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할까요..
저는,
88년생, 올해20살로 충청도에 살고있어요..
너무 우울하고 미칠것만 같아서 하소연 좀 하려구요..
제 인생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2004년. 17살 - 5월이었어요.
친구랑 길을 지나가다가
친구의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그 남자친구는 20살 대학생.
고등학생이 대학생이랑 사귄다고
저는 좀 놀랬어요.
왠지 거리가 꽤 있어보였거든요.
그리고 저는 한번도 남자를 사겨보지않았고,
가정도 보수적이라,
대학생인 남자친구라는 말을 들었을땐
정말 신기해하고 놀랬죠..
교복을 입은 제 친구와 사복을 입고 머리염색하고
자유로워보이는 대학생이 같이 있는걸 보니
정말 낯설더라구요..
그 남자친구는 친구랑 같이 길을가고있었는데,
저희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거죠.
그 남자친구의 친구는 지금의 제 남편이에요.
그때 편의점앞이었는데,
날이 덥기도 하고 길에서 서있기가 좀 그래서인지,
지금의 제 남편이
" 아이스크림사줄까?"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연락을 하게됐고, 그냥 아는 오빠일뿐.
다른 감정은 없었어요.
사촌오빠들한테도 오빠라고 한번 불러본적 없는 오빠라는 단어를
그 사람한테도 쓰기가 무척 껄끄럽더라구요..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지, 오빠라고는 안했어요.
월드콘아저씨라고 처음에 불렀어요.
월드콘아이스크림을 사준 아저씨라는 뜻에서요;
연락하는 것조차도, 낯설고 남자라는 사람하고 문자를 주고받는다는게,
참 민망했어요..
그냥 친한 동창생이 아니라, 아는 남자로서 말이에요.
안지도 얼마 안된것같은데,
월드콘아저씨가 고백을 했어요..
정말 놀랬어요..
아파트 공원에서 고백을 받았는데,
저는 단호히 거절했어요..
아직 고1뿐인 학생이고, 제가 보수적인 가정에서,
고지식하게 자라서, 연애라는건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아는 월드콘아저씨일뿐이지,
감정이 설레이진 않았거든요..
목걸이하고 옷도 잘입는 대학생이라는 점이 더 낯설게 느껴졌죠..
아홉번이나 고백을 거절했어요..
이제 다시는 연락을 안한다고 월드콘아저씨가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시간이 한동안 흘렀는데,
제가 월드콘아저씨때문에 멍해지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린다는걸 깨닳았어요..
학교가 끝나면 늘,
집앞에서 기다리던 월드콘아저씨가 안보이니깐,
보고싶고 걱정되고 기다려지게 되더라구요.
제가 연락을 했더니,
잊는다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화를 내더라구요..
" 남자가 머그래요, 열번찍어 안넘어 간다는 나무도 없다잖아요. 안그래요? "
" 난 열번 다 찍었다고 생각하거든 "
" 아니에요, 아직 한번남았어요. 그러니깐 얼른 고백하세요 "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귀게 되었어요..
인문계학생이라서,
늦게까지 야간학습때문에, 주말에는 휴일학습때문에,
만나는 시간도, 얼굴 볼 시간도 얼마 없었지만,
아침 6시에 얼굴 잠깐보고,
저녁 10시에 얼굴 잠깐보고 이랫어요..
그냥 그 사람이 좋았어요.
웃는 눈도, 웃는 얼굴도,
그 사람의 발걸음도 다 좋았어요.
목소리도, 말투도, 망가지는 장난을 해도 멋있어보였어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던 월드콘아저씨는
제 손을 잡고싶어도 못잡았고,
연애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어렸던 저는
아저씨 손을 잡고싶어도 못잡았죠.
그렇게 우리는 한발 떨어져 걸었지만,
마음이 참 따뜻했어요.
눈뜨면서 잠이들때까지 꿈에서도 만나 놀자고 연락을 했어요.
매일 웃으며 마음이 커졌고,
그 사람 때문에 세상 모든게 다 예뻐보였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만났죠.
저는 어렸을때부터,
아빠의 가정폭력에 많이 시달려 살았어요..
언니와 여동생을 아빠의 폭력으로 잃었고,
매일 머리통이 깨져 피가나고,
유리병에 맞고, 뼈가 나가고, 틀어져 학교를 자주 못갔어요..
지금 이렇게 아빠한테 맞던 옛날 생각을 하면
정말 토할것처럼 매스껍고 눈물만 나네요..
