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문화의 기호로서 영원히 살아있는 마릴린 먼로
- [Norma Jean and Marilyn]=영원히 소비되는 섹시 스타 -
미술사의 한 흐름 중에 팝아트라는 것이 있다. 영국에서 사회비판적으로 탄생해 미국에서소비문화에 굴복했으며, 대중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는 미술사조.
그리고 그 중심에 앤디 워홀이라는 사람이 있다.
대중문화의 스타나 저명인사들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묘사하거나 임의적인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순수고급예술의 엘리티시즘을 공격하고 예술의 의미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던 팝아트계의 수퍼스타. 앤디 워홀, 코가 콜라를 그림에 무한 복제한 앤디 워홀, 무한 복제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을 무한히 팔아먹어 떼 부자가 된 앤디 워홀.
그런 앤디 워홀이 미국 소비문화의 상징으로 무한 복제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20세기 최고의 섹시 스타 라고 불리며 그 죽음이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마릴린 먼로다.
워홀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무한 복제 해서 팔아 먹을 수 있는 인물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먼로나 제임스 딘 같은 슈퍼스타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다 죽고 초상권 등의 문제가 될 리가 없었으니, 얼마나 좋은 소재였겠는가?
마릴린 먼로는 살아서는 헐리웃 스타시스템으로 상품화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였으며, 죽어서는 미국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어 팔려지는 장사꾼들의 스타로서 다시 한번 살아났고, 지금도 영원히 죽지 않는 대량 소비의 아이콘으로 살아있다.

워홀의 62년 작 “25개의 마릴린”중(실크 스크린)
앤디 워홀에 의해 60년대 풍요의 미국 자본주의에서 대량 소비의 상징으로 그려진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난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서도 그녀는 그녀를 키워주었던 헐리웃에 의해 다시 한 번 되살아 났다.
“노마진 앤 마릴린”이라는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내면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는 구성을 지녔다고 해도, 미국 자본 주의를 상징하는 마릴린 먼로를 다시 한 번 소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더욱이 그 옛날 마릴린 먼로가 자신의 몸을 최대한 상품화 시켰던 것과 같이 이 영화에서는 ‘애슐리 쥬드’와 ‘미라 소르비노’라는 뜨고 있는 두 여배우의 섹시함을 상품화 시키고 있다.
먼로의 이중적 심리 묘사는 마치 상품을 잘 포장시켜 천박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교묘한 장치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으며, 그나마 그녀의 의문에 죽음에 관한 부분은 완전히 경시되어있다.
도대체 먼로의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그녀의 어린 시절의 치부를 드러냈고, 스타가 된 먼로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차로 밀어 죽이는 등의 심리극적인 듯한 장면을 삽입시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먼로의 인생을 이중적 심리 묘사를 곁들여 재 조명한다고? 웃기는 콩떡에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호프의 눈에는 먼로의 섹시함이라는 기호에 두 여배우의 전라 연기를 덧붙여 다시 한번 마릴린 먼로라는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열을 올리는 헐리웃의 교묘한 장사 속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판 비디오 버전에서도 필요 없이 에슐리 쥬드와 미라 소르비노의 음모가 적나라하게 다 나온다. 예술성은 무슨 개뿔이 예술성인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이놈의 헐리웃의 속셈은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유치하다


아마 인류의 역사상 마릴린 먼로 만큼의 상품성을 지니는 여배우는 다시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어떤 여배우가 그녀 처럼 남자들로부터 경배를 받을 것이며, 당시 ‘죠 디마지오'라는 최고의 운동선수와 ‘아서 밀러’라는 최고의 극작가로 대변되는 최고의 야성을 가진 남자와 최고의 지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국 역대 대통령 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의 연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마릴린 먼로는 영원히 죽지 않고 “섹시함의 대량 소비를 위한 영원한 아이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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