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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나가래요,이젠다섯번째이야기

화병난여자 |2003.03.16 18:21
조회 20,498 |추천 0

잘해주시던 아버님도 이제 지치셨나봅니다.딸 넷과 부인의 입김 아버님도 절 보고 웃으시는 일이 줄어들으셨습니다.주유소 직원들 마저 제가 불쌍해보였나봅니다. 일해주시는 시작은아버지는 말이 너무나 없는 분이십니다. 식사차려드리면 아이업고 설겆이 하는 제 등뒤에서 아이를 빼가십니다.배달을 다니셔야 하는데,아이데리고 태우고 나가시며 좀 쉬어라 하고 나가십니다. 아무것도 아닌일에 눈물이 납니다.

날위해주는 조그만 말에도 눈물이 납니다. 아무래도 눈물샘이 고장난거 같았습니다. 물론 모른척하고 수원친정으로 가고 싶었지만 자꾸 똥꼬집이 생깁니다. 죽어도 이집에서 며느리로 인정받고 죽자는 진실은 알아주겠지 내가 혼전임신한게 죄이기 때문에 이런대접받는거다 죄는 받고 인정도 받자는 똥꼬집이 자꾸 생겼습니다. 장손인 우리 아들도 이쁨받게 해야지!내가 나가 우리집에 가면 내몸과 맘은 편하겠지만 평생 반쪽짜리 인생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딸만 넷인 우리집에서 장녀인 내가 동생들에게 실수 해서 시집갔지만 행복하게대접받고 사는 언니 모습보여주고 싶었습니다.남편군대있을

7월이었습니다. 딸들 부부들과 어머니 아버지 다들 제주도 가신답니다. 아버지 제주도 가자고 하십니다.

아이도 아직8개월이고 사이도 삭막한데 가고싶지 않아 안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표도 끊고 가자고 하십니다. 갔습니다. 괞히 갔습니다. 아버님 현금봉투 막내시누에게 주십니다. 제주도에서 같이 경비로 쓸돈,제주도 이마트로 같이들 쇼핑갔습니다. 휴가에 필요한물품사러 아버님 저보시며 필요한거다골라라!네!아이를 안고 다녀야 하니까 낮은 슬리퍼같은 샌달이 필요했습니다. 1만원정도 하더군요.

제일 싼걸로 고르고!막내시누 눈치를 보았습니다. 언니 이거 어때요?대꾸도 없었습니다. 머쓱해서 놓았습니다. 다들 수영복을 사더군요.수영장에 갈 계획이라고 같이 고르다 저는 제일싼 1만 5천원짜릴 골랐죠.계산할때였습니다. 막내시누 절 부르더니!수영복값내랍니다.정신이 퍼득났습니다. 다행이 지갑에 2만원있었습니다. 자기들꺼는 그봉투에서 꺼내서 계산하더군요.아버님 아무것도 모르고 저쪽에서 어머니랑 웃고 계셨습니다. 따라온걸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앞으로 남은 3일이 걱정됬습니다.

롯데리아로 다가더군요.골르랍니다. 안먹는다고 했습니다. 아버님 어디 아프냐?아니요 멀미하나봐요.

계속 제얼굴 살피시니 웃어야 되는데 솔직히 무서웠습니다.제손에는 이제 5천원남아있는데.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았습니다.8개월인데 11킬로인 우리 아기 무겁더군요.나머지애들은 아빠가 있으니 엄마랑 번갈아 들었습니다.굽이 6센티인(대학들어가서 엄마가 사주신샌달 여름신발은 그거밖에 없었습니다.그나마 집나올때신고 나온거라 유일한 신발이었습니다)샌들을 신고 몸무게는 애낳고15킬로 빠지고 머리는 대머리 독수리같이 빠진자리에서송송,눈은 움푹들어가고 지금 그때사진보면 참 견딘게 용타싶습니다.

아버님이 아이를 안아가셨습니다. 몇시간 걸어서 관광다니는데 힘들어보였나 안고 가셨습니다. 얼마안있어 막내시누 제옆으로 옵니다. 아빠 힘드니까 니가 애기 안어!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막내시누 까탈스럽지만 아빠한테는 애교 만점입니다. 아프면 대학교 4학년인데도 팬티에 티셔츠만 입고 엉엉 울면서 아빠!나 아퍼 하면서 엄마 아빠사이에서 잠잡니다.아버님이 제일 예뻐하시는 딸입니다.

