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난...지후가 평범한 고등학생과는 좀 더 다른 생활을 했을거라고...아니...어쩌면 전혀 평범하지는 않은...그래...어쩌면 나는 그럴수도 있겠구나...아...아마도 지후를 좋아하는 여자가 많았을거라는 생각은 했었는데...아니...분명히 그랬을텐데...어쩌면 혼자서 그 사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그건...내 자신이 너무나 평범해서 그런 멋있는 녀석을 내 마음에 차지하기가 벅차서...혼자서 애써 내 마음이 편하도록 합리화하고 또 합리화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흔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백마탄 왕자나 부유층 자제분들과의 로맨스로 인생을 역전하는 그런 소설이나 영화같은 이야기같은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보는 로맨스를 어쩌면 나는 그동안 꿈에 취해 지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언제나 그에 따른 아니 더한 화가 이른 법이니까...
하지만 내가 두려운건 그 녀석이 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밤을 보낸 사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저 여자로부터 너무나 초라하게 작아지고 있다는 자격지심이었을것이다.
나를 보고 눈을 감아버리는 저 녀석에 표정보다는 놀라는 나를 아무렇지 않는 표정으로 아니 한쪽 입술이 살짝 올라가며 가볍게 웃고 있는 저 여자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터질것처럼 무언가가 밀려드는걸 알수 있었다.
그건 분노도 아니었고 그건 질투도 아니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내 사랑을 잃을수도 있을것만 같은 두려움...
지금 이 상황을 그냥 내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만큼...
다리가 풀려 어떻게 정원을 지나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큰 대문앞에 온몸을 떨다가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애써 손을 짚고 일어서려고 할때 누군가에 손길이 내 팔둑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조금전까지 독한 담배를 피웠는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담배 냄새가 났다.
" 무슨 일이지?? 얼굴 표정이..."
" ...........아...니...에요...근데...왜 여기서...?? "
" 누굴...만나러 왔는데...선뜻 발이 움직이지 않아서..."
그러고보니 자신만큼이나 무척이나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강희였다.
" 혹시...어떤 여자가 오지 않았니? "
" ...... 어떤...여자..? "
" 아니야....괜한 말을 .... 난 조금 있다가 들어갈건데...아...그러보니까 수현씨한테 계속 반말을 하고 있었네...미안! 수현씨가 동안이다 보니까...내가 실수를 했네..."
" ...괜찮아요...근데요...제가...제가요....어떻게 보이세요?? "
" 무슨 말이야?? "
" 그러니까...제가...조금...아니에요...저..먼저 갈께요"
" 정말 무슨 일 있는거 아냐?? 지후는 어딨어?? "
" 지후는...오늘은 다른곳에 있어요....지후는....오늘은 아니...지후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 .........나랑 술 한잔 하겠어?? "
" ......"
" ...부담갖지 말구...그냥 힘들어 보여서..."
난 그냥 고개를 말없이 끄덕거렸다. 그리고 남자가 열어주는 차문안으로 힘겹게 들어셔려고 할때쯤 누군가가 내 손목을 아프게 낚아챘다.
" 허락없이 누굴 데려가는거야?? 형이라도 내꺼엔 손대지마..."
아무런 표정없는 모습...하지만 그 표정이 더 무서운 지후...단지 눈썹을 찡그리는 녀석은 뭔가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내 손목을 끌어당기자 난 힘없이 지후 옆으로 멈췄다.
정말이었다. 지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다. 분명 몇분전까지 내 눈앞에 있던 지후였는데...난 지후를 잃어버렸다. 내 마음을 잃어버렸다.
" 그럼 잘지켜야지...지금 이 여자 안보여??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잖아..."
" 금방이라도 죽을것 같다 해도...내꺼야...내꺼라구...내가 살리든지 죽이든지 할테니까...형은 상관마..."
" 한지후... 언제까지나 그렇게 자신있는지 지켜보겠어..."
" 그러든지...들어가봐! 미나 찾으러 온거잖아...그리고...형! 진심이야...미안하다는 말....진심이었다구..."
" 진심이라고?? 너에 진심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줬는지 알고 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 못할걸..."
나는 애써 힘을 주어 지후에 손을 떼어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힘을 주어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지후였다.
강희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차를 몰아 눈앞에서 사라질때쯤 그때서야 지후는 힘주어 잡고 있는 내 손목을 풀어주었다.
