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족에 대한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군요..
오늘 동생이 어머니를 부끄러워한다는 글을 읽으며 사춘기시절의 제가 떠올라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맞벌이부부셨던 부모님 대신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도시에 계셨고 매주 주말마다 저를 보러 내려오셨지요.
시골 할머니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아이교육도 그렇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저희 할머니.. 세상 어떤부모 못지않게 저를 잘 가르치셨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게 동요를 가르쳐주시고 자기전엔 동화책을 읽어주셨습니다.
다섯살땐 제 이름쓰는법을 가르쳐주셨고 유치원에 들어가서부터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절 앉혀놓고 시계보는법, 구구단외우기 등을가르치셨습니다.
(저희할머니.. 지금도 늘 제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니 조기교육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어린 손녀가 귀여울법도 한데 할머니께서는 제가 할머니밑에서 자라서 버릇없다는 말을
듣게 하고싶지 않으셨답니다. 잘못을 하면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리셨고 그런 할머니덕분에
적어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고, 예의범절이 무엇인지 알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매사에 정직하게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할머니께서 엄하게 저를 키우셨다면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한테 혼난 저를 보듬어주고
포용해주는..그런분이셨습니다.
시간이흘러 초등학교 고학년의 나이가 되고..
저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모든것이 다 부정적이고 못마땅했습니다.
젊고 예쁜 엄마들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어느순간부터 할머니와 길을 걷게되면
조금 떨어져서 걷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와 같이 다니는데 난 왜 할머니랑 다녀야돼? 내가 고아야?
........................
그리고 그해 운동회..
이번에는 꼭 엄마가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점심시간이 되고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아침, 급하게 회의가 생겨 내려올 수 없었던 겁니다.
할머니께서는 서울 고모댁에 가셨구요..
그날 아침.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할아버지께서는 한손에는 양념치킨을,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아침에 할머니께서 싸놓고 가신 김밥을 들고 학교로 오신겁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가 미웠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농사일때문에 늘 흙투성이가 되는 할아버지보다는 매일아침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우리 아버지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운동회에 와주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저를보며 반갑게 웃고계신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 할아버지 가... 집에 가란말이야..."
할아버지께서는 아무말도 못하시고는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오후.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저에게 할아버지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우리 손녀딸, 달리기 일등했어??" 하시며 제게 웃어보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그땐 미처 알지못했습니다...그저 엄마가 오지 않았다는게
속상할 뿐이었죠...
중학생이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고등학교시절.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열두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는 저를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는 꼭 불을 밝혀두었습니다. 단한번도 집에 불이 꺼진적이 없었습니다.
낮에 농사일을 하고 돌아오시면 피곤할법도 한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뜬눈으로
저를 맞이해주셨습니다. 가끔 주무시는 날이면 제가 들어오는 기척에 잠에서 깨어
무척 미안해 하셨습니다... 새벽같이 학교에 가는 저를위해 늘 아침이면 각종 과일과 채소를넣은
쥬스를 만들어 주셨구요...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무럭무럭자라 어느덧 대학교3학년이네요..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것도 사드려야지...
했는데 타지역으로 대학을와서 요즘은 자주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가끔 한달에 한번 집에 내려가면
할아버지께서는 그동안 맛있는게 생겨도 꾹 참고 모아두셨다가 제게 주십니다..
얼마전에는 집에내려간 김에 충치치료를 하기위해 치과를 갔는데 180만원의 진료비에
당황스러워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제게
혼자 있으면서 아프면 얼마나 서러워.. 내려온김에 다 치료받고가.. 하시면서
선뜻 진료비를 내주셨습니다... 시골노인에게 180만원은 굉장히 큰돈일텐데말이예요...
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맙고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을위해서는 십원한장 헛되게 쓰시는분들이 아니신데....
제겐 늘 사람은 발이 편해야 된다면서 백화점에서 구두를 사주시면서 당신은 시장표 오천원짜리
운동화를 신으시는 분들이십니다...
저희할아버지..할머니
일흔일곱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시골에서 소를키우고 농사를 지으십니다.
평생 못배운게 한이되어 아버지 삼촌..모두 힘들게 대학교육까지 시키시고...
당신을 위해서 담배한개피, 술한모금 안드시면서 그렇게 절약하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젠 쉬실법도 한데 이젠 제 등록금을 주신답니다...
안그러셔도 되는데..... 너만 잘되면 더이상 바랄게 없다는 두분...이십니다.
제가 내려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십니다.
우리 손자딸이 서울서 명문대학다녀.. 판검사 될꺼여!
가끔 공부가 힘들고 지칠때면
다 포기하고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럴때마다 할머니께서는 맞춤법이 다 틀린 문자메세지를
보내주십니다.
XX야 밥은 머겄니? 공부 열시미 하여라..
몇자안되는 문자메세지에 다포기하고 주저앉으려다가도 저는 다시 일어선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척 힘이드네요...
저는 여태껏 그분들이 평생 제곁에 있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졸업하면.. 취직하면.. 그때 효도하자 하면서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문득문득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1월..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셔 수술을 받게되신 할아버지...
아직 몸이 다 회복이 안되셨는데도 농번기라며 하루에도 몇번씩 아픈몸을 이끌고
밭에 가신답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뵈며 해드릴 수없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빨리 성공해서.. 할머니할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은데...
너무 속상합니다...
그리고 철없던 지난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그런 기억들이 떠오를때면 저때문에 편찮으신것같아
죄책감조차 들기도 하구요...
이번 어버이날은 집에 내려가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고 싶네요..
할머니 할아버지가슴에 빨간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도 하고싶습니다...
제 목숨..떼어서 드리라면 그렇게라도 하고싶습니다...
부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합니다...
할머니,할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