아파도 아프다고 말못하고 병원비아깝다고 병원한번 못간
엄마가 너무 불쌍했어요..
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려고
남동생과 동네에 앉아 기다리던 일도 생각나네요..
엄마 기분좋게 해주려고
매일 병을 팔아 50원 100원받아 모아서
동생과 머리핀을 자주 선물해드리기도 했어요..
아빠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었고.. 남동생이 있었기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술만 마시고 가정에 소홀한 아빠를 보며 자라서인지,
남자는 다 못믿겠고, 혼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릴때부터 했어요..
불쌍한 엄마하고 평생 같이 살아야겠다.. 이렇게요.
그렇게 저한텐 엄마하고 남동생이 전부였고 이세상이었요..
그해 10월이요.
그날도 아빠의 술행패로 맨발로 우리셋이 뛰쳐나오던날이었어요..
엄마한테 무릎을 꿇고 울면서 제발 이렇게 살지말자고,
도망가자고 빌었어요..
그 다음날 저희 셋은 집에 있는 책들과 옷, 가구 몇개를
근처 이모집으로 옳겨두고,
저희는 ㅇㅇ시로 도망을 갔어요..
ㅇㅇ시로 간 이유는,
남동생과 같이 있을수 있기때문이었어요.
다른 여성쉼터같은곳은, 여성들만 들어갈수있어서
남동생은 다른데로 가야해서요,
ㅇㅇ시에 있는 이 시설은 남동생도 받아줄수있는
유일한 곳이었기에 이모의 소개로
그 쉼터 명함한장 가지고 저희는 기차를 탔어요..
기차안에서 우리는 아무말도 없었어요..
동생은 어려서 잠이들었고,
엄마는 한숨만 쉬셨죠..
저는 웃음이 났어요.. 창밖을 보면서 놀이공원에 온것처럼,
웃었어요.. 제기억으론, 전 그때 좋아했어요..
창밖에 비친 엄마의 얼굴은 많이 어두웠지만,
전 웃었어요..
갑자기 떠난 거라서,
친구들하고 인사하지도 못했고,
학교전학처리도 정상적으로 되지못했어요.
그 시설에서 학교에 연락을 해서,
아빠가 찾아오면 알려주지 말라고
저를 보호한다는 말 이하에 처리가 되었어요..
그 쉼터에 처음 들어간 사람들의 표정은 많이 고달펐어요..
나는 웃고있었지만,
모두 가정폭력때문에 피한 아줌마들과 아이들이
모여서 저희들을 쳐다봤죠..
서로 아무말도 묻지않았고 아무말도 하지않았지만,
우리 모두다 마음이 아프다는걸 느낄수있었어요..
동생은 중학생이라서 그런지 전학이 바로 됐는데,
저는 고등학생이라서 그런지,
정상적으로 된 전학처리가 아니라서,
저는 일주일뒤에 새 학교에 등교했어요..
사립학교였는데,
다른 국립학교에서는 저를 받아줄수 없다고 해서,
그 사립학교에서 회의를 해서 절 받아주었어요..
교복도 헌것이고 색깔도 맞지않고,
책도 많이 없었지만,
등교첫날 마음을 굳게 먹었죠..
씩씩하고 용기있는 마음도 얼마 못갓어요..
어디서 들은 얘기인지, 제 사정을 안 반 아이가
대뜸 그러더군요..
" 너, 아버지 어디었어? "
순간 놀랬어요.. 아버지라는 단어에 심장이 멎는것같았어요..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수 없었죠.
" 아.. 집에. "
당황하고 놀랜 저는 눈물이 떨어졌어요.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한테 그랬죠,
" 쟤 보호시설에 있는애래. 쟤네 아버지가 때려서 도망온거래 "
처음엔 친구도 없고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학교가는 걸음이 무거웠어요..
다들 동정으로 쳐다보는 것같고..
텃새도 많이 심해서 한동안 혼자였어요.
전학오기전 학교 친구들도 많이 그리웠지만,
연락을 못했어요.
아빠가 수소문을 해서 저한테 찾아올까봐,
있던 핸드폰도 없앴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친구도 하나둘 생겼고..
눈물도 줄었어요.
제 성격이 되게 밝아요.
활발하고 장난도 되게 잘치고, 웃음도 엄청 많고,
분위기 띄우고 웃기는 장난은 다 제가 해요.
속으론 많이 우울해하고 힘들어도 티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겉으로는 붙임성도 좋고, 먼저 말걸고 무슨일이 있어도 먼저 이해하고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고 그러거든요.
