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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나네요...

호피티 |2003.04.18 11:12
조회 1,036 |추천 0

결혼한지 한달반 조금 넘었네요... 속상한 일 있어서 글 올렸다가 여러분들 많은 격려덕에 여기만 들어오면 친정온 것처럼 정말 편하고 좋습니다... 사는 얘기 같이 나눌 수 있어서 더 정겹구요.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비가 온다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저희 엄마는 아들 둘, 딸 둘인 집 장녀. 온 식구들 기대 한몸에 안고 정말 그 기대 어긋나지 않게 공부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답니다.

아빠는 누나 넷, 여동생 하나인 집 외아들... 할아버지도 독자셨구요...

하여간 두 분은 교회어른 소개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셨대요. 남들이 그런 집으로 시집가면 시집살이 대단할텐데 하면서 말리셨다는데 외할머니가 아빠됨됨이 하나 보고 가서 잘 살라면서 강행하셨다네요.

참 아이러니하죠... 외할머니가 그렇게 믿었던 사람이 외할머니를 죽인 꼴인 되었으니 말예요.

친할머니 성격 대단하셨습니다. 고모들도 장난 아니었구요.

부족한 것 없었던 울엄마가 갑자기 그 무서운 시집살이를 하게되었으니... 엄마와 딸이 아닌 여자끼리 봐도 소름끼칩니다.

엄마는 불행(?)히도 딸만 둘을 낳으셨죠. 아들 딸은 남자쪽에서 결정이 된다는걸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는 더더욱 않으셨던 친할머니 때문에 울엄마는 우리를 낳던 날 펑펑 울어버리셨대요.

울엄마 키가 168cm입니다. 근데 시집살이 때문에 이혼하기 전까지 45kg을 넘어본 적이 없대요.

아빠는 그당시 미륭건설이라는 회사에 다니셨어요. 지금은 동부건설이죠...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중동붐이 일었을때 울아빠 거기에 계셨어요. 그러니까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었던 날은, 아니 가족들하고 함께 있을 수 있었던 날은 일년에 두서달밖엔 안됐죠.

다행히도 저희는 아빠 회사랑 학교 때문에 친가에서 분가해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주말마다 아빠도 없는데 쪼꼬만 우리 델구 고속버스 타고 원주 친가에 가서 한밤 자고 일요일 낮에나 올라오는 일을 몇년이나 계속했습니다. 아빠가 보내오는 돈도 정말 아껴서 친가에 넉넉히 보내드리고 저축도 정말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차도 사고 이층집도 올리고... 엄마가 살림 잘 하셨죠.

그러다가 아빠가 미국지사로 발령을 받으셨어요. 미국 안갈거면 사표쓰라고 해서 가기로 결정하고 우린 정말 부풀었었어요. 특히 울엄마... 그 시집살이 그만해도 된다니 얼마나 기쁘셨겠어요?

근데... 당신 아들밖에 모르시던 할머니가 갈거면 당신 죽이고 가라고... 아들없이 절대 못산다고...

그래서 울엄마는 또 주저앉으셨죠.

아빠가 한국에 있는 동안 우리식구들끼리는 정말 행복했어요. 아빠가 마마보이이기도 했지만 엄마한테는 정말 끔찍하게 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 할머니랑 고모들 진짜 너무했어요. 툭하면 전화해서 아빠한테 엄마 흉보고 툭하면 집에 떼로 몰려와서 엄마 잡고...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까 아빠도 엄마한테 함부로하고 나중엔 우리 보는데서 식탁도 뒤집고 밥통도 망가뜨리고 엄마 때리고...

우리가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려도 정말 그때는 아빠가 미쳤던것 같아요.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자식 앞에서 자식 엄마를 그렇게 함부로할 수 있답니까. 그때 저랑 제동생 초등학교 2,3학년이었어요.

불행히도 우리 아래층에 우리 학교 선생님이 세들어 사셔서 엄마아빠 맨날 싸운다는 소문이 저희 담임선생님한테 전해지고... 선생님들끼리 수근수근 하는거 정말 싫었답니다.

집에 가는 것도 무섭고 아빠가 일찍 들어와도 무섭고 엄마가 기도원 간다고 짐싸는 것도 너무 무섭고...

전 그때 불안증 비슷한 거였나봐요. 그렇게 컸는데도 학교고 집이고 못가리고 마음이 조금만 불안하고 조급해지만 아무데서나 실례를 할 정도였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토요일 밤이었어요. 그 날짜도 기억이 나요. 1983년 10월 22일...

