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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핑 10개의 재앙: 깔끔한 스릴러와 정치적 편견 사이

리핑 |2007.06.15 14:13
조회 69 |추천 0

구약 성서의 출애굽기는 모세를 통해 신이 애굽 땅에 내린 재앙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재앙은 애굽의 바로왕으로부터 히브리인들을 구하기 위한 것으로 나일강이 피로 물든다거나 개구리와 모기, 메뚜기 떼가 몰려들고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결국 장자가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 <리핑 10개의 재앙>은 이 성서의 기록을 모티브로 한 초자연적 스릴러다.

애굽 땅 대신 재앙의 장소로 선택된 곳은 미국 남부의 소도시 헤이븐. 수단에서의 종교 활동 당시 이교도들에게 남편과 딸을 살해당한 아픈 기억 때문에 종교적인 어떤 현상도 부정하는 대학 교수 캐서린 윈터(힐러리 스웽크)에게 어느 날 헤이븐의 교사 더그 블렉웰(데이빗 모리세이)이 찾아온다. 블렉웰은 수수께끼 소녀 로렌(안나소피아 롭) 때문에 마을이 병들어 가고 있다며 조사를 의뢰한다. 의심을 간직한 채 동료 벨과 헤이븐을 찾은 캐서린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앙을 보고 말문을 잃게 된다.

<헌티드 힐> <13 고스트> <고스트 쉽> <하우스 오브 왁스> 등 리메이크 호러에 매달렸던 조엘 실버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호러 전문 제작사 다크 캐슬이 이번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를 내놓았다. 사실 성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반전이나 결말을 눈치 챌 수 있어 맥이 빠질지 모른다. 그러나 할리우드란 영화 공장을 만만하게 보면 아니 되는 법. 재미를 위해 감독은 캐서린의 트라우마와 모성본능의 대립이란 내적 갈등을 끼워 넣었다. 아프리카의 이교도들에게 재물로 바쳐진 딸을 잊을 수 있는 엄마가 누가 있으랴. 이성의 화신이던 캐서린은 로렌이 죽였다는 오빠의 시신을 보고도 모성본능을 잠재우지 못한다. 재앙은 점점 막바지로 치닫고 주민들의 광기도 걷잡을 수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나이트메어 5> <프레데터 2> <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으로 호러와 스릴러 장르에서 잔뼈가 굵은 스티븐 홉킨스 감독은 치밀한 두뇌게임이나 큰 반전대신 재앙의 시각효과에 주력한다. <리핑 10개의 재앙>은 글이나 설교로만 들어왔던 이 재앙을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로케이션지인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풍광도 효과적이다.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미국 남부의 분위기는 현실적인 맥락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공포감을 더해주는 것. 광우병 파동을 연상시키듯 소떼가 죽어나가는 화면도 그 자체로 끔찍하다. 허술한 반전도 <테레비시아 비밀의 숲>의 안나소피아 로렌의 섬뜩한 연기로 끝끝내 긴장감이 유발되어 크게 거슬리지 않으며 90여 분의 러닝 타임도 깔끔하다.

그러나 이 모든 미덕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의 성격과 변화 과정이 삐거덕 거리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며 이를 위해 시종일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일관하는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도 ‘안습’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설정이 종교적인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정치적으로도 공정치 못하다. 도대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미개한 집단으로 그려놓은 것도 모자라 이교도들이 캐서린의 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설정은 시계를 1세기는 되돌린 것처럼 멍청해 보인다.

정치적인 편협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헤이븐이란 마을 자체가 이교도들의 집단이었고 이곳에 내려진 재앙이야말로 성서와 부합한다는 것은 내적으로 아귀가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 속 헤이븐 주민들이야 아이들을 죽인 광신도들로 묘사됐지만 기독교의 유일신을 부정하는 종교적 집단을 또 다른 광신도 집단으로 몰아붙인 설정은 끔찍한 파시즘으로 다가온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그 이전까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일삼았던 다인종 국가 미국의 현주소를 스스로 폭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다. 광신도의 씨앗이 캐서린의 뱃속에 잉태됐다는 반전 아닌 반전은 그러한 미국 사회의 내포된 광기를 은연중에 자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 이것을 유머로 받아들일지 심각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일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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