월드콘 아저씨도 제가 맨날 웃고, 활발한 면에 반했다고 그러더라구요.
친구들도 그리웠지만 월드콘아저씨가 많이 보고싶었어요. 정말..
아빠가 월드콘아저씨나, 친구들한테 가서 햇코지를 할까봐,
연락도 못하고 혹시나 연락을 해서 추적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마음에
공중전화를 봐도 그냥 지나쳤어요..
그 겨울,
법정에서 우리는 이겼어요.
가정폭력때문에 맞고사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대변해주는 변호사를 통해,
우리는 이겼어요.
아빠도 변호사를 동원해 반박했지만,
저희는 그동안 맞았던 사진.. 저와 제 동생의 편지로서 이길수있었어요..
일정거리 접근금지와 양육비와 위자료가 내려졌지만,
그 무엇도 지켜지지 않았죠.
그 법원에 제출한 서류속에 있던 제 학생증 사본을
아빠가 보게되었고 학교까지 찾아오게됐어요.
어느날,
보호시설 목사님이 학교에 찾아오셨더라구요.
" 왠일이세요? "
" 지금빨리 나와, 너희 아빠가 네 동생한테 찾아왔는데
동생은 도망쳤대, 이제 너한테 올것같애, 얼른가자"
다리에 힘이풀렸어요.
정말 앞이 안보였어요.
떨고있었어요. 정말. 우주에 떠있는것같았어요.
많이 놀랜 저를 보고 목사님이 대신 가방을 챙겨
저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가는순간.
아빠하고 맞닥드렸어요.
정말 순간이었죠.
순간 아빠는 제 팔목을 잡고 집에가자고 강압적으로
몰아부쳤고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나와 구경하게됐죠.
교감선생님이,
저희 아빠를 교장실로 불렀어요.
교장실안에서도,
아빠는 날 보호하려는 목사님을 향해 온갖 모욕적인 욕들을 해댔고,
나를 잡고 때렸어요..
겨울이라 동복에 코트까지 입고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와이셔츠 단추까지 뜯길정도로 많이 시달렸어요.
얼굴은 눈물에 범벅이되서 나를 휘두르는 아빠때문에
정신을 차릴수없었고 소리지를 힘조차 나지않았죠.
선생님들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술에 취한 아빠는 힘이 격했고,
마침내 출동한 경찰에의해 제지당했어요.
저와 목사님은 시설로 가서 엄마하고 동생하고 부둥켜 안아 울었죠.
저희동생은 아빠가 찾아온걸 보고
신발갈아신고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뒷문으로 도망쳐서 시설로
뛰어왔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시설로 찾아왔어요.
두드르는 문소리가 시끄러웠고 점점 우리는 두려웠어요.
경찰에 신고해서 물러가긴했지만,
우리는 정말.. 무서웠어요.
엄마가 평생 공장생활을 해서,
번돈으로 마련한 첫 아파트에서 나온 우리는,
위자료도, 양육비도 하나 못받았어요.
그 아파트의 일부라도 받을까해서,
엄마는 가압류를 신청했고,
경매에 넘어가 엄마가 고생한 그 집의
1/3을 받았죠..
그 시설에는 오래 있을수없었어요.
6개월이 제한기간이었거든요.
거기는 먹고살 직장도, 경기도 많이 안좋아서,
엄마는 다른곳으로 이사가기로했어요.
ㅇㅇ시로 외곽으로 가게 된거죠.
저는 고등학생이고 자꾸 학교를 옮기면 안된다고 해서,
남겨졌어요.
그 시설에서도 오래 머무를수없게되자,
저는 정말 누우면 꽉차고, 화장실도 공용인,
노가다 아저씨들이 쓰는 그런 원룸으로 이사를 가게됐어요.
매일밤이 무서웠어요.
아저씨들 술먹는소리,
이제껏 엄마를 의지해 온 터라 떨어져있으니 정말 엄마가 보고싶었어요..
화장실가는것도 씻는것도 정말 불편했어요..
문잠그는것도 오래돼서 깊은잠도 못자고 늘 설치기만했죠.
엄마하고 동생은 충청도 ㅇㅇ시 외곽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에서 받은 아주 작은 돈으로,
전세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 당시 제가 가고 싶던 대학이 충청도에 있는거여서
엄마가 내가 대학갈때쯤에도 좋게 충청도로 미리 이사오는게 좋겠다고 하셔서
충청도로 오게된거죠.
