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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no.7

송명진 |2009.07.14 10:26
조회 1,407 |추천 3

 

 

 

 

 

 

 

 

 

 

 

 

Manchester United no.7

 

 

 

 

 

 

 

 

 

 

 

 

 

 

 

 

 

 

 

 

 

 

 

 

 

 

 

 

 

 

 

 

 

 

 

Manchester United no.7

 

 맨유의 전설이자, 영국의 전설. 초대 N0.7 조지 베스트입니다.  196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한 그는 A매치 통산 37게임/9골(평균 0.24골)을 기록하였고, 프로 통산 474게임/180골(평균 0.38골), 67-68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28골), 1968년 올해의 유럽선수상, 1968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때 우승이 맨유에겐 첫번째 챔스우승이였습니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조지베스트는 펠레,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우워와 함께

세계 축구역사를 대표하는 스타중에 한명입니다.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남겼던 출중한 기량과 업적은

아직도 수많은 축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1968년 맨체스터에 구단 역사상 첫 챔스리그 우승을 안겨주었고

유럽 최우수 선수상마저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지나친 음주와 약물 복용, 여성 편력 등 잦은 스캔들을 일으키며 사생활이 복잡해진 조지 베스트는

결국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맨체스터를 떠났고

주로 2류 구단들을 전전하다 은퇴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이후 화려하고도 짧았던 전성기를 보낸 조지 베스트의 등번호였던 no.7은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노 호날도가 이어받으며

맨체스터의 가장 인기 있는 등번호로 자리잡았습니다.

 

은퇴이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자주 언론에 등장하였으나 조지베스트의 건강이 위태롭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퍼거슨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조지 베스트보다 나은 선수를 찾기란 매우 힘든 일

이라는 극찬과 함께 그를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빠른 쾌유를 빌었으나  

 

향년 59세.. 2005년 11월25일 폐렴과 내출혈로 인하여 사망하였습니다.

 

 

 

 

 

 

 

Manchester United no.7

 

 

 

에릭칸토나는 1990년대에 맨체스터의 no7 이였습니다. 

킬패스, 드리블, 스피드, 테크니컬, 파워풀, 몸싸움, 발리슛, 정확하고 강한 슈팅력,

팀의 정신적지주역할,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엄청난 카리스마였습니다.

 

칸토나는 마치 지단같은 플레이스타일을 구사했습니다.

칸토나는 루드만큼 득점을 많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루드보다 득점력이 없다는건 아니였고,

다만 팀플레이에 치중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팀의조직력의 핵심이였고, 반니보다 60여골가량 적게넣은것을 팀선수들에게 어시스트했습니다.

 

지금 2009년 현재까지도 맨체스터팬들에게

"맨체스터에서 뛰는선수, 혹은 뛰었던선수들중, 가장 사랑하는(좋아하는)선수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했을때,

가장많은 대답이 에릭 칸토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맨유맨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중 하나가 인터밀란의 영입제의를 딱 한마디로 거절한것이였습니다.

"나는 맨체스터에서 죽고싶다."

이 한마디에 인터밀란은 칸토나영입을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칸토나의 단점은 엄청난 다혈질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단점때문에 맨체스터팬들에게 사랑받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쿵푸킥사건으로도 유명한 칸토나는 그만큼 카리스마있고,다혈질에다가,자존심이 강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혈질하면 떠오르는 선수들(카리스마가 있는 선수),

퍼디난드, 스미스, 루니, C.호날두 이들은 칸토나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라고 봅니다.

 

킨도 칸토나에비하면 한수아래이죠;

상대 선수가 킨을 건들면 킨에게 욕만드럽게먹고 다들 입을 다무는 수준입니다만

칸토나를 건들면,

 

그냥 쳐맞습니다-_ -

 

그냥 하는소리가 아니라 진짜 맞습니다;

실제로 발로 상대선수 얼굴을 갈긴적도 있고, 자신의 옷을 잡고 신경전을 부리던 선수를  밟아버린적도 있습니다;

 

 

 

 

제일유명한건 뭐니뭐니해도 쿵푸킥이죠..

 

 

 

쿵푸킥사건은 1995년 1월 2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칸토나는,

자신에게 심한욕을 한 관중에게 날라차기를 했습니다.

 

날라차기가 약간 빗나가자 한번더 발길질을 하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이사건은 뉴스에 많이 보도되었고. 칸토나는 결국 8개월간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거의 한시즌을 쉬었다고 보면되는것이죠.

 

 

칸토나는 1993~1997시즌까지 5년동안 맨체스터에서 뛰었습니다.

5년동안 4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번의 FA컵 우승을 안겨주었죠.

아이러니하게도 1번놓친 리그우승은

1995년 쿵푸킥사건으로 8개월간 출장정지당한 시즌이었습니다.

