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탈리아의 유로2012 개최 실패와 관련하여 여러 분석이 이탈리아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글은 그 의견을 취합하여 전해드리는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잘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미 여러 곳에서 지겹게 들었을 얘기가겠습니다만, 이탈리아의 축구계로선 정말로 힘든 한 시즌이 되고 있는 이번의 06/07 시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즌 전부터 이미 칼치오폴리 파동이 한바탕의 대폭풍을 일으켜 주었고 극적인 월드컵 제패로 분위기를 전환한 것도 잠시, 시즌 중간에 시칠리아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리아를 또 한번 뒤엎었죠. 최근에는 충격파가 좀 덜하긴 합니다만 메시나와 관련한 칼치오폴리 II 라는 스캔들까지 퍼져나오고 있는 마당이니, 세리에A 출범 사상 가장 어두운 시즌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승부조작 파동이 이탈리아 축구가 이만큼이나 썩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되어 커다란 변화와 자성의 계기를 마련하긴 했습니다만, 기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굳이 승부조작 문제가 아니더라도 산더미같이 큽니다. 칼치오폴리는 그러한 저열한 인프라가 만들어낸 어둠의 자식일 뿐이죠. 분명 이탈리아의 세리에 A는 '전술을 강조한다'는 확고한 색깔 아래 유럽 3대 리그에 꼽힐 만큼의 강함을 가졌고 숱한 스타 플레이어를 거느리고 있으며 밀란을 필두로 한 실제 유럽 컵에서의 성적 역시 대단히 뛰어납니다만, 그 인프라라는 것은 팀의 실력과 티포지들의 열정에 비해서는 대단히 열악하다는 말을 쓸 수 밖에 없게 만들 정도로 부족합니다. 그것들을 거론하자면 물론 끝도 없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 정도를 언급하면
불공정한 중계권료 분배
정부의 축구구장 소유
정도로 집어낼 수 있습니다. 피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저게 무슨 커다란 문제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깊이 통찰해보면 저것들이야말로 세리에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가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선 중계권료 분배의 문제입니다. 우선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EPL을 들겠습니다. EPL은 구단간의 중계권료 분배가 잘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봐도 좋은 리그이기에 비교 대상으로도 적절하군요. EPL의 경우 국외에 중계권을 파는 주체는 FA(잉글랜드 축구협회)입니다. 그들이 중계권료를 팔아 수익을 남기고, 그 수익을 리그내 각 구단에게 성적에 따라 차등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축구에 일정수준 이상의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차기시즌 EPL 각 구단에게 돌아가는 돈은 순위에 따라 5000만 파운드에서 3000만 파운드라고 합니다. 900억에서 600억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이죠. 중소클럽에게도 막대한 자본이 돌아가기 때문에 클럽들은 차기시즌엔 탄탄해진 재정을 바탕으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리그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겁니다. EPL이 중계권 판매에 혈안이 되어서 아시아 시장을 집중공략하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리그 경쟁력 강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번엔 세리아의 분배 방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로 말할 것 같으면 축구 협회가 중계권을 파는 것이 아니고 각 구단별로 중계권을 팔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밀란이 자신들이 치루는 38경기의 중계권을 파는 식이 되는 겁니다. 이러한 방식에선 당연히 '시청률이 더 나올 것 같은' 강팀 경기의 중계권을 구매하는 데에 발길이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중계료로 인한 수익 차이가 천문학적으로 벌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재정적 차이가 선수 영입에서의 차이를 낳고, 강팀과 약팀의 전력차 심화를 낳고 중위권 부재의 리그가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그런 악순환 고리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세리아 클럽이 최근 몇 년간 중상위 클럽들의 격전지 유에파 컵에서 어떤 성적표를 남겼는가 분석해 본다면, 그 폐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올시즌의 라리가가 4강 중 3팀을 배출하고 지난 시즌엔 EPL팀인 미들스보로와 라리가의 세비야가 자웅을 겨루어 세비야가 유에파 컵을 제패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세리아 클럽들은 8강 이상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지난 시즌의 팔레르모가 분전하긴 했지만 올시즌은 그나마도 빛을 발하지 못한 채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7공주 시대라며 상위권 클럽들이 전력이 평등하게 전력을 분배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그 상황에서조차 자산으로 팀을 운영하는 클럽과 부채로 팀을 운영하는 클럽이라는 두 개의 구조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전자가 유베와 양밀란이었고 이들은 현재 '돈을 지배하는' 쪽에 서 있다면 후자가 양로마와 파르마, 피오렌티나가 되고 이들은 대부분 여전히 강합니다만, 예전같이 많은 돈을 투입하진 못합니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파르마로, 주축을 모두 매각하고 이제 강등을 앞두고 있죠.
자 이렇습니다. 이 모든 발단을 중계권 매각의 비합리성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리그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하죠.
다음 스타디움 문제 역시 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세리에A 의 중대한 문제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평균 관중 수의 꾸준한 감소현상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중소클럽까지 평균 관중이 3, 4만에 달하던 황금의 리그 세리에A는 이제 관중이 가장 많다는 밀란조차 5만명이 될까말까한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특히 올시즌은 평균 관중을 어느 정도 책임지던 유벤투스의 존재가 리그 판에서 사라지고, 시칠리아 사건으로 인해 홈관중 입장이 제한되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주역인 카타니아는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는 등 평균 관중 수는 기록적이다 싶을 만큼 처참합니다.