빨갛게 물들어 있는 내 손목을 너무나 미안한듯 바라보고 있는 지후였지만 선뜻 다시 내 손목을 잡지 못하고 애써 고개를 돌리고 뭐라고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하는 아이처럼 떨고 있었다.
" 지후야....생일 축하해..."
떨리는 내 입에서 나온 말에...지후는 그만 웃어버렸다. 어이없는 웃음...하지만 난 무슨 말을 할수도 또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 선물은...........아...안에 두고 와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화를 내는 지후였다.
" 한번만 더 바보같은 말 하면 나 너 못봐....알아 이 바보야...내가 널 못본다고...보고 싶어도 미안해서 못 본다고..."
" 뭐...........그런게 뭐 어떻다고.....있잖아...나도 고등학교때 들었어...뭐...조금이르기도 하지만...뭐...."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더듬더듬 거리며 횡설수설 하는 나를 지후는 정말 어이없이 내 얼굴을 뚜러지게 쳐다보면서 듣고 있었다.
" 남자니까...그럴...수도...있을거야...그치...그치?? "
" 남자니까...?? 나 조금 당황스럽다...그래...남자니까 그래...잘수도 있다고 쳐...근데 넌 왜 도망쳤어?? 그럴수도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니가 좋아한다는 남자한테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그 여자앞에서 넌 왜 도망친거야...? 말해봐...한수현 왜 도망쳐서....여기서 이렇게 혼자서 죽을것처럼 힘들어하는데? 안 괜찮으니까 그런거잖아...니 마음이 안괜찮으니까 아프니까 그런거잖아...그러면서 또 나한테는 남자니까...뭐 이해한다고 니가 뭘? 내가 바보냐? "
" 그럼.......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 화를 내...나한테 화를 내던가...가서 그 여자한테 화를 내던가...넌 왜 그렇게 살았냐고...넌 그런 놈이였냐고 나한테 화를 내라고...제발 그래...제발 그래야...내가 .... 널 볼수 있잖아...한수현...
니가 그렇게라도 해줘야...내가...널 쳐다볼수 있잖아...제발 화 좀 내라고...."
나는 그만 울음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난 보고 말았다....저 담벼락 너머로 이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여자에 여유로운 모습...
내 눈물을 닦아주려는 지후에 손길을 나도 모르게 잡고 말았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서 버렸다.
" 미안해...그냥 혼자 있고 싶어...정말 생일 축하해...그리고...난...괜찮아질거야..."
그런 날 잡지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날 바라보는 지후를 뒤로 한채 난 돌아서버렸다.
그 여자에 웃음이 너무 무서워서...두려워서...난 혼자서 불안해할 지후를 볼수도 없었다.
그리고 난 일주일을 꼬박 아팠다.
아무런 아플 이유가 없는데...그냥 몸에 열이 났고...아무것도 먹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자고 있을때...아니...자고 있는척 하고 있을때...아무런 말없이 날 보고 가던 지후를 끝내 아는척 하지 않았다.
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려주고 내 얼굴위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손길이 애처러울만큼 지후는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손길을 거두고 일어서버리는 지후를 문이 닫고서야 눈물을 흘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힘들게 하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그냥 아프고 또 아팠다.
그리고 어느날 강희와 함께 한클럽에서 나오는 그 여자를 보았다.
웃음 하나에도 남자에 마음을 한번에 잡을수 있는 그 여자만에 매력...그리고 그 웃음에 이미 영혼을 뺏긴듯한 강희에 모습이었다. 하지만 왠지 어두워보이는건 나 혼자만에 착각일까??
친구와 근처 커피숍에서 나온 나를 먼저 발견한건 강희가 아닌 여자였다.
자신감이 넘친 여자에 얼굴에서 난 긴장한듯 발길을 멈추고 인사를 했다.
" 안녕? 나 기억해요?? "
난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 수현씨 맞나요? 강희야~ 먼저 가...나 잠깐...이야기좀..."
남자는 말없이 차 키 리모콘을 누르고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 잠깐 이야기좀 할 수 있어요?? "
나역시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까운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을 서로 어색한 침묵속에 커피를 마시다 먼저 입을 연 여자가 낮지만 아주 매력적인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수현씨...그러고 보니까...참 어려 보이네요...음...고등학생 이라 해도 믿겠어요..."
" ...녜..."