칸토나가 없다고 봐도 될 딱 한번의 시즌에 리그우승을 못한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맨체스터엔 칸토나의 중요성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퍼거슨감독은 수많은 비난을 무릅쓰고 칸토나와 재계약을 하게됩니다.

 

칸토나는 31살의 다소 이른나이에 은퇴하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량이 예전만큼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칸토나자신이 말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칸토나다운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Manchester United no.7

 

 

 

말이 필요없는 선수 데이비드 베컴입니다.

 

맨유 시절의 베컴은 킥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체력도 절정기라 풀타임은 기본으로 소화했을뿐 아니라,

돌파능력도 자주 보여주었고 심지어는 수비에도 신경을 쓰면서

좌-긱스 우-베컴 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게다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에 로이킨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스콜스

맨체스터의 황금 허리라인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출중한 외모와 세계적인 실력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고

퍼거슨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는 선수가 아닌 스타 한명을 가지고 있다.

라고 베컴을 비판하기도 하였죠.

이 불화는 점점 커져가고 결국 그는 맨유를 떠나게 됩니다.

 

 

06/07시즌 레알에서 마찬가지로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의 불화로 LA갤럭시로 계약을 하게되었고

그 시즌에 마지막으로 레알에 우승컵을 안기고 떠났습니다.

 

킥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해서 처리하였고

크로스 능력과 공간을 침투하는 로빙패스또한 세계일류라고 칭송받을만 합니다.

A매치에 100경기 이상 출전해,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한상태입니다.

 

베컴의 단점이라면 드리블능력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다른 선수들에 비하여 떨어지는 능력이고

현재의 나이로 보아 체력적인 안배또한 문제가 되어있으나

여전히 그의 킥 능력은 정평이 나있습니다.

 

 

레알과 LA갤럭시를 거쳐 현재는 AC밀란에서 임대생활 중입니다.

전성기때의 활동량과 돌파능력은 확실히 줄어 들었지만,

 현재도 크로스와 프리킥면에서는 베컴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Manchester United no.7

 

 

 

 

크리스티아노 호날도는 모든 최상급을 다 갖다 붙여도 아깝지 않은 선수입니다.

그는 이제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가장 다이나믹한 공격수로 성장했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망하고 화려한 선수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18세 소년은 엄청난 이적료로 갑작스럽게 맨체스터에 합류했습니다.

바로 2003년 여름 스포르팅에서 친선 경기를 가진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선수들이 그를 영입해야한다고 퍼거슨 감독을 설득한 것이였습니다.

유럽 정상의 클럽들도 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기에,

상황이 꽤나 급박하였고, 퍼거슨 감독에게는 놓쳐서는 안되는 선수였습니다.

 

호날두는 2003년 8월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볼튼과의 경기에서 30분간 데뷔전을 펼였고,

그는 그 짧은 30분동안 자신의 놀라운 스킬들을 뽐내며 베컴이 떠난 N0.7 셔츠를 입은 자신을 알렸습니다.

그 이후 39경기에 출전해 FA컵 결승전에서의 선제골을 포함해 8골을 터트리며

 03/04시즌 Sir matt busby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번째 시즌에서는 첫 번째 시즌에 비해 약간 못미치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04/05시즌 50경기에 출전해 9골을 터트렸고, 

05/06시즌 후반부에는 그는 지금까지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 독일월드컵이 열렸고, 그

에겐 분명 인생에 있어 터닝 포인트였을꺼란 기대감과 함께 경기에 임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호날도는 루니의 퇴장에 대한 모든 죄를 각종언론에의해 뒤집어썼고,

잉글랜드에서 호날도에 대한 감정은 갈수록 악화되어갔습니다.

인 자신도 상당히 겁이났던지 잉글랜드에 돌아가는것을 두려워했고 싫어하였으나,

퍼거슨 감독이 직접 설득하여 그를 안심시키고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됩니다.

 

06/07시즌 리그우승은 분명 팀 전체의 노력의 결과였고

로날도와 루니의 대활약은 언론에 나돌던 두 선수간의 불화설을 완전히 쏙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호날도의 눈부신 윙 플레이는 꾸준한 어시스트와 수많은 골들고 이어졌습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 주변 5경기에서는 7골을 터트리기도 하였습니다.

공격수로서의 골결정력도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계기였습니다.

 

그 해 14개에 달하는 개인상을 수상하였고,

다른 클럽으로부터 수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2012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이적설을 일축시켰습니다. 

 

그는 훌륭한 외모로 인해 전세계팬들의 사랑을 받고있고

배컴에 버금가는 엄청난 상업적가치를 얻게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이번 시즌 그는 그토록 간절히(?)도 원하는 레알행을 선택하였고

세계최고의 대우와 역사상 최대의 계약금인

8천만파운드(1600억원)을 받고 맨체스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Manchester United no.7

 

 

 

09/10시즌에 맨유에 입단하게 된 마이클오웬은 no.7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오웬은 타켓맨입니다.

