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없었다. 시작만이 존재할 뿐....
업무에 지장을 주리만큼 매일 울려대던 전화를 더 이상 버텨 낼 자신도...
매일 즐거운 얼굴로 점심을 같이 하고, 퇴근 후면 직장 상사를 안주 삼아 생맥주를함께 들이키기도 했던 직장동료의 뜨거운 눈총도 더 이상 모른척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비정규직이지만 1년 이상을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 눈물을 머금고 사표를 던졌다.
곧 정규직으로 채용 될 것이라는 상사의 통보를 받고 난지 불과 한달이 되지 않아서였다.
꽤나 밀린 카드대금이 내 사표의 단 하나 이유가 되었다.
20여년을 자식처럼 일구셨던 아버지의 사업은 4년여 전 급속도로 어려워 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 빌린 돈을 상환하느라 집도 차도 팔아 보았지만 아버지는 감당하기 어려우셨는지 서너장이던 나의 카드에서도 돈을 인출하여 사용하셨다.
빠른 시일 내에 갚아주마 하고 약속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결국 아버지의 회사는 부도 처리 되었고 나는 그때부터 수군데 카드사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집으로 핸드폰으로 오던 전화는 언젠가부터 회사로 이어졌고 때때로 회사 앞까지 찾아와 밀린 카드대금을 상환할 것을 독촉하기 시작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 번째 둥지를 틀었던 직장...
꼼꼼한 성격에 맞던 의류회사라는 이유와 작지만 탄탄했던 중소기업이란 믿음,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아 평생 직장으로 삼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직장에 나는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사표를 던지게 되었다.
직장을 그렇게 관두고 딸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아버지만을 원망하며 1년여를 지냈다.
개인사업을 오래 하시며 탄탄한 인맥을 쌓아두셨던 아버지라 사업이 부도가 난 후에도 생활비는 벌어 오셨기에 나는 신용불량자는 취직을 못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하릴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실 1년여를 놀며 직장을 이곳 저곳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지인의 소개로 구인광고로 몇몇 군데를 찾아가 보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내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 직장생활 4.5년 차라 대리로 주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새 직장을 구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다시 일어서 내게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없어지기만을 바라며 매일 매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무렵 아버지는 급작스레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잃은 현실조차 믿겨지지 않거늘 난 군대에 간 남동생을 대신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부도로 인한 삶의 갑작스런 변화와 아버지의 죽음은 원래 약했던 엄마의 건강을 더 나빠지게 했다.
그런 엄마를 위해서라도 장녀인 내가 힘을 냈었어야 했지만 나는 엄마보다 더 약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고 존경했던 아버지도 더 이상 아무말씀도 하실 수 없게 된 그 때...
신용불량자라는 큰 넝쿨을 뒤짚어 쓰고 한 가정의 생활을 어떻게 꾸려야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도와 줄 누군가가 없었기에 나는 일어서야 했다.
이곳 저곳 일을 구해보느라 뛰어 다녔지만 신용불량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신용불량자도 취업이 된다며 취업을 알선하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작은 금액이지만 사기까지 당하는 일마저 겪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먹고 살기 위해 가졌던 취업의지도 그렇게 버려졌고, 결국 엄마와도 가정형편으로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이모 댁에서 나는 삼촌 댁에서 도움을 받아 살아야 했고 나는 꿈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다.
어느날처럼 삼촌댁의 작은 방에서 라디오나 들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쯤 친구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무조건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오라는 전화였지만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삼촌댁 집 앞까지 찾아와 기다리는 친구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대충 차려 입고 문 앞을 나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겨울이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이미 봄은 와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던 친구에게 끌리다 시피 찾아간 것은 노동부에서 후원하는 취업 박람회 현장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수 많은 인파에 주눅이 들린 것도 잠이 깨끗한 차림에 밝은 모습의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 이것 봐!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찾으러 와 있잖아.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주려고 와있고... 세상에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왜 시작도 않고 포기니? 이제 어머니 모시고 살아야지.”
하던 친구의 핀잔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 역시 다니던 직장에서 갑작스레 퇴사를 하는 바람에 급하게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딱한 처지 였지만 되려 행여 실의에 빠져 있는 내게 용기라도 줄까하여 취업 박람회 현장으로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어려보이는 학생, 한 집안의 가장인 듯 되어 보이는 40대의 아저씨, 그 틈에 약간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한 아가씨도 있었다.
내 또래가 되어 보이던 아가씨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다리를 조금씩 절면서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갑작스레 창피해져 왔다.
신용불량자라는 이름으로 나만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도 저렇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뛰어 다니는데 건강하고 젊은 내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
밝은 얼굴로 열심히 오가는 사람들을 보자 마음에 가벼운 봄바람이 살랑였다.
어딘가 내가 일할 곳도 있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고 취업 박람회의 여기저기를 기웃 기웃 거렸다.
역시 그곳에서도 나의 일자리는 찾지 못했지만 나는 작은 용기를 얻고 돌아왔다.
노동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워크넷을 알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언젠가 인터넷 검색으로 워크넷을 뒤적거려 본 기억이 있었으나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한결 믿음이 생겼다.
한번의 사기 이후 믿음이 가지 않아 내팽겨 쳤던 인터넷을 그렇게 다시 뒤적 거린 것도 워크넷 덕분이었고, 워크넷에 올라와 있던 수 많은 채용정보 중 몇 곳을 골라 여러번의 다리품 팔 일 없이 전화로 내 상황을 이야기 하고 방문 하였다.
물론 신용불량자라는 나쁜 조건을 인지하였기에 내 기대보다는 조금 낮추어 몇 곳을 방문하였고 일주일 정도 후엔 꿈에 그리던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이 지금 나의 직장이 되었다.
의류를 판매하는 판매직...
쉬는 날도 많지 않고 월급도 많지는 않지만 나는 오늘도 웃으며 고객을 맞이한다.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인지 아직 판매직은 일자리가 참 많다.
나의 직장만 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내가 두사람, 세사람 몫의 일을 해야 할때도 많았다.
주위를 돌아보면 아직도 이렇게 일자리가 많은데 내가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것은 신용불량자라는 나쁜 조건 때문이 아닌 무조건 좋은 곳,편한 곳에서 일하고자 했던 나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게 옷을 만지는 지금의 일은 의류 회사에 다녔었던 경력때문인지 즐겁고 편하다.
또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곳이 생겨 힘이 난다.
2년여를 열심히 일한 덕에 작은 방이나마 얻어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고 군인이던 동생도 제대를 해 이제 사라졌던 희망이 하나 둘 생겨간다.
아직도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는 그대로 이지만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어 지금 나는 어느 대기업의 직장인 보다 행복하다.
끝은 없었다.
다만 노력이 없었을 뿐...
쓰러져도 다시 한번 노력해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힘을 내본다면 시작만이 존재할뿐...
부끄러운 저의 취업수기를 올려봅니다.
매끄럽지 못한 글이나마 꼭 쓰고 싶었던 이유는 아직도 일자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많은 구직자들에게 그리고 구직자들 중에서도 신용불량자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서 취 노동부의 취업박람회와 믿음을 주는 워크넷은 취업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보다 취업 의지를 북 돋아준 곳입니다.
허나 일자리를 구하면서 노동부 산하의 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신용불량자 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또는 자신의 실수로 신용불량자가 된 안타까운 이들에게 오히려 일 할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일반구직자, 장애인, 신용불량자 모두가 노동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