막내 외삼촌이 군대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아빠가 내일은 막내삼촌 면회를 가자는 거였어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다음날 새벽부터 우리는 먹을거 챙겨서 외할머니 모시고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다섯이 아빠 차를 타고 삼촌한테 갔습니다. 가서 휴가 얻어서 삼촌하고 다시 여섯이 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데... 아차 하는 순간 우리 차가 데굴데굴 굴러 청평저수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졸음운전을 했던거죠....

저는 자다가 갑자기 차가운 물때문에 잠을 깼는데 난리가 났더군요. 앞좌석에서 동생을 안고 있던 엄마도 엄마 품에 동생도 울고 소리치고... 차 문도 안열리고... 근데 아빠는 없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차 유리를 깨고 저를 데리고 나가면서...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요 저랑 동생, 삼촌만 있었습니다. 병원 사람들이 누가 죽었다던데 하면서 저 어린 것들 어떡하냐고 하는 소리에 우리는 엄마가 죽은 줄만 알고 뺵빽 울어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만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를 데리고 나온 사람은 삼촌이었고 엄마랑 동생은 119가 와서 살았죠. 할머니는 심장마비로 바로 돌아가셨대요.

아빠요? 마누라고 자식이도 다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그 잘난 수영실력으로 빠져나왔답니다.

더 웃긴건... 우리 외할머니 장례식날... 친가에서 할머니랑 고모들 우르르 몰려와서는 피곤한 자기 아들 꼬여서 그 먼데로 면회가게 하더니 결국은 아들 잡을 뻔 했다며 장례식을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잘죽었다는 소리까지 하더라구요.

저도 교회다니지만... 교회에서 장로님이면 뭐하고 권사님이면 뭐합니까? 그런 사람들 정말 지옥갔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어깨도 부러지고 얼굴도 심하게 다치셔서 그 곱던 얼굴이 지금은 양쪽 대칭이 많이 맞지 않는 얼굴이 되셨어요. 그런데다 외할머니까지 잃고 망연자실 병실에 누워있었는데 할머니랑 고모들이 또 몰려와서 온갖 모진소리 다하고 갔습니다. 아빠는 뭐했냐고요? 멀쩡히 회사 잘 다니고 있었죠. 엄마 병문안 몇번이나 갔는지도 모르겠군요.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곧 이혼수속을 밟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10년만에 헤어지게 된거죠.

위자료 때문에... 엄마는 시댁에 가는게 꺼려져서 엄마 친구분들중에 한 터프한 친구 둘과 우리 자매를 데리고 가셨어요. 가자마자 분위기 살벌하게... 할아버지가 저희 자매는 아빠쪽으로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우리는 그쪽으로 가서 앉았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엄마한테 위자료로 천만원만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엄마가 천만원으로 애들은 어떻게 키우냐고 했더니... 그 할머니... 우리들을 원주에 데려가서 초등학교만 마치면 남의집 가정부로 보낼거랍디다. 아무리 우리가 싫어도 하나뿐인 외아들 핏줄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엄마는 울고불고... 돈도 싫다며 우리만 데리고 서둘러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정말 힘들게 살았죠. 아빠네는 돈도 많고 아빠가 돈도 많이 벌었지만 엄마는 학교도 그만 둔 상태였고 자기 앞으로 만원한장 모으지 않았던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가정주부였으니까요.

엄마는 과외선생님으로 나섰어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와서 한국학교에 적응 못하거나 예체능쪽으로 진학하려는 아이들을 가르치셨죠. 우리 세식구 먹고 살만하긴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중학교 갈때 되니 걱정되더라구요. 중학교는 스케치북도 천원씩이나 했으니까요. 엄마한테 학교 그만 다닐거라고 울기도 해서 엄마 걱정 많이 끼쳐드렸죠. 다행히 저희자매는 모범생으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엄마 힘드시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도시락도 우리가 스스로 싸서 다니고...

제 동생도 대학에 입학했을때 갑자기 엄마가 할머니를 찾아가자고 하는거예요. 우리는 때려죽여도 그 사람들 다시는 안본다고 했지만 엄마가 그래도 너희 대학생된 모습 보고싶어 하실거다 하면서 큰고모한테 전화해서 찾아가겠다 하셨죠. 시간이 많이 흐른 뒤라 그쪽도 전보다는 부드러워졌어요.

