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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하나때문에 한없이 눈물흘렸네요

어릴적 |2007.03.07 12:38
조회 912 |추천 0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셔서 솔

 

직히 많은 기 억은 없지만 그래도 간간히 떠오르는 작은 일들은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때당시 할머니의 가장 큰 취미는 다른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민화투

 

와 고스톱을 치시거나화투로 점을 보는 화투점을 하는 것 이었다.

 

그 덕에 난 초등학교 입학하기전에 아라비아 숫자와 사칙연산

 

은 몰라도 화투장을 내밀면 어떤 숫자인지 알아맞추고

백단위가넘는 계산도 민화투와 고스톱을 통해서는 귀신같이 척

 

척 풀어갔다. 동네 할머니들은 우리동네 화투신동이

 

나왔다며 날 많이 귀여워 해주셨었다.

동네할머니들은 화투를 칠때마다 화투의 운을 불어다주는 물건

 

들을 항상 몸에 지니 고화투를 치셨는데 우리할머니에게는 방

 

석이 자신을 승리의 길로 이끌어 주는 부적이라고 믿고 있었었

 

다. 노란 스폰지에 월남치마무늬의 천으로 덮여있었던 그 방석

은 할머니가 안 계실땐 화투점을 치면서 몰래 사용했었던 기억

 

이난다. 웃음이 난다. 화투점을 치곤 패가 비광과 팔광 그리고

 

칠 돼지가 떨어지면

“오늘은 밤에 밤손님이 행운을 갖고 오는군.” 여섯 살 짜리 어

 

린놈이 이렇게 말했으니.........이런 손주녀석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으리라...

어느덧 나도 가슴에 명찰이란걸 달고 할머니 손을 잡고 국민학

 

교란 곳에 입학을 하게되고 화투에서도 배우지 못한 세상의 진

 

리에 눈떠가게 된다.

우리집은 학교정문 맞은편에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

 

가 몇미터만 걸으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

 

고 친구들이랑 같이 하교길을 걸을때면 항상 학교정문에서 작

 

별인사를 했었었던 우수운상황이 기억난다.

1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정문 맞은편 골목입

 

구.... 항상 내가 학교와 집을 통하는 블랙홀처럼 느껴던 그 골

 

목입구에 뽑기아저씨가 등장했다.

그 뽑기아저씨는 구르마에 책가방 만한 잉어엿과 각종 소형오

 

락기를 싣고 다니며 온갖 사술로 아이들의 주머니돈을 뺏어가

 

는 아저씨였다. 물론 뽑기라는 것으로 자신

의 강탈행위를 합법화 시키고 냉차 한 그릇으로 아이들의 입을 막았었

 

던 뽑기아저씨....

그 당시만해도 난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용돈이란 것 도 몰랐었

 

다. 그저 돈이란건 어른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으며 가끔씩 내 주머니

 

에 돈이있는 것은 운동장에서 흙놀이 하다가 주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다보면 어느샌가 잊어먹고없었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 돈의 본질에 대해 눈뜨게 해준 것이 바로 그 뽑기아

 

저씨였다.어느 화창한 날의 하교길이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정문에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곤 나는 맞으편 골목을 향해 걸어간다.

그 길을 매일지나다녀서인가 요즘들어 나를 바라보는 뽑기아저씨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난 어린맘에 자꾸만나다 보면 나중엔 아저씨와 친해져서 내맘대로 뽑

 

기를 할 수 있을거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눈길이 마주친다.

 

그리고 걷는내내 아저씨와 난 마주보고 있다.

‘아~ 인사라도 할까’

먼저 인사하면 지고 들어간다는 생각에 그냥 쳐다보면서 걷기만 한다.

그때! 아니나다를까 뽑기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꼬마야 뽑기한판하고 가라.” “일등이 오락기다 오락기..”

난 못이기는척 구르마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구르마 위에 놓여

 

져 있는숫자가 적힌 판때기를 쳐다봤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처음이니깐 한판만 공짜로 하는거야.’

그러면서 이것저것 구르마위에 놓여진 상품들을 만지작 거렸다.

그때 아저씨가 던지는 충격적인 한마디.

“꼬마야..50원.”

