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점은 언어라고....
말은 인간의 두뇌활동을 외부에 보여주는 수단이자,
감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다.
말을 안해도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눈 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전 말이나 행동으로 부터
알게 모르게 산출된 통계적 예측 범위라고 해야 할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 내고 들어야 한다.
자기를 들어내는 수단으로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언어는 사용된다.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완곡한 어조로 돌려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말해야만 이 사람이 알아 듣겠지....
내 감정을 실어 보내야만 이 사람이 따라 할거야 하며 마구 말을 쏟아 낸다.
하지만, 그건 자기 본위적인 생각일 뿐,
타인의 감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대화일 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전이시키는 어려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말을 받아 들이면서 쉽게 이해하지만,
어떤 사람은 쉽게 이해하지 못 한다.
사람은 자기 경험과 이해의 범위를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면 그 말은 옳은 말이며,
자기 이해 범주에서 벗어나면 그 말은 그른 말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소음으로 다가온다.
웅웅거림. 아마 그게 후자일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약한 어조를 통해서도 의사를 전달한다.
인간은 간접적 행동, 상대의 말에 대한 반응으로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사소한 행동과 반응에 상처 입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모는 아이에게 말로서 삶의 방식을 가르친다.
이것은 그르다.
이것은 아니다.
그러다 안되면 매를 사용하게 되지만, 매를 맞게된 원인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다면
그건 그냥 분노라는 감정 표출 밖에 되지않는다.
부모의 입장으로 전달했던 말은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방법의 경험치를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전이 이런 말들을 하나 하나 전달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는 반항이라는 방법으로
부모의 말을 무시하거나 순응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삶이 지나가면,
아이가 갇고 있는 지식의 범위는 부모의 지식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더 많은 정보치 새로운 정보에 대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그 정보의 양은 부모의 양을 넘어서고
이제는 가르쳐주는 입장이 반대가 되게 된다.
부모의 잘 못된 면이 보이기도 하고, 잘못 가르쳐 준 부분을 하나 하나 깨닫게 된다.
이 때부터, 부모에게 정면 대응을 하게된다.
그건 틀렸어요.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말을 하는 입장은 아이가 우선이 되고, 부모는 들어주는 입장이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없다.
응, 그러니....
그렇구나....네가 맞다.
늙어서 그래....
부모는 자신의 무지를 나이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부모의 가치관은 그 시대를 통틀어 동일한 것이며, 당시에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수 밖에 없다.
시대가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질을 변화 시킬 뿐....
내가 아는 말로 구성된 현실의 정보가 언젠가는 그릇된 것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항상 한 참 뒤인 것이다.
부모는 쉽게 자기의 잘 못을 인정한다.
아이의 성장이 대견스러울 뿐....
말을 할 수 없던 아이에게 말을 가르쳐주고, 자신을 넘어선 그릇의 크기에 그냥 신기롭고 대견스러울 뿐이다.
부모는 쉽게 들어준다.
자식은 쉽게 말을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쉽게 상처 받으며, 쉽게 아파하고 , 쉽게 빠져든다.
작은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정보 , 옳은 말이라도 그것을 받아 들일 사람이 준비가 안됐으면, 그것은 상처로 남는다.
말의 상처가 아니라 감정의 상처로....
사람은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도, 간접적인 경험치 ....인간의 반응으로 이미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데
익숙하다.
흔히 말하는 눈치다.
어렴풋이 느끼는 분위기가 현실이 되었을 때, 더욱 아파한다.
웃음 속에 감춰져 있는 말 몇마디에 더욱 크게 다친다.
언중유골이라고 했던가? 내 작은 한 마디가 큰 회오리를 몰고 올 수 있다.
그 회오리를 잠재우는 것 또한 말이다.
내가 호의를 가지고 말해도 상대가 받아 들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친하기 때문에 더욱 쉽게 생각하고,
혈육이기에 더욱 쉽게 받아 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서로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이다.
항상, 가깝기에 은연중 "내가 이정도 말을 하면 받아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야 , 오죽하면 이런말을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이해의 범주이며 동시에 나를 이해해 줄거라는 것에 대한 복선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산다는 것은 시원한 일이지만, 그 말을 받은 사람의 아픔과 그 말뒤에 내게 따라올 후회의 감정을 두 번 정도 생각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한다.
사람의 말은 한 마디 밷으면 두 마디가 되고, 다시 한 사람을 건너가면 와전되며 원래 의도 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사람은 자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기의 감정을 몸짓이나 말로서 전달한다. 이미 피부로 눈치 채고 있던 사실을 말이라는 직접적 언어로 가슴에 와 닿으면 말은 슬픔으로 와 닿는다.
때로는 하지 말아야할 말들이 있다.
그선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말을 하게 되었을 때 자신도 힘겨울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르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삶이 나를 고단하게 하지만, 그 어려움은 그런 환경에 동화되어가면 나는 '나'로서의 존재를 희석시키게
된다.
가끔, 내 자신이 나로 보이지 않을 때, 이러면 안되는 데....하고 생각이 들었을 때, 조심스럽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가치관이 무너진 사회에 동화되면,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없다. 세상이 그래서 그래라는 우리의 틀 속에 자아를 집어 넣으면, 그 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울어줄 사람도....
내 말을 아마 사심없이 들어줄 사람도....
내 잘못을 쉽게 용서해 줄 사람도....
이세상에는 단 몇 사람 밖에 되지 않는다.
말로서 그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보다 내가 조금 아프더라도 그 상처가 내 가슴에 남더라도 그냥 간직하고 있다면 언젠가 ....아니 한 참뒤에 다가올 후회라는 그늘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든다.
나 부터도 그렇게 하지 못 하기에 ....
나 부터도 그렇게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더욱 맘이 쓰리다.
횡설수설한 것 같다....
커피나 한 잔 마셔야 겠다....
쓰린 맘을 쓰디쓴 커피로 채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