단신이며 체격이 좋지 않기 때문에 헤딩이 약하고 포스트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는 아니지만,

빠른 발을 장점으로 오프사이드트랩을 부술수 있는 선수고,

패널티박스 안에서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골을 노리는 타고난 골게터입니다.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오웬은 리버풀에 입단해서 최연소 득점 기록을 차례대로 갱신하면서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이 부분의 기록도 갈아치우며,

국가대표 데뷔전인 칠레와의 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고,

모로코와의 A매치에서 국대데뷔골을 넣으면서 역시 최연소 국대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우죠.

 

본격적으로 리그에서 데뷔했다고 볼 수 있는 97/98 시즌부터 해서

오웬은 해마다 2자리 이상의 득점수를 기록합니다.

골 넣는것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정도로 잘 넣었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9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데이비드 베컴의 찔러 넣어준 패스를 받아

수비수를 농락시키며 골을 성공시키며 원더보이라는 말을 얻게 됩니다.

이 장면을 학교에서 tv로 보고있었는데 정말 그때의 소름이 끼치던 것이 잊혀지지않는군요...



리버풀과의 마지막 관계가 아쉽긴 하지만 어찌됐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10골 이상을 넣었고, 뉴캐슬에 입단을 하고서도 두자리 득점을 이어갔습니다.

 


오웬은 로비 파울러 이후 네츄럴 본 킬러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리는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당한 부상은 지금까지 그를 따라 붙어 괴롭히고 있습니다.

스피드가 주 무기인 선수라 그에 따른 부상빈도가 높아질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팬들은 기다려주지 않는것도 현실이였습니다.

흔히들 오웬을 욕하면서 하는 소리는 '골넣는거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다.' 라는 겁니다.

물론 감독의 전술요구에 맞춰서 움직여주는 스트라이커들도 많고,

패널티 밖에서도 좋은 움직임을 보이며 동료들의 공격가담을 이끌어내는 선수들도 있지만

오웬은 득점이란 부분에서 특화된 선수입니다.

훌륭한 장점이 있는데, 다른 단점들을 굳이 끌어올릴 필요가 있을까요?


저 역시도 오웬의 그런 성향때문에 답답했던 적이 많았지만,

반대로 그런 성향때문에 비길 경기를 뒤집었던적도 있었기에 마냥 비판할수는 없었습니다.

부상과 편견으로 인해 저 평가 받는 선수이기에 최근에는 어린 유망주보다 못하다라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사실 오웬에 대해서는 그렇게 언급할 필요가 없는 선수입니다.

단점이 확연한 선수고, 장점도 확연한 선수입니다.

단지 부상으로 인해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할뿐이죠. 

사실 언론에 너무 큰 기대와 부상이란 악재가 겹치면서 준수하게 골을 넣었음에도 시쳇말로 까이는 선수이죠.

그리고 이 궤를 같이 하는 트레제게나 인자기 그리고 잉글랜드에서의 데포나 파울러 같은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죠.

 


프리미어리그에 무링요와 베니테즈가 입성하면서 원톱에 의한 다변화된 공격패턴이 유행처럼 번졌고,

둘의 공통된 모토였던 '모든 포지션의 득점가능화'를 통해서

더 이상 스트라이커라는 말이 최전방의 공격수가 아닌 팀 내에서 가장 고 득점을 하는 선수로 바뀐 인식이 생겼습니다.

무링요에게는 드록바가 필요했고, 베니테즈에게는 토레스가 필요로 했습니다.

단순히 득점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득점 외에 동료를 활용하는 선수들이 필요로 한거죠.

이 두명은 득점은 물론이고 다른 동료들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타고난 선수들입니다.

어쩌면 더 이상 골만 넣는 선수는 감독들에게 필요한 선수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오웬도 변화에 발 맞춘것인지 모르겠지만

부상당하기 이전에는 쉐도우로써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갑자기 올라와 골을 노리는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 이상 빠른 발을 기대하기 힘든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변화가 옳은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오웬을 보좌했던 헤스키 같은 선수를 감독들이 더 선호하고 있기에

오웬과 같은 선수들은 화려한 무대에서 잠시 밀려난 듯 하지만

뜬금없이 터지는 득점장면들을 이번에 맨유에서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ps. 사실 이렇게 자료들을 모아 Manchester United no.7을 쓰게 된이유는

제가 오로지 오웬의 팬이기 때문이였습니다.

 

여러 기사들과 함께 오웬을 유리몸이라며 부르며 비판하는 분들을 보며

맨유의 팬이자 오웬의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맨유와 오웬의 순수한 팬으로써

앞으로 오웬선수의 눈부신 부활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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