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일이 있은 뒤로, 학교에서는 별로 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친구가 없다는것. -_- 내가 무슨 개망나니도 아니고 지그들도 개맞듯 맞고 사는걸 뻔히 봤으면서 소문은 소문의 꼬리를 물고 퍼져서 집앞에서 칼들고 기다렸다 라던가, 정신병원에 있다가 왔다던가, 혹은 전에 있던 학교에서 누구 죽이고 정당방위로 풀려나서 전학왔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까지 돌았습니다.
뭐 소문에 대고 어떻게변명을 하겠습니까. 그냥 왕따, 너는 내운명이거니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체 찌질해서 나 자신을 속이고 대화하는것에 재미가 붙어서, 아예 중독되고
그러던 와중에 고딩의 로망 오토바이에 서서히 빠져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보고 듣다보니, 보고들은 풍월로 아는게 많아지고 결국 친구스쿠터로 연습을 해서 부모님 몰래 원동기면허증까지 따게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 시작하는 VF로 첫 애마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커뮤니티를 전전하다보면 마음이 맞는사람이 생기곤 합니다.
카센터와 오토바이 정비센터를 운영하신다는 형님을 한분 알게되고는, 그분이 모인다는 뚝섬에서 흔히말하는 정모라는걸 하게됬습니다.
저는 후질근한 제 VF를 타고 정모를 나갔습니다. 멋나게. 기름값도 간당간당하던 시절이라 최대한 적게 타려고 했으나, 오토바이 정모라는데 안타고 나갈순 없으니까.
알고보니 뚝섬은, 라이더들의 제2의 고향.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밤에는 바이크 탄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어지럽게 날리는 똥불들, 그리고 잭나이프 하거나 기스내면서 달려가는 미친놈들.
그리고 그곳에서 형님을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되어 일파라는 8년여의 역사를 가진 팀에 막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일파 라고 해서 이거 뭐 무슨 조직이름 같지만 하나의 물결이라는 뜻으로 하나의 물결이 결국 큰 파도를 일으킨다는 뜻으로 초대 형님이 지으셨던 거라는 설명도, 맘에 들었습니다.
우리팀은 애들팀과는 확실하게 다른게, 30대 분들 네분에 40지나신 현님도 한분 그리고 내 바로 윗 막내형이 스물셋이라, 뭐. 나이대가 높기때문에 다들 앵간한 바이트를 가지고 계시고 대개는 두세대씩 가지고 있거나 바이크 판매업을 하시던 분들이셨구요. 때문에 어지간히 빌려타고 부셔먹었습니다.
학생으로서 CBR을 맛보고, 왠만한 고가 바이크 뒷자석엔 다 앉아봤것도 어찌보면 행운이 었기도 했지요. 뚝섬에서 시작해서 일산으로 빠지거나 아니면, 청호타고 하남으로 빠지던 루트가 대부분이었고 저는 기름값만 내고 밤구경을 하고 다니는데 맛이들렸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름값..
아.. 그래서 저는 세계적인 착취아르바이트인 성기데리아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시바.
데리하나 빅하나 테익아웃.. 정말 그런 엿같은 조건의 알바.
학생이 할수 있는 일은 정말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수준의 착취라는건 지금입장에서 어처구니가 없고 - 하여간 안힘든 일은 없지만 성기데리아는 착취의 수준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됩니다.
하여간, 하다가 결국에는 노가다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노가 중에 일비가 센 알바중에 하나. 철거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분중에 오너도 있고 오야지도 있기에, 말씀드리고 따라 다녔습니다.
첫날 8만원 받았고 하루하고 몸져 누웠습니다.
하루빠지고 두번째날 하고 와서 몸져 누웠습니다.
또 하루 빠지고.. 이런식으로 일주일 적응하니까,
이제 오함마 잡는것도 폼나고 빠루로 텍스 뜯어도 가루 안맞을 정도로 적응이 되더군요.
더 좋은건, 철거노가다는 계절을 안타기때문에 겨울에도 일이 많다는거. 페이도 어느덧 한사람 몫을 하니 11만 줍디다.
하여간 방학내내 벌어서 300가량 만들고,
이 호로색히는 부모님 옷하나 안해드리고, 홀랑 오토바이에 갖다 붓고 나머지는 기름값을 했더랬습니다. 아 이 쓰레기.
그리고는 미친놈이라는 말에 증명이나 하듯.
바이크를 타고 등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직원 주차장에 세워놓고 안전장치까지 걸어놓는 것을 본 담임에게 뒤지게 맞아도.
나는 뭐가 잘못된줄 모르면 계속 하는 성격이라. 계속 타고 다녔습니다.
어짜피 고등학교 생활내내 별명이 2교시 칼퇴근이었고. 정말 2교시 이후에는 학교에 있어본 일이 졸라 드믈어서, 뭐 예를들어 일본어시간은 2년동안 단 한번도 안들었군요.
하여간, 그냥 학교는 잠시 들렸다 가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리고, 그밖에 수많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을 계기로- 이건 번외편으로 하겠습니다 에피소드가 워낙이지 많아서 -_- 샤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교에서 통먹는 애들과 술마시고 놀고있는 나를 발견 했습니다. 패싸움때마다 항상 나를 불렀고, 몇가지 에피소드와 단련하기 시작한 몸으로 인해 어느새 싸움에 약간 중독된 듯한 상태도 되었습니다. 길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싸움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고,
뭐.
예전에 공부를 했었는지 안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언제 집에들어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 1년여간을 지내고 나니. 어느새 2학년이 끝나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인쓰레기 리스트에 올라있었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새로 대두된 골치거리로 생각했고, 교장은 무슨일만 일어나면 상담한다고 불러댔고 보통 2교시 이후에는 학교에 없었습니다.
...뭐.
이런 기억들이, 후회가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좋은 친구로 남아있는 녀석은 대부분 이때 만났던 녀석들이고.
알다시피, 뒤에서 지껄이는 놈들보다 대놓고 말할줄 아는 녀석들이 오히려 더 착하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첫 전환기가 될 3학년 담임을 만났습니다.
일명 언샘..
저의 첫 은사가 되셨던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