십여년만에 만난 할머니랑 고모들 참 많이도 늙고 변했더군요. 우리를 보자마자 잘못했다면서 엉엉 울어대는 겁니다. 엄마한테도 용서해달라 하고... 뭔일이가 했더니...

아빠는 재혼을 했는데 역시나 또 딸만 둘을 낳았대요. 그런데 그 며느리가 처녀였나 봅디다. 그 유세를 어찌나 떠는지 그 성질 더러운 할머니랑 고모들도 두손두발 다 들었대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1주기에 추도예배를 드리러 모두 원주에 모였는데 그 며느리 나타나지도 않았답니다. 우리엄마가 그랬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만 남으니 그 며느리 시댁하고 완전히 연락도 끊었다합니다. 아빠한테도 돈이나 벌어오라 하고 자식들하고 자기만 챙긴다더군요. 할머니가 원주 그 큰집에서 혼자 살고 있어도 모실 생각은 커녕 밥한번 사드리는 일도 없고 전화한번 드리는 일도 없었다더라구요. 그런 설움을 당하고 나니 할머니가 우리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더래요.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에미야, 다시 들어와서 살면 안되냐?' 하는 거였죠. 당근 안되죠. 우리 세식구 지금 얼마나 행복한데요~~

고모들도 다 잘못했다고 엄마한테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엄마도 같이 우는 걸 보니 미운정이 참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죠. 울엄마 이제야 숨한번 크게 쉬는구나 싶구...

그 후에 할머니에 치매에 걸리셨었대요. 할 수 없이 아빠가 모시고 갔는데 며느리가 방에다 눕혀만 놓고 돌보지를 않아서 막내고모가 할머니 보러갔다가 놀라서 병원에 모셔갔고... 그렇게 돌아가셨다네요.

아마 돌아가시면서 울엄마 생각 했을 거 같아요.

 

얼마전... 결혼식 앞두고 저희 시아버님께서 다른 건 몰라도 결혼식에 아빠를 꼭 모시고 오라셨어요.

간만에 전화해서 신랑 인사시키고... 결혼식에 꼭 오시라 했더니 우리 식구들 어떻게 보냐고 자기 입장좀 생각해 보라기에 시집가는 딸 입장은 없느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맘대로 하라했죠.

설마설마했는데... 핸드폰 계속 꺼놓고 지내더라구요. 엄마가 안되겠다구... 결혼하는 것도 알릴겸 고모들 도움좀 받자고 해서 고모들 만나러 갔더니... 고모들도 이젠 아빠네 식구랑은 아는 척도 안한대요.

사촌언니들이 울엄마 보고 끌어안으면서 '외숙모'라고 엉엉 울었어요. 언니들은 우리보다는 컸으니까 울엄마 어떻게 당하고 사는지 다 봤거든요.

다행히 큰고모가 나서주셔서 아빠가 식장에 오셨더랍니다. 엄마랑 아빠 몇십년만에 만나는 거였으니 두분다 얼마나 뻘쭘했겠어요... 참 이상한 신부네 분위기더라구요.

나중에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그래도 엄마한테는 참 잘했다고. 할머니만 돌아가시고 나면 아빠랑 다시 합칠 생각이었는데 니네 아빠 어떻게 일년도 안되서 선보고 결혼까지했느냐고...

참... 화나요. 울엄마 그 좋은 시절 우리 먹여살리고 공부시키느라 재혼은 꿈도 못꾸고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저 결혼하기 전에 울엄마 먼저 결혼했음 좋겠다 생각하고 기도했었는데... 잘 안돼서 제가 먼저 결혼해버렸네요. 신랑하고 싸우고 할때마다 엄마 생각 진짜 많이 납니다. 신랑한테 당하는것도 이렇게 서러운데 시어머니며 시누이들한테 신랑 없을때 당하면 전 정말 경찰에 신고해버릴 것 같아요.

바보같은 울엄마...

이제는 정말 펀하게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어요...

얘기 다 쓰고 나니까 엄마랑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우리 회사 쪽으로 오신다네요. 점심 같이 먹자고...

전 결혼하고 동생은 유학가서 울엄마 혼자 지내신답니다.

빨리 좋은 남자친구 생겨서 영화도 보러가고, 공연도 보러가고, 백화점가서 이쁜 옷도 사입고 근사한 레스토랑도 가고... 나 말고 엄마 남자친구랑 데이트하셨음 좋겠네요.

울엄마한테 다시한번 봄날이 왔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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