유벤투스의 강등이나 시칠리아 사건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 리그의 평균관중이 대폭 감소하고 있는 문제에선 스타디움의 시설 노후가 빠질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됩니다. 90년에 월드컵을 개최했던 이탈리아는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의 스타디움에서 그다지 나아진 수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수가 생긴 부분도 많고 낡은 부분도 많고 잔디의 수준도 형편 없는 곳이 많습니다. 경기장과 도시가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유벤투스의 델레 알피 구장 같은 경우가 찾아가기가 힘들어 관중이 대폭 하락한 경우라고 하죠.
누수가 생기면 보수하면 되고 낡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증축을 하고 구장의 수준이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구장을 새로 지으면 됩니다. 일반적인 리그에서는 그것이 진리로서 통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 리그의 경우는 그 간단한 명제를 선뜻 나서서 실천할 수 있는 팀이 드문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장이 구단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선 모든 구장은 국가가 소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단 측에선 자신들의 소유도 아닌 구장에 굳이 거금을 들여가며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하자를 보수하는 데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시설은 계속 낙후되고, 낡은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는 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관중들은 점차 경기장에서 발걸음이 멀어지게 되고, 입장료로 인한 수입 감소로 이어지면서 리그의 재정 규모 감소를 낳는 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지난 10여 년간 이탈리아에서 이어져 오고 있는 패턴입니다.
이러한 순환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구장 보수를 단행하면 안되냐는 주장도 있지만, 그에 대한 부담이 상상 이상으로 커다랗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시칠리아 더비 사건 이후 각 구장에 안전 기준 조건을 제시하면서, 그 조건에 맞게 '구단의 비용'으로 보수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었는데 당시 양 밀란이 산시로/주세페 메아짜를 보수하기 위해 투입했던 돈이 800만 유로에 달합니다. 이는 한화 100억에 달하는 금액으로 물론 산시로의 규모 덕분에 보수비가 더욱 많이 나온 감은 있었습니다만 100만 유로의 사용에도 쩔쩔매는 이탈리아의 중소구단들이 수백만 유로의 돈을 투입해 가며 보수와 개축을 할 여유가 있어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뭐, 이탈리아 중소클럽들이 100만 유로 단위의 자금 지출에도 조심스러워져야 한다는 자체가 리그 중위권의 경쟁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반증이 되겠군요.
사실 평균 관중 문제라면 단기적으로 다음 시즌 유벤투스와 나폴리가 승격하고 아스콜리와 메시나가 강등된다면, 수치상으로는 상당부분 개선될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유베와 나폴리가 평균관중 30000명에 달하는 클럽들이고 아스콜리와 메시나가 평균관중 10000명도 되지 않는 군소 클럽들임을 감안한다면 말이죠. 그렇지만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낡은 스타디움에 손을 대 관중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로 2012란 이탈리아에게 있어 적어도 2번째 문제의 개선을 꾀할 수 있는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경기장 인프라로는 유럽 규모의 거대 대회를 치러낼 수 없음은 사실이고, 그렇기에 정부의 주도하에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스타디움들에 대대적인 정비를 가했을 테니까요. 어쩌면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 클럽들에게 구장의 소유권을 주고 알아서 구장을 보수하라고 내비두는 것보다야 지금 당장의 상황으로는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칼치오폴리 파동이나 시칠리아 폭력사태 등으로 대외적인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이긴 했지만, 헝가리-크로아티아, 폴란드-우크라이나라는 경쟁국가들에게 승부조작이나 관중 폭동의 문제가 거의 동시에 발생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땐, 그나마 인프라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쪽에 가장 큰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컸고, 실제로 1차 투표때는 이탈리아가 1위로 통과하기도 했죠.
하지만 어쩄거나 최종적으로 유로 2012의 개최지로 선택된 것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어선 동유럽의 몰표로 UEFA 회장 자리에 오른 미셸 플라티니가 이탈리아를 배제하고 동유럽 쪽을 집중적으로 밀었다는 루머성 뒷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그러한 정치적인 문제는 배제하고- 어쨌거나 이탈리아는 실패했습니다. 리그 인프라의 개선을 바랬던 팬들로서는 정말로 실망스럽게도 말입니다.
아쉽지만, 유로2012는 떠나보내고 이탈리아 축구계로서는 다른 방향에서의 개선 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게 있어 그 개선 방안이란 말할 것도 없이 중계권 판매 방식을 개선하고 스타디움의 소유권을 구단에게 맡기는 것이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 스타일을 썩 선호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들의 재정 구축 방식이나 탄탄한 운영은 이탈리아 축구가 정말로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적으로 황금기를 맞았으면서도 방만한 부채운영으로 쉽게 몰락해버렸던 세리아에 비해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재정적인 호황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그렇기에 지안프랑코 졸라와 파올로 디 카니오를 통해 이탈리아의 '선진'축구를 잉글랜드가 받아들였던 것처럼, 20위 팀에게도 3천만 파운드(한화 570억 가량)라는 거액을 매 시즌 분배할 수 있는 이피엘의 탄탄한 운영을 이제는 세리아가 벤치마킹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 이탈리아 축구가 너무도 좋습니다. 아마 평생동안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들 고유의 축구가 아주 나중에라도 재정적인 파탄으로 인해 리그 경쟁력을 잃어 '수준미달'이라는 말로 비하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축구는 세계 그 어느곳의 축구보다도 치밀하고 신중하고 전술적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탈리아 축구입니다만, 제가 열거한 제반의 문제들 그리고 그 외에도 리그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병폐를 떨쳐내고 다시 한 번 10년 전의 영광을 재현해 내길 바랍니다. 아니 분명히 그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글의 마지막으로,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어떤 의미로는 진부하기 때문에 그 이상 가는 것이 없는 표현이 있죠. 자 이제 글을 끝내겠습니다.
FORZA AZZUR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