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환의 슬라이더는 알고도 못 친다.” 국내 타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만큼 박명환(28·두산)의 슬라이더는 위력적이다. 워낙 빠르고 각도가 커 제대로 맞히기 어렵다. 웬만한 투수들의 직구보다 빠른 140㎞ 중반의 스피드가 나온다. 오른손 타자의 홈플레이트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보통 슬라이더와 달리 아래로 떨어진다. 그에게서 슬라이더 특강을 들어봤다.
―‘박명환의 슬라이더’는 왜 그렇게 치기 어려운 건가?
▲내 슬라이더는 일반적인 슬라이더와 약간 다르다. 나는 일반적인 슬라이더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는 파워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섞어 던진다. 전자가 카운트를 잡을 때 쓴다면 후자는 중요한 순간 삼진 유도용으로 던진다. 슬라이더가 갑자기 빠르게 들어오고 아래로 떨어지니까 타자들이 타이밍과 히팅포인트를 못 잡는 것 같다. 횡으로만 변화하면 수평으로 돌아가는 방망이 어느 곳에든 맞을 수 있지만 아래로 떨어지면 방향이 다른 두 직선이 만나는 한 포인트에서 밖에 맞을 수 없다.
―‘빠르고,아래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의 비법은 뭔가?
▲아주 간단하다. 커브 그립을 잡듯이 실밥을 검지,중지와 나란히 붙이고 공을 엄지와 검지,중지 사이에 깊이 넣어 잡고 던지면 된다. 손목은 옆으로 많이 틀지 않고 직구를 던지듯이 던지되 중지쪽에 힘이 많이 들어가도록 공을 챈다. 직구 폼에서 나오다보니까 공은 당연히 빠르고,실밥을 나란히 잡고 던지다보니 지면과 수평방향도 수직방향도 아닌 대각선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가 가미되는 것 같다.
―처음에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가르쳐준 사람이 있었나?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다. 프로에 와서 스스로 개발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커브를 잘 던졌다. 그런데 프로에 오니까 타자들이 커브를 잘 보고 잘 쳐냈다. 장호연처럼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선배들을 보고 연구했다. 의식적으로 정석적인 슬라이더를 던지려 하지 않고 편안한 폼에서 다양하게 던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직구와 커브의 장점이 가미된 것 같다.
―자신의 슬라이더에 대한 자부심이 클 것 같은데?
▲어릴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미완의 대기’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자기만의 확실한 결정구를 갖는다는 것은 편안함과 자신감을 준다. 미약하나마 나도 이 공 하나만으로 10년을 버텨왔다. 2-3든,0-3든 어느 상황에서든 자신있게 던질 수가 있다. 내 공의 50% 이상은 슬라이더일 것이다.
―오래 던지다보면 타자들이 익숙해지는데.
▲물론이다. 투수에게 진화는 생명이다. 표시는 안 나지만 나도 조금씩은 계속 변화를 주고 있다. 2년 전부터 백도어 슬라이더를 간간이 던지고 있다. (오른손 타자의 등뒤로 가는 듯하다 가운데로 파고든다고 해서 ‘백도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 슬라이더에 익숙해 있던 타자들이 이 공을 보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 타자 중에는 누가 자신의 슬라이더를 가장 잘 치는 것 같나?
▲삼성 김한수 선배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 볼카운트 2-0 같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방망이를 던지면서까지 떨어지는 빠른 슬라이더를 커트해 낸다.
―국내 투수 중 박명환 슬라이더에 견줄 만한 명품 슬라이더를 꼽는다면?
▲현대 조용준의 슬라이더가 최고다. 직구처럼 오다가 살짝 꺾이는 것이 일품이다. 빠르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하지만 컷패스트볼과 유사한 각을 띤다. 그래도 분명한 슬라이더다. 던지는 사람의 팔 컨디션에 따라 공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새로운 공을 배우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어떤 공이든 자신에게 맞게 던지는 게 중요하다. 쉽게 즐기면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마운드에서 정확하게 던지는 것만 강조하기 때문에 새 변화구를 익히는 데 2∼3년이 걸리지만 미국에서는 6개월 만에 끝낸다. 마운드에 섰을 때만 그 공을 던져보려 하지말고 평소 캐치볼할 때부터 손에 익도록 많이 던져봐야 마운드에서 쉽게 던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