저한테 그러는지 아버님은 꿈도 안꾸십니다.3일이 지옥같았습니다. 잠도 저랑 아기랑만 한방에서 자고 나머지는 같이 자더군요.그러다 집으로 왔고 어머니가 그러셨다더군요.저랑 다시는 여행안간다고

여행가서 어머니 손자한번 안아주셨습니다.아무생각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시집간 큰시누네

가 시댁으로 들어왔습니다.남편이 총신대이니 주말부부 애가 4살 1살이니 힘도 들고 친정으로 들어왔습니다.우리 아이 더 천덕꾸러기 됐습니다. 같이 붙여놓면 싸운다고 애기 데리고 들어가 있으랍니다.

시누오고 한참후 갑자기 어머니 저보고 뭐라십니다. 막내시누 화났다고 전화세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너 친정에다 전화 할려면 공중전화 에다 하라고 . 어이가 없었습니다. 전화 하면 엄마목소리 듣고 울까봐 한달에 한번 할까말까합니다. 아마 큰시누가 한게 많이 나온거 같은데 (전화를 많이 하시더군요)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휴학연기를 해야했습니다.학교가 직행타고 왕복 3시간 정도 걸릴꺼같고 친정도 수원이고 어머니께 처음으로 어머니 휴학신청해야하는데 잠깐학교를 가야할꺼같아요.3시간만 아기

봐주시면 안되나요?어머니 그러시더군요.난 팔이 아파 아기 못본다.주유소에 식구들 엄청있습니다. 그냥 답답하더군요.방에서 울다 같은 학교 다니는 신랑 친구가 생각났습니다.아기땜에 휴학못하러 간다고

목도장하나 파서 휴학계좀 내달라고.....그날 낮에 분유사러 연쇄점 갔을때 막소주가 눈에 띄더군요.소주와 88담배 한갑을 사왔습니다.검정봉투에 넣어서 식구들 다자는 11시에 아기를 재우고 방문도 잠그고 창문도 열고 생전 처음으로 담배라는 것을 피워보았습니다.겉담배라도 한갑을거의 다피우니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꺼 같았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병채 들이키니 핑돌더군요.그날따라 아기는 쌔근쌔근 귀엽게 잘자더군요.내가 바보같고 한심했지만 자학이라도 해야지 미칠것같았습니다. 다음날 부대 신랑한테 전화가 왔고 철없는 신랑 저 면회 보내라 엄마한테 보챘나봅니다. 엄청 눈치보였지만 벗어나고싶어 면회 갔습니다. 아이데리고 또 9시간이 걸려 갔습니다. 그멍청이 보고 힘들다고 못했습니다. 단순한 멍청이라

탈영하고도 남을 아이였으니까요.잘해주신다고했습니다.새벽에 행복하게 자는 모습보면 혼자 멍하니 깨어 있었습니다.내려오는 길에 친정에 들렸습니다.엄마랑 동생들은 살빠진절보고 놀라고 아빤 눈도 안마주치고 저만 보면 화가 나시나 봅니다.다행이 손주는 너무 이뻐하셔서 그걸로 마음이 편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댁에 전화 드리니 아버님이 푹쉬다 오랍니다. 1년만에 처음으로 마음이 편했습니다.처녀적쓰던 침대로가 쓰러지면서 엄마에게 잔다고 깨우지 말라 그랬습니다. 18시간을 잤습니다. 죽은듯이 잤습니다.자고 일어나니 현실이 보였습니다.친정도 제가 있을 곳이 못되었습니다.아빠는 수원으로 이사와 무엇을 해야 먹고 사나 이리 저리 알아보러 다니시느라 바쁘시고 엄마는 앞으로 돈들어갈 고2중1국민학교 5학년 동생들 땜에 고민하시고 돈이라고는 이수원에서 얻은23평짜리 집 전세금밖에는 없었나 봅니다.저 대학1학년때부터 어려워지던 집안형편이었으니까요.88년도에 부동산으로 큰돈을 버신 아빠는 형제간들 빛잔치로 그돈을 야금야금 없애시고 겨우 전세금가지고 수원으로 오셔서 부동산을 하고 싶으신가본데 그게 뜻대로 안되는거 같았습니다. 집에서 아기 데리고 있으면서 우유값 귀저귀값 부담주기 싫었습니다. 내가 마음이 불편해도 주유소는 돈은 만지니 손자 우유값귀저귀값은 줄수있으니까요.신랑한테 친정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포상휴가 받았다고 친정으로 올테니 내려가지 말라고 몇칠후 신랑은 포상휴가를 나왔고 아버지는 얼굴만 붉으락붉으락 뭐라고 말도 못하시고 보기 싫은듯 나가 버리셨고 신랑은 주유소로 휴가 나왔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막내 시누랑 통화를 하느것 같았습니다. 통화하는 신랑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대화내용이 시누가 신랑한테 엄마가 니 와이프랑 애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니 친정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우리 엄마 옆에서 듣고 기절할라고 하시고 아무말도 못하는 신랑이 미웠습니다.조금지내다 오기로 그리고 우리집에 경제적으로 부담주기 싫고 내가 죽어도 그집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내려갔습니다. 왜 내려왔냐는 표정으로 맞는 식구들 ...그렇게 똑같은 하루를 시작하면 주일마다 꼬박꼬박데리고 가는 교회에가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제죄가 이렇게 큰가요?마음 편하게 살게 해주세요.가슴에 한만 쌓입니다.자꾸 교회가 싫어집니다. !