"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그냥 지후가 좋아한다는 여자가 어떤 여잔지 궁금했는데...왜 좋아하는지 알것 같아요...근데...살이 좀 빠진것 같아요..."
" 녜..."
" 지후...좋아하나요?? "
"..................."
" 왜요?? 그때 그 말때문에...갑자기 그 맘이 사라졌나요?? 조금 실망인데요...지후는 그 말때문에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데...그 녀석 함부로 누군가에게 맘 주는 녀석이 아니거든요...휴우....담배 피워도 괜찮죠?? "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백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독한 담배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며 그만 재채기를 일으키고 말았다.
" 미안해요...근데...난 수현씨한테 조금은 실망했어요! 지후는 수현씨를 자기 분신처럼 생각하는데 수현씬 아닌가봐요..."
"........지..후...는 잘 있나요?"
"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죠?? 조금은 질문이 이상하지 않나요? "
" 하지만.........."
" 그래요...그날밤 조금 놀랐겠지만 엄연히 확실히 하자면 내가 지후를 유혹했어요...둘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하고 그래서 어쩌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하지만 그때 지후는 내 자존심 상처받을까봐...그런 맘이었을꺼에요....그래서 전 아직도 지후 사랑해요...그 녀석 마음이 아직은 수현씨 한테 있지만...뭐 상관 없어요...."
저 여자는 뭐가 저렇게도 당당한걸까?? 자신을 거부하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랑을 요구하는 저 여자...그 앞에서 난 너무나 작고 초라하고 또 내 사랑은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였다.
지후를 못본지 한달이 지났다.
일주일이 지나고부터 먼저 연락하기가 두려웠다...하지만 지후 역시 나에게 아무런 연락을 주지 못해서...그렇게 한달이 지나 버렸다.
수한이 녀석이 어느날 나에게..." 너 참 잔인하다..." 라고 말을 할때도 난 그냥 흘려 버렸다.
나도 모르게 도착한 지후에 오피스텔앞에서 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꾸물대는 하늘은 자꾸만 요란하게 소리쳤지만 내 귀에는 그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그냥 그 여자 앞에서 내 보잘것 없이 초라한 사랑이 미안해서...견딜수가 없었다.
' 보고 싶다...한지후...미안해...보고 싶어...널 정말...좋아하나봐...아무런 이유가 없이...아무런 필요없이...그냥 니가 보고 싶을 뿐이야...니가 나보고 어리고 잘살고 또 그 어떤 잘난 이유 하나 아무 상관없이...그냥 너라는 남자가 보고 싶어...'
눈가에 촉촉히 젖어드는 눈물이 빗물인가 내 눈물인가 싶을 정도로...어느새 흠뻑 젖어버린 몸은 아기 새처럼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서 일어설수가 없었다.
전화 한통화면 바로 볼수도 있겠지만...그럴 용기도 없기에...그저 여기에서 그 녀석 모습이 보일때까지 내 앞에서...내 앞에...떡하니...내앞에...이렇게...비를 피할만큼에 우산속에 녀석이 내 앞에...
보일때까지...난 일어설수가 없었다.
유난히 교복이 낯선 녀석의 모습...녀석도 많이 수척해졌다는걸 단숨에 알수가 있었다.
내 젖은 몸하나 상관없다는듯 그대로 날 일으켜 안아버리는 녀석의 넓은 가슴이 그대로 품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 감기...들면 어떡하려고...이러고 있어...내가 ... 언제 올지 알고..."
" .....보...고...싶...어서...나...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수가 없었어...연락할 용기도 없는데...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한지후...나 너 사랑하나봐...어떡하면 좋아...나...니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아팠나봐..."
" 바보! 그걸 이제 안거야?? 난...진작에 아프고 알았는데...미안해! 내 어리석은 모든걸로 너 아프게 해서...미안해!"
" 아니야...내가 미안해...그런거 아무런거 상관없어...그냥 니가 좋아...니가 너무 좋아...아파도 좋아..."
젖은 내 머리카락을 그대로 옆으로 쓸어주는 녀석의 손길이 따뜻하기만 했다. 자신의 교복 재킷을 벗어서 내 작은 몸에 덮어주고 떨고 있는 나를 힘주어 안아주는 녀석이었다.
" 한수현...왜 이렇게 수척해진거야? "
" 한지후..왜 이렇게 수척해진거야?? "
그리고 말없이 서로 웃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