제가 대학갈때쯤이면 동생도 고등학교들어가니깐,
그떄 들어가려면 더 힘들지도 모르니깐 지금 전학을 시키는게 낫겠다 싶어서
동생도 데려간거구요.
엄마랑 동생이랑 떨어져 살아서 많이 그립고 힘들었지만,
2년을 버텼어요.
정말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아요.
엄마도 열심히 공장생활을 했고.. 동생도, 나도 열심히 학교를 다녔어요.
자취방돈들어가는게 너무 죄송해서
학비라도 적게 들어가게 하려고 이것적서 신청을 해서 기초수급으로 다 받았고,
급식이며 우유며, 학비까지 다 무료로 받았어요.
내가 할수있는일은, 내가 해야만 하는일은 오로지 꿈을 위해 공부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주위에서 애들이 가난하다고, 학교 공짜로 다닌다고 욕해도,
공부 열심히 했어요.
내가 공부열심히해서 국립대가서,
꿈을 이뤄 엄마 호강시켜주고 아빠한테 보란듯이 보여주는 삶을 사는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이혼이 되고,
봄이 되서 마침내 월드콘아저씨한테 연락을 했어요.
정말 반가웠어요. 정말 보고싶었죠.
너무 무거운마음에 뒤에 숨어져버린 사랑이 있었어요.
오빠가 살고있는곳은 전에 살던 아파트도 있고,
아빠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해서 내가 가길 어려워했어요..
혹시라도 아빠를 만나면 어쩌나 하구요..
제 사정을 다 알던 오빠는 2년동안 제 원룸에
기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주말마다 오가며,
만나게됐어요.
주말도 아침, 저녁보는시간이 다였지만,
늘 나를 위해 기다려주고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주는
월드콘아저씨를 정말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아, 참 -
성관계는 하지 않았어요.
제가 울면서 고백했거든요..
난 이런거 하나도 모른다고.. 싫다고..
안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2005년 7월.
오빠의 생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군대를 가게됐어요.
7월말에 군대를 갔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떨어져있는다는게, 허전하다는게.. 정말 견딜수 없었어요..
그사람한테 모든걸 다 말하고 의지했는데,
2년이란 언제 갈까했는데,
이제 다음달이면 제대를 하네요..
2007년.
저는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제 꿈은 사회복지사에요.
우리나라에서 경력을 쌓아
이라크나 아프리카로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적인 삶을 사는게 제 꿈이에요.
원하는 대학교에 원하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을때의
설렘은 이루 말할수없었죠..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엄마와 동생과 같이 살게되면서 나날들이 행복했어요.
모든게 다 잘풀릴것만 같았어요.
엄마하고 동생하고 떨어질일도 이제 없고,
원하는 대학교도 갔으니 공부만 열심히 해서 꿈만 이루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학교 입학을 하고,
알바를 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오전에 학교를 갔다가, 오후내내 알바를 하고,
밤새 레포트를 쓰고 공부를 했어요.
첫 전공수업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님한테서,
그 많은 학생들앞에서, 그 많은 선배들과 동기생들앞에서
레포트 잘썻다고 칭찬을 받았을땐,
부끄러웠고 제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죠..
그렇게 신입생 2주가 지나갈때쯤이었어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밤 11시에..
약국앞을지나가다가
임신테스트기를 샀어요.
가위에 눌리고,
피곤하고 몸이 힘들어서
대학생활에다가 알바때문에 힘든가보다 했는데,
점점 불안해지더라구요..
1월쯤에 오빠랑 성관계를 한뒤로
한번도 거르지 않던 생리가 없어서
혹시나 했어요.
두줄이엇어요..임신이요..
그때 9주였어요.
제잘못이 크죠. 정말이요.
제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오빠는 늘 그전부터,
임신됐으면 좋겠다, 애기 가졌으면 좋겠다,
같이 살면 좋겠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
제가 임신이라고 했을때,
놀라면서도 좋아하더라구요..
임신테스트기 결과를 보고나서,
방에서 한참을 울었어요.
엄마한테 실망시켜드리는 것같아 많이 초조했어요.
엄마한테 고백했죠.
임신했다고..
오빠하고 만나는 걸 알고있었지만,
늘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엄마는 난리가 나셨죠.
칼을 가지고 목에다 대고 당장 지우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그러실 정도였으니깐요..
그 순간에도,
나는 절대 애기 못지운다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어요..
그 다음날 엄마가 오전에 공장갔다가 오후에,
애기 지우러 같이 병원에 가자고 으름장을 놓으셔서,
오전에 대충 짐을 싸서
엄마한테 죄송하다는 편지를 두고 집을 나왔어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죠.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내가 나쁜년이라고 욕을 많이 했어요..