겨울이 왔고 희망이 하나 생겼습니다. 신랑이 상근예비역으로 4월에 나오면 1년반은 집에서 출퇴근이랍니다.참고 지내서 하나님이 상을 주신것같았습니다.

막내시누가 결혼한답니다. 나보다 2학년 높은시누 솔직히 결혼식 못올린 우리 형편으로 시집와서 보는 두번째 결혼식 하얀 웨딩드레스에 시누들을 보면 어린마음에 너무나도 부러웠지만 결혼식시켜달라는 말 죽어도 못하겠더군요.그저 할때되면 하겠지 싶었습니다.

갑자기 연애해 결혼하는 시누가 걱정도 되었지만 철없는 말과 행동으로 어머니와 함깨 나를 가장상처준 사람이기에 집에서 나가 산다는게 마음 놓였습니다.

결혼식에 식구들이 다한복을 입기로 통일했나봅니다. 여전히 전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복도 없고 있는건 청바지 검정바지 면티들.... 저한테 뭐입고 갈건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없더군요.외숙모한테 전화했습니다. 한복좀 빌려달라고 숙모 화내시더군요 그집 너무한거 아니냐고 돈이 없는것도 아니고 딸한복할때 싸구려 한복 하나해서 해주지 ....제가 한번입을 꺼 뭐하러 하냐고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숙모 말씀이 맞느거 같더라구요.아무거나 입으면 되지만 친척들 특히 남편은 장손인데 어린나이에 사고쳐 들어온게 친척들 입에 가쉽거리일꺼고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이 2월이고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이라 추웠습니다. 신부 웨딩드레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는 방도 기도실이 유일한 따뜻한 방이라 그곳에서 했습니다.결혼식 도중 아이가 배가고파 울었고 빈 기도실 방으로 가 아이 우유를 먹이고 있을때 폐백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시누와 친구들 시어머니가 들어왔습니다.사람들 많은데서 시누가 아기 데리고 나가서 먹이랍니다. 이추운데 어머니도 이번에는 너무했다 싶은지 말리셨고 시누 친구들 보기 챙피하고 수치스럽고 아기가 저런 고모만난게 불쌍했습니다.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언니 그러시는거 아니에요.소리치며 그방문을 부셔져라 닫고 나왔습니다. 교회2층으로 아이를 데리고가 덜덜떨며 울고있기를 10여분 발칵뒤집혔나봅니다. 신랑이 화가 나서 절 찾으러 왔고 아버님이 당장데리고 오라셨다고 합니다. 마스카라 까지 다번져서 우는 제모습 추워서 덜덜떨며 우는 제모습 부대에서 상상했던거보다 심각한 시댁과 저와의 모습 결혼식 끝나면 다시 복귀해야할 신랑땜에 전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내려가니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셨고 어머니는 앞뒤빼고 제가 혼날 일만 이야기 하셨나봅니다.시아버지 그렇게 화난모습 처음 봤습니다. 시아버님 참지 못하시고 차로 어머니랑 저를 타라고 하시더니 소리소리 지르십니다.뭐가 불만이냐고 시누 시집가는날 왜 이런 불쌍사를 만드냐고 옆에서 조용히 뭐라고 하시는 어머니 너!여자가 성질머리가 그래서 어디다 쓴다냐?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고!차에 타있으라는 말에 밥도 못먹고 결혼식 끝날때까지 아이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자식앞에서 누군가에가 혼난다는거 수치더군요 아이가 말을 못알아듣기 이상황을 모르길 간절이 바랐습니다.집으로 왔고 분이 안풀린 시부모는 절 방으로 볼렀습니다. 아버님 무슨 말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바닥을 치셔가며 소리 질르셨죠.여자가 잘들어와야 집안이 편하다.넌 아씨고 안보냐?(그때 이응경이나온 드라마 아씨가 인기였습니다.)