그러면서 내 얼굴만한 시커먼 손바닥을 내민다.

‘앗.. 이게 아닌데.’

이런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한마디 내 뱉는다.

“어제 50원 있었는데...”

그때 난 이말을 내뱉고 뽑기아저씨의 공짜계획은 무너졌다라는 걸 깨

 

달았다.

그리곤 집으로 뛰어갔다. 대문문을 힘차게 열고는 할머니를 불렀다.

“할매! 할매!”

집으로 돌아올 손자녀석을 위해 청국장을 끓이던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신다.

“할매..50원만 도..”

아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시는 손자의 금품 요구였을 것이다.

왜그러냐며 묻는 할머니께 뽑기해서 꼭 오락기를 가져오겠다며 온갖

 

말도 안되는 사술과 호언장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뽑기아저씨를 오랫동안 보면서 배웠나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거 하지말라며 차갑게 뒤돌아 서신다.

‘이런적이 없었는데...’

계속 졸라대는 손주의 요구에도 그냥 찬바람만 불고있었다.

그 서운함과 어린맘에 부엌에 들어가 할머니께 못된말을 내뱉고는

 

차려놓은밥도 먹지않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들과 놀기위해 학교운동장으로

 

향한다. 골목을 나가면서 뽑기아저씨를 한번 째려본다.

뽑기아저씨가 씩~ 웃는다. 돈없으면 하지말라는 웃음이었다.

성격같았으면 욕이라도 한번하고 도망갔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걸

 

보면아직 공짜계획에대한 미련과 작은희망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저녁해가 기울때쯤이면 학교본관에서는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애국가가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아이들이 놀이를 멈추고 집

 

으로 향한다.

만화영화를 보기위해서이다. 그 당시 놀것이 마땅치않은 아이들에게

 

만화영화의위력은 실로 대단한것이었다.

 

그렇게 만화를 보기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언제나 어제본 만화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일어난다. 만화가 단막극이 아니라 내용이

이어지는 연속물일경우는 가끔씩 싸움이 일어나 하룻동안 우정에 금

 

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면 다시 만화로 하나가 되는 것이 그 시대의 아이

 

들이었다.

놀다가 헤어질때도 난 역시 학교정문에서 작별인사를 나눈다.

 

그리곤 자연스레 나의 눈은 뽑기아저씨에게로 간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시간이 뽑기아저씨의 퇴근시간인지라 구르마

 

를 정리하는아저씨의 손길이 바쁘다. 그 바쁜와중에도 아저씨는 나를

 

한번쳐다본다.

또다시 눈이 마주친다. 뭔가를 바라는 눈빛처럼 보였다.

학교 앞 오르막길에 뽑기아저씨의 구르마를 밀어주고 냉차를 한 그릇

 

얻어먹었다는 친구의 소문을 들을 적도 있지만 현재 난 그렇게 하기엔

 

너무 개인적인 감정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모른채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때 내가사는 집은 큰 마당을가운데 두고 서너가정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웃간에 음식같은 것을 나눠먹는 정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당시 우리집 텔레비전은 흑백이었고 KBS 2TV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애꾸눈 하록선장은 항상 주인집에서 두 살많은 형이랑 같이 봤었다.

집에들어가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할머니께서 담요에 조심스럽게 싼 밥통을 아랫목에서 꺼내어 한 그릇 퍼주신다.

점심때 내가 한바탕 했는지라 서로의 표정이 굳어있다.

밥을먹고나면 항상 잠자기 전까지 할머니와 화투를 치던가 아니면 동

 

네골목에 나가친구들이랑 논다.

근데 오늘은 점심때 일로 별 갈등없이 밖에 나가놀기를 택하고 동네로 출근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만화가 끝나면 그 동네에사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숨박꼭질,술래잡기 등 온갖놀이를 하고 밤이 깊어갈 때 쯤 동시에 집으로 해산한다.

집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가 민화투를 한판치자고 하신다. 아침에 일이

 

미안했는지 오늘은 승리의 부적 방석을 나에게 양보하려는지 말도 없

 

이 나에게 방석을 던지신다.

난 못이기는 척 그렇게 또 잠이드는 순간까지 동양화의 매력에 흠뻑 취한다.

