젊고 평균 연차도 6.8년으로 두산(5.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짧다.
■ 신구조화
1992년에 공포의 소총타선 일원이었던 이종운은 신구 조화가 우승의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종운은 "고참들과 후배들이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관계에서 후배들이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고 선배들은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2년 롯데는 세대교체를 하면서 젊은 선수들이 대거 주전으로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참들의 역할도 컸다.
마운드에서는 에이스였던 7년차 윤학길이 활약했다. 윤학길이 중심을 잡으면서 3년차 박동희, 신인 염종석, 윤형배 등이 활약할 수 있었다.
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1~4년차들을 이끈 고참은 4번 김민호였고 8년차 한영준, 9년차 조성옥 등도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을 견인했다.
지난 2001년부터 롯데가 암흑기에 빠졌을 때 전문가들은 고참 선수 부재를 부진의 한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롯데가 전력보강을 이유로 고참급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하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올 시즌은 사정이 다르다. 야수 최고참으로 박현승이 버티고 있고 투수진에는 손민한이 후배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 운(?)
두 번의 우승을 맛봤던 김민호는 다소 엉뚱하게 운을 우승의 비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우승은 하늘에서 점지해 준다. 모든 팀이 비슷한 양의 훈련을 하고 정성을 들이지만 어느 순간 우승은 정해진다. 전력이 아무리 좋아도 우승 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호는 두 번 우승할 당시의 운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롯데가 첫 우승할 때 삼성이 져주기 게임을 하면서 운을 탔고 최동원이 현재 투수 로테이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도 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다. 1992년 우승할 때도 운이 따랐다고 했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해태와 맞붙었는데 천하의 선동열이 부상으로 한 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하는 행운이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승을 하려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