여자가 어디서!그래 집떠나는 시누한테 그러고 싶냐?여자 잘못들어오면 형제간에 의 다 상한다.....

무릎끓고 앉은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못일어서고 다리가 꼬일때까지 그말들을 다들어야 했고 솔직히왜

그렇게 까지 혼나야 하나 왜 시누한테 한마디 안하시나 시어머니가 도대체 뭐라고 하셨길래....그냥 눈물만 뚝뚝 흘리다방으로 갔습니다. 비참했습니다. 하루 종일 굶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 자기손으로 물도 안떠다먹던 신랑 밤 9시가 넘어 양은 냄비에 퉁퉁불은 라면 하나 끓여 왔더군요.라면 보고 또 엉엉 울었습니다. 울다 자고 다음날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했지만 반응은 냉랭하더군요.죽을 죄를 지었나 봅니다.시누가 시집가고 남편이 상근을 하러 집으로 오게 됐고 시댁은 주유소를 팔고 셀프 세차장을 한답니다.새로 짖는 세차장을 가니 이상히도 방이 크게 원룸식으로 하나더군요.거기서 시부모가 살면 대학다니다 컴퓨터 관련직장다니는 두살아래 시동생이랑 우리 세식구는?방얻어주더군요 보증금 200에 15만원짜리 방하나를 가운데 창호지 문지방으로 막고 싱크대 하나 들어가는 신발신는 부엌 화장실은 푸세식 공동 화장실 10가구가 모여 사는 대학생들 자취방같은데로 얻어주시며 거기서 니 신랑은 군대 출퇴근하고 가운데 시골 창호지 문같은걸로 나눈 방하나는 시동생을 주라고 저더러 데리고 살라고 합니다.알았다고 했습니다. 내돈으로 얻은 방이 아니니....그렇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동생은 월급을 받고 다녔지만 자기 쓰기 바쁜지 생활비 한번 보태지 않았고 매일 매일 새벽까지 컴퓨터로 날을 샜습니다.(98년도니 스타가 한창이었나봅니다.)창호지 문틈으로 보이는 불빛 소리 그냥 참았습니다.그저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게 걱정이었습니다.신랑은 상근으로 부대에 출퇴근을 했고 일요일마다세차장을 신랑과 같이 보며 일주일에 3만원 많으면5만원씩 받았습니다.약20만원정도로 수도세 전기세 생활비 식비 그러기를 6개월 아이가 이제 18개월정도라 내가 돈을 번다면 남의 손에맡겨야 할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중퇴2학년을 받아주는 일찍끝나는 직장은 흔하지 않았고 두가지를 선택했습니다. 태평양 방문판문 사원과 대한생명 보험회사 시험봐주는거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약4달정도 를 다녔습니다. 다니는데 신랑하고 많이 싸웠습니다. 신랑과 시댁은 보험다니는 사람들을 헤프고 헤픈 사람들로 취급했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하는걸 보면서 이해가 안됬습니다. 아이도 못봐주고 생활비 20만원으로 어떻게 살라고 하는지...남편이 돈을 벌수있는 상황도 아니고 반대가 너무심해 고민하는중

사촌언니가 언니가 일하는 요리학원에서 재료도 다듬고 청소도 하고 경리도 볼꺼냐면서 60만원준다고 하길래 좋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거리고 너무 좋았습니다.끝나는 시간이 7시에서 8시 사이니 아이는 신랑이 부대에서 먼저 끝나니 받아서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신랑22살이 어리다고 하나 나는 먹고살기위해 어떤일이라도 할려고 하는데 아이봐야 한다고 투정이고 학원끝나기도 전에 유모차에 아이태워와 우두커니 기다기고 있는니 원장님보기 미안했습니다.많이 싸우고 울고 끝내고 싶고 그랬습니다.사는게 힘들어서 거기다 시동생이 연애를 했습니다. 그회사 경리랑 문제는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자더군요,처음엔 내가 없을때 자더니 아예일요일날은 그여자 신음소리에 제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그여자아이 맹랑합니다. 그방은 저의 방이니 언니네 애기 들어와 뭐 못만지게 하고방에 있는 냉장고 때문에 너무 더우니 냉장고도 옮겨주세요.그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거의 동거를 했고 전 정신병에 걸릴꺼 같았습니다.남편한테 제발 그여자아이 우리 집에 못오게해줘 부탁이야.남편왈