다음날... 어제만큼 화창한 날이다. 학교에서는 슬기로운생활을 마직

 

막수업으로 끝마치고 아이들이 가방을 싸고 하교를 시작한다. 이번주

 

는 주번이었는지라 계속 하교길이 늦었었다.

 

집으로 가는 운동장이 한적하다.

같이 주번을 하는 녀석과 인사를 나누고 난 골목쪽으로 향한다.

여전히 뽑기가 자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마주쳤지만 여느때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오라고 손짓을 한다.

‘드뎌 친해지는 건가?’

난 내 공짜계획에 실락같은 희망을 안고 뽑기에게로 다가간다.

“한판하고 가라.”

역시 날 꼬드기기 위힌 눈빛이었단 말인가.. 난 실망스런 맘을 담고

“돈없어요..”

라고 말한 뒤 골목쪽으로 몸을 옮긴다. 그순간 돈밖에 몰라보이던 그 뽑기가...

“공짜다 임마..한판해라~”

아니 이게 무슨 거북이등에 부항뜨는 소린가. 작업도 들어가지 않은

 

내 공짜계획이 벌써 성공한 거란 말인가..

“한판 하라니깐..”

그순간 그 뽑기아저씨분?의 눈은 맑은천사의 눈빛으로 보여졌고 뽑기

 

통을내미는 그 큰손은 세상모든아픔을 감싸 쥘 수 있는 포근한 담요처

 

럼 보였다.

난 온갖계산을 한 뒤 신중하게 하나의 종이를 뽑아들었다. 몰론 꽝이었다.

어릴적부터 예의 범절은 화투만큼이나 확실하게 배운지라 감사의 인

 

사를 크케 하고는 돌아서려는데......그 뽑기아저씨가...

“한판 더 해봐 임마.”

세상에 이렇게 선량한 사람이 또 있으랴..난 거절 할 수 없었었다..

이렇게 좋은사람 앞에서 계산을 하고 뽑는다는게 부끄러 이번엔

아무생각없이 다시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역시 결과는 꽝이었다.

꽝이어도 기분이 참 좋았다. 웃으며 천사같은 뽑기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다시 크게 하고는 돌아서려는데 꽝이라고 냉차까지 한잔을

주는게 아닌가..

난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고 해맑은 미소로 잔을 건네주었다.

“잘가라~”

역시 인사또한 따뜻했다.

나도 다시한번 크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가기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미소를 건네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뽑기아저씨를 쳐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뽑기아저씨가 앉아있는 의자와 큰 궁뎅이 사이에

뭔가 낯익은 색깔의 천이 보였다.

뭔가 불안한 생각을 떠올리면 집으로 뛰어갔다.

“할매~! 할매~!”

“와~?”

“할매 방석은?”

할머니가 한참동안 말을 못하시다가 작은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어~~..... 누구줬다.”

“누구? 뽑기한테 줬나?”

“응”

난 할머니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 뽑기에게로 달려갔다.



그랬었다. 그시절 우리집은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기에 할머니도 주머니는 항상

빈털터리었다.

그 시절 많은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할머니도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자신의 소중

한 물건을 뽑기 두판과 바꿨던 것이었다.

난 뽑기에게로 달려가 할머니의 부적을 뺐을려고 별짓을 다했지만 그 부적을 다시

할머니에게로 가져다줄수는 없었다. 내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흘렀다.

어린나이 처음으로 가슴아픔을 맘속깊이 느꼈었다.

미안한 마음에 집에들어가지 못하고 대문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때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를 보자 또다시 울음이 나왔다.

할머니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밥먹으라면 날 방으로 데리고 가신다.

난 밥먹는 내내 나중에 방석을 사드리겠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할머니는 손자의 그말한마디에도 너무 기쁘셨는지 밥먹는 동안 머리

 

를 계속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니는 손자가 주는 방석에 앉아보지도 못하시고 이듬해겨울 눈과 함

 

께 손자켵을 떠나셨지만 사랑을 베푸는 가르침은 아직도 제 가슴에 살

 

아 숨쉬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헤어진날 처럼 쌀쌀한 오늘 그시절 향수가 끝없이 밀려옵니다.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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