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합격했고, 현재 지방직 공무원이며, 작년에 승진하여 현 8급인 공무원입니다.
전 여자구요.. 나이는 스물일곱입니다.
제가 수험생일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친구도 없어서 항상 밥도 혼자, 하다못해 커피도 혼자 책상에서 마셔가며 공부했는데... 정말 고독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독이 저를 성장시키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전 당시 비교적 괜찮은 직장에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힘으로 취업도 스물둘에 쉽게 되서, 수월하게 사회생활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실력 없어도 그 직장에서 시간 좀 보내면 모든 게 자동적으로 해결될 거라 생각했고,
제 스스로 취업해보겠다는 노력도 굳히 할 필요가 없어서 안했습니다.
그러나 제 이런 안일한 삶에 신께서 벌을 주신 건가요..? 전 대학을 불의의 학점 관리 미스로
졸업못하고 그 여파로 직장에서도 쫓겨나게 됩니다. 왜냐면 그 직장에선 대학 졸업을 전제로
절 채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전 그 조건을 수행 못했기 때문에 그 회사에서 나와야 했던
거였습니다.
전 회사에서 나오면서 방황했습니다. 그 계약직이란거, 정말 무서운 조건이었음을 피부로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지금도 비정규직에서 차별받고 힘들어하실 분들 생각하면 그때 생각나서
남의 일 같지 않게 슬퍼집니다.
그래서 전 저를 감히 함부로 왠만한 일 아니면 해고 못 시킬 직장을 찾았습니다.
내가 여자라서, 내가 아이를 낳아서, 내가 결혼해서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절 해고 못시킬
직장을 생각해보니 공무원 밖에 없더군요..--;; 사기업은 대부분 이런 이유로 여직원들을 많이
해고 시킵니다. 그래서 구조조정 1순위로 막 결혼한 기혼여성들이 많죠.
그래서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3년 봄이었습니다.
처음엔 동강으로 시작했다가, 동강은 제 스스로 제어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저에겐 안 맞아서
종로의 학원가로 갔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공무원 시험의 메카는 노량진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노량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학원등록하고, 고시원을 구해서 살기 시작했죠.
아직도..기억납니다.
제 방 문 앞 샤워실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던 가래침 뱉던 소리...천식환자처럼 안쓰럽게
기침하며 괴로워하던 그 소리.. 밤마다 들려왔던...
오랜 수험기간에 지쳐 힘들어하던 한 여학생이 각혈하며 괴로워했던 소리였습니다.
전 그 소리를 들으며 머리카락이 쭈볏쭈볏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잠도 못이루고
울면서 언제 이 수험기간이 끝나는 가 절망했던 생각도 납니다.
1평 남짓, 손바닥만한 고시원 방에 침대빼곤 암것도 없던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새벽 5시에
고시원에서 나오던...그 추운겨울... 제가 다녔던 학원은 문풀 수험생에 한하여 고시학원 별관에
독서실을 무료로 개방했었습니다. 수험생이라 독서실비라도 아끼고, 독서실 가는 시간이라도
줄여볼라고 그 독서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 새벽 5시에 고시원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저 같은 생각을 하던 수험생도 많았나 봅니다. 새벽 5시만 되면, 줄이 엄청 길게 서 있고
잘 보이지도 않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그 기다리는 시간조차 공부하던 노량진 한 학원의
수험생들...
지금 이 시간 동강이 힘들고 슬럼프다 하면서 허송세월 보내신다면, 그 때 그 수험생들은 지금
그렇게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아마 정신이 알아서 버쩍 드실겁니다.
왜냐구요..? 그 수험생들이야말로 죽기살기끈기용기사기 오기로 뭉쳐진 말 그대로 시험장의 `실세' 들이기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모습들을 보며 자극 받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는 다짐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전 기본강의에 문풀을 추가해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공부방법마다 다르시겠지만, 굳히
기본서 마스터-> 문풀 이렇게 정형화된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닙니다.
만약 맞으시다면 기본서와 문풀을 강행해서 공부량을 늘려서 이해도를 높이시는 것도
제경험에 비추어보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그니까 취약한 과목은 기본서와 문풀을 병행해보는
방법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행정학이 쥐약이었는데.. 이 방법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문풀 올정도면
실력도 괜찮은 수험생들이 많아 그들과 앞자리서 공부하면서 자극 받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죠.
공무원 되던 날... 엄마랑 끌어안고 좋아했습니다.
그날은 제 졸업식이기도 했고..(가리늦게 졸업..)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제 스스로 취업하고
부모님과 나란히 웃으며 사진찍던 그 날.. 전 아마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졸업증서와 합격증서를 나란히 받아들며..눈물흘렸던 시간들을..이렇게 웃으면서 되돌아볼수
있던 건, 그 고독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그래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며 난 이제 공무원 수험생
이 아니라 공무원이 될거다!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수험생들 속에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 전 회사 다닐 당시엔 있었던 잘생긴 군인남친에게 차여서 그 실연의
여파도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건 제 인생에 암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남친이던, 애인이던 , 친구던 제가 잘 안되면 그 무엇도 위로도 힘도 못되는 거니까요.
저를 보호하는 건 바로 `나 자신' 뿐이라는 걸 전 그때 수험생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전 지금 공무원 3년차지만, 특히 여성분들에겐 너무 좋은 직장입니다. 구청내엔 어린이집도
있고, 육아휴직도 3년까지 있고, 눈치 안보고 쓸 수 있는 유일한 직장입니다.
제 주변엔 그래서 애기 3명이상 두신 여직원분도 있고 32살에 저랑 동기로 들어오신 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분들, 전혀 차별받으신 적 없습니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즐겁게 공뭔생활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힘듦은 미래의 열매가 주는 시련입니다. 댓가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