자기도 연애해서 결혼했는데 동생한테 뭐라고 하냡니다. 제가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연애야?우린 애낳고 사는 부모야 부부라고 니가 우릴 이렇게 주눅들어 생각하니 남들도 우릴 병신 죄인 취급하는거야 바보야!하고 울었습니다. 시동생이 미웠습니다. 걔네가 사람이 아닌것 같았습니다.남편이랑 싸우면 거친말이 오갔고 처음 으로 남편이 절 때린날 죽고싶은데 미친개처럼 비오는 새벽거리를 걸어다니다 소주 세병을 사와 잠자는 남편 얼굴을 쳐다보고 바가지에 따라 한꺼번에 먹었습니다. 속이 타는거 같았습니다.이러면 죽을수있을꺼같았습니다. 기어다니며 토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토하는 소리에 일어나 절그렇게 쳐다보더군요.전 마음이 찢어지고 자존심상하고 힘든데 ....술먹고 토하는 제가 미친년같이 보이겠지요.어떻게해야 상처받은 내마음을 보여줄까요.한번의 손찌검으로 팔에 주먹질받은대로 피멍이 들었고 남편은 미안해했습니다. 한여름이었고 반팔과 나시를 입는 때라 화운데이션과 트윈을 발라 지우고 약간 긴 반팔만 입었습니다. 일을 다녀도 일요일날은 세차장을 봐야 했고 대신 한번 안가주는 시동생이 얄미웠습니다. 우린 가족끼리 오붓한 일요일이 없었습니다.그때 시집간지9개월밖에 안된 시누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왔습니다. 막내시누요.원인은 남편한테 구타를 당했답니다. 참 자상하고 잘하던 사람인데 믿기지 않더군요.화나신 시아버님은 그 분을 몽둥이로 패셨고 이혼시키시더니 막내시누를 데리고사시더군요.그때쯤 둘째시누는 아이를 가져 입덧이 심해 친정에 내려왔고(둘째시누네 큰딸아이가 우리아이보다 한달빠름)기막히게도 그때쯤 저도 아이를 가져 말할 기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둘째시누는 입덧을 심하게 해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변기를 부여잡고 토했고 저는 같은시기인데도 입덧을 안하더군요.추석이라 전을 부치며 말을 해야겠다 하는데 어머님이 넌 아이 안가지게 참말로 조심해라!큰일난다. 그말 한마디에 추석이 끝나고 저는 산부인과에가 9주된 아기를 지웠습니다. 아기한테 너무 미안했지만 이런 지옥같은 상황에서 아무 도움없이 아기를 낳을수는 없었습니다.아기를 지우고 혼자 방에서 누워있는데 시동생과  그여자애가 즐거워하며 옆방에서 자고 놀고 떠들고 전 시체 처럼 누워서 눈물만 베개닢을 적셨습니다.사느게 뭔지 22살나이에 회의가 들었습니다.아무리 봐도 동갑이지만 철없어 보이는 남편 전혀 배려가 없는 시댁 책임져야할 아이 여러번 손목을 긋고 싶었지만 미수로 끝났고 ,친구들이랑 나이트가서 놀다 내친구들이랑 우연히 부킹하게된신랑 .자기는 부킹 안하고싶었는데 친구들 이 했다고 전 왜 그자리에있어 나를 비참하게 만드냐고 동갑내기중 가장 먼저한 결혼이라 친구들이 니가 내신랑인줄 다 아는데 공부 잘했던 범생이라 어떻게 사나 다들 관심 갖고 호기심에 쳐다보는데 난 아이지우고 몸조리 하는데 넌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소리지르면서울면서도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부대가 힘든가보다 22살이니 얼마나 놀고싶을까?여자때문에 간게 아니가 친구가 술산다니까 간걸꺼야 내마음을 다독였습니다.그런데 남편입에서 나온말은 너힘들게 산다고 나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냐?답답해였습니다.

