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렇게 좋을 줄은 나도 몰랐는데..?
우리 잠시동안 서로를 의식하지말고 나름대로 이 기분을 느껴볼까..?"
양팔을 머리위로 곧게 뻗은 준의 두 눈은 이미 무언가를 느끼는 듯 감겨있었다.
입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한번의 숨에도 가슴속 그 안쪽까지 깊게 부딪히는 기분을 만들어 주었다.
현주는 준과 나란히 선체 앞을 응시했다.
난생 처음 보는 듯한 도시의 불빛들과 간간이 들리는 물결 소리까지..
서서히 다른 세계로의 출입을 허락하는 분위기를 위한 코스의 1단계처럼 현주에게 가슴을 열게 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치며 닿을 때의 기분은 긴장된 몸을 서서히
자유롭게 풀어주며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잠깐이라니깐, 너무 분위기 잡는다."
현주는 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빙그레 웃고 있는 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현주도 미소지었다.
"정말, 너무 좋네요. 서울에 살면서 유람선 타본 적 없었어요. 오늘이 첨이에요."
"정말..? 너무 심하다.."
준의 말에 현주는 쑥스러워졌다.
"이거. 서울사람들에겐 오히려 관심 밖의 관광 코스였던가 보네? 사실 나도 첨이거든.. 그럼, 우리 유람선 관광하고 있는 거야?"
준이 개구진 표정으로 현주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웃으니깐, 보기 좋다. 난, 다른 잡념들이 내 몸에서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던데,
현주는 어때?"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머릿속이 텅하니 깨끗이 비워지는 기분."
"배고픔도 사그라들고 좋았지?"
"그 말은 오빠한테 해당되는 것 같은데.. 그쵸?"
"어.? 들켰다."
준에 웃음소리가 크게 공중으로 퍼졌다.
*
"오늘 아주 고마웠어요, 오빠."
현주는 안전벨트를 풀은 뒤에 준을 향해 말했다
"정말?"
준의 물음에 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현주 덕분에 첨으로 유람선도 타보고 말이야. 오히려 내가 더 신났던 것 같애.
현주야, 조급해 하지말고, 아까 그 시원했던 기분처럼 편안하게 대회날짜 기다리는 거다, 알았지?"
"네."
"얼른 올라가서 쉬고... 그래야 내일 또 씩씩하게 연습하지."
준은 현주의 어깨를 아파트의 현관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럼, 오빠도 조심해서 가세요."
현주는 다시 한번 인사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준은 현주가 돌아서서 가자, 잠시 기다렸다가 차를 향해 걸어갔다.
현주는 준이 차에 탈 때쯤 뒤를 돌아보았고,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곤 준의 차가 아파트를 빠져나가자 확실한 걸음속도로 아파트로 들어갔다.
"흠... 기분좋게 만드는 사람이야.."
현주는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무심하게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
"약혼?"
채현은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에 발이 멈춰졌다.
"그래, 채현이도 이리와 앉아라."
"왜 그러고 서있어? 아버지가 이리 오라는 소리 못 들은 거야?"
채현은 엄마의 말에 그제서야 남은 계단을 성큼 성큼 걸어 내려와 거실 중앙으로 섰다.
무현이 앉은자리에서 자리를 별려주며 이동하자, 채현은 털썩 주저앉았다.
"누가.. 약혼한단 말이에요? 흣.. 오빠야? 오빠가 하는거야?"
무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약혼은 무슨말이구 .. 결혼은 뭐에요?"
채현은 쏘아보듯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뭐, 그러게 갑작스러울 것도 없다.
솔직히 결혼을 바로 하는 것도 괜찮겠더구만 여자쪽에선 또 그렇지 않은가봐?
약혼식 올리고 나서 바로 날잡는 걸로 하자니 말야."
"아무래도 그렇죠. 우리 같아도 벌써, 채현이 약혼식 올려주고 결혼할텐데 다 그래요, 요즘."
채현은 이젠 더 이상 부모님의 오가는 말보단 오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손으로 무현의 다리를 흔들어 보았지만, 무현은 여전히 앞만을 응시했다.
"아빠.. 아니에요.
오빠, 지나언니랑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무슨 결혼이야.. 결혼은..?
안그래 오빠? 내 말이 맞지.. 맞잖아. 오빠도 마찬가지잖어.. 왜 말을 못하는 거야, 왜..?"
채현의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이녀석 막내랍시고 어리광 받아주니까 이젠 아주..? 니 오빠랑 다 이야기 끝낸걸 왜 니가 이래? "
"아빠가 뭘 알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 ?
오빠가 무슨 생각으로 결혼하겠다고 한건지 아빠가 뭘 알아.. 뭘 아냐구? 오빤..."
채현의 울부짖는 듯한 말이 끝나기 전.
무현의 손이 채현의 볼을 치고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은 채현이 그냥 둘수가 없어서.. 죄송해요.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무현은 멍하니 고개가 돌려진 채현을 지나치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내참.. 오냐 오냐 했더니 버릇만 더 없어져서는.. "
헛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아버지를 돌아보던 어머니가 채현에게로 놀라다가 앉았다.
"너.. 어쩌려고 이러니..응? 이젠 니가 이 엄마 속 썩이려고 나서는 거야? "
채현의 두 눈동자에선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 세도 없이 떨어졌다.
"아니, 니 오빠도 괜찮다고 한 결혼을 니가 왜 나서서 이래 이러길..응?"
채현의 몸은 엄마의 손이 자신의 어깨며 팔을 잡아 때릴 때마다 앞뒤로 제쳐졌다.
*
방문을 거세게 열고 들어온 무현은 테라스를 가리고 있는 커텐을 힘있게 제쳤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주먹으로 책상을 힘껏 내려 쳤다.
*
바닥에 앉아 침대를 등받이처럼 기대어 움츠리고 앉은 채현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 눈물을 계속해서 손으로 닦고 또 닦았으며, 훌쩍이는 소리가 방 문 밖으로 들리는 채현의 문 앞엔 무현이 우뚝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