그런식으로 싸우다 남편은 제대를 했고 우리 사는 방도 계약기간이 끝나 살곳이 있어야 하는데 시댁에선 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이가 없어 우리힘으로 살기위해 우선 살곳이 없으니 수원집 마루에서 생활하며 삼성 반도체공장 용역직원으로 둘다 취업을 해 하루 14시간씩2교대로 일하고 100만원씩 받으며 둘다 처음으로 행복해했습니다 금방 방 보증금 마련하겠다고엄마가 아이 봐주시고 엄마에게 생활비랑 아기봐주는 조로 50만원드리고 100만원씩 적금부어 빨리 우리 방만들어 나가자고 했습니다.일이 힘들고 그랬지만 희망이 있으니 부부사이도 좋아지고 그러던중시아버지가 남편한테 내려와 당신일을 도우라 하셨습니다. 내려와 도우실라고 하실려면 살방이라도 마련해주시고 내려오라고 하시던지 신랑만 내려와서 벌은 돈을 달라시니 어이가 없죠.그와중에 임신이 되었고 신랑이 지우랍니다. 같이 살수있을때 낳자고 가지 말라고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장남이라고 가더군요.신랑만 내려가니 울아빠 책임감 없는 놈이니 이혼하라고 하셨고 전 괴로웠습니다. 신랑간후 우연히 아르바이트 하던 갤러리아 백화점 에서 대리님이 능력을 높게 보셨는지 새로 입점하는 브랜드 두번째 샾마스터로 추천하시며 (사장한테 숙녀복매장 3년 경력이라고 소개 거짓이죠)고마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월급도 150만원이고 일주일에 4번쉬고 일하는 시간도 백화점 개장시간이고 잘만하면 첫번째 샆마스터만 되면 월급은 300만원대로 오르니 희망도 있고 처음으로화장에 머리 단장에  매장에 있는 옷은 다입을 수있으니 여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안했습니다.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해야하는데 3개월은 시간없어서 못뗀다고 핑계를 댔지만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다 미스만 뽑기때문에 전 유부녀인줄 아무도 몰랐으니까요.내일이 아니었나봅니다. 적성에도 맞았지만 그냥 나왔습니다. 잠깐 하루 왔다간 신랑....아이 지운지 한달도 안되고 생리한번 안됬는데 또임신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지울 자신도 없고 (하루 자도 아이생기는 거짓말 같은 ...)자꾸 이혼하라는 아빠의 압력에 편지 한장써놓고 아니 데리고 시댁으로 무작정내려왔습니다. 신랑한테

임신했다고 말하고 시댁에서 지내는데 (시댁엔 말못했습니다.)아버님이 암으로 쓰러지셨습니다.어머니도 간이 안좋다며 입원해버리셔 아버님과 저 신랑 시동생만 집에 남겨졌습니다.(아버님이 당료라 체력을 키워야 수술 할수 있다고 당뇨는 포도당링거로 체력을 못잡으니 집에서 먹는거로 체력을 잡아로라고)임신초기라 입덧에 잠에 힘들었지만 아버님이 김공장을 차리시다말고 쓰러지셔서 신랑은 김공장에 시동생은 상근 예비역에 낮에 집엔 저와 인생을 포기한듯 오기 부리시는 시아버지 두명만 남아있었습니다.시누들은 아빠의 오기가 꾀병이라며 화를 내고 친정에 오지 않습니다. 어머니도 자신도 아프시다고 병원에 입원해 버리셨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간이 안좋으시다며 갑자기 같이 입원하셨습니다.대장암수발은 저에게 떨어졌습니다. 56세에 아버님의 세상을 포기하신듯 이불에 오줌을 싸실때도 있고 뭘드시라고 갔다드려도 신경질을 내시면 안드셨고 하루종이 다리를 주물르라고 소리지르셨습니다. 다리가 날아가느거 같으시다고 그래도 당치수가 오르면 안되니 갖난아기처럼 마스크까지 씌우고 부축해 공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운동을 해야 당치수가 내려 수술을 하니까요.유일하게 드시는데 곱게 갈은 누룽지 죽이라 냄비에 일부러 밥을 태워 누룽지를 끊인후 체에 내려 걸죽한 국물을계속 만들어드렸습니다.적적하고 쓸쓸해하셔 일부러 옆에 앉아 말시키고 주물러주다 수술날짜에 대학 병원으로 갔습니다. 잘못될까봐 눈물이 났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한게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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