오빠가 군대가기전부터,
오빠네 가족들을 알고 지낸 저는,
오빠네 집으로 가게됐어요.
늘 잘해주시고, 예쁘게 봐주셨어요.
하지만, 아기를 갖고 오빠네 집으로 들어온지 며칠 되지않아,
아버님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더라구요..
네가 우리 아들 앞길을 막았다고..
네가 몸 함부로 굴렸다고..
그전엔 볼수없던 모습들이 많이 서러웠어요.
어머님은 몸이 아프셔서 서울에 계시거든요.
4월에,
오빠가 외박을 나왔어요.
3박 4일 외박이었죠.
같이 혼인신고를 하고
행복하게 잘 살자고 약속했던 날.
대학교 자퇴서를 냈던 날.
자퇴서를 쓰는 내내,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요..
종이가 안보였어요..
오빠를 쳐다보고 또 쳐다봤어요..
하지만 아기를 가지고 학교를 다닐수없잖아요..
학교는 언제든 다시갈것이고,
내 꿈은 버리지 않은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아기를 위해서요.
병원에서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아기 심장이 느리다고 유산위험이 있다고 조심하라고 해서,
학교를 그만뒀어야 했어요.
오빠가 엄마를 찾아가,
나를 책임지겠다고, 걱정마시라고,
노가다를 하고 우유를 팔아서라도,
나하고 아기는 절대 굶겨죽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난뒤에는
엄마의 화가 좀 풀렸어요.
그제서야 엄마하고 좀 연락을 하게됐어요.
아버님이 자꾸 술먹고 욕하고 힘들게 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참기 힘들다고 하니깐,
오빠가 그럼 잠깐 친정에 가있으라고 하더라구요.
제대할때까지만이라도,
아직 임신초기니깐, 조심해야 한다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안된다고 친정으로 잠깐 가있으라구요.
마침, 엄마가 동생일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셔서,
제가 많이 보고싶다고 와달라고 해서,
친정에 가게됐어요.
남동생이 삐뚤어졌어요.
정말 겉잡을수 없었어요.
남동생은 많이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인데,
그렇게 삐뚤어질지 몰랐어요.
학교다니기 싫다고 안간다고 버티고 있고,
안좋은 친구들이랑 찜질방에서 돈훔치고,
오토바이 훔치고, 여자들이랑 여관에 다니고,
늘 담배 세갑씩 피고, 술마시고 다니더라구요.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딸까지 애배서 저러는데 아들놈까지 저런다고,
엄마는 정말 밥도 안먹고 매일 화를 내다가, 울다가,
지쳐서야만 잠이 드셨죠.
엄마한테정말 죄송하고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동생을 어르고 달래고 때리고 설득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대학교 자퇴하고 나서 등록금을 2/3돌려받은걸,
동생이 오토바이 훔친 보상금으로 냈어요.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더라구요.
나가지 말라고 잡아놔도 어떻게해서든 집이 싫다고 뛰쳐나가
일을 저지르고,
집에서 담배피고 엄마돈까지 훔쳤으니 말다했죠.
그렇게 학교를 계속 나가지 않아 퇴학처리된다고 경고가왔어요.
엄마가 퇴학보다는 자퇴가 낫다고..
가서 자퇴를 시켰죠.
자퇴하는 날도 동생은 도망가서 나타나지 않았어요.
머리에 노란색으로 염색을해서
어지러운 모양의 셔츠를 입고 저녁에 집에와서는
집나간다고 짐을 싸더라구요..
내가 말렸어요. 엄마 쓰러지는 꼴 보려고 이러는거냐고..
제발 정신좀차리라고..
중졸해서 머먹고 살려고 하냐고..
고등학교 자퇴해서 머할려고 그러냐고..
제가 말리니깐 절 때렸어요.
늘 조용하고 소심했던 동생이
아빠하고 이혼후 많이 힘들어 삐뚤어졌고,
아빠한테 보고자란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게 됬다고 생각해요.
내 머리채를 잡고 벽으로 찧고,
쓰러지면 발로 허리를 밟았어요.
꼬리뼈에 금이가고 손가락 두개가 골절되고
손목이 나가고 손목인대도 늘어났어요.
배를 때리고 혁대로 수십차례 휘둘러
눈안구와 얼굴전면,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서 움직일 수 조차 없었어요.
너는 애배고 다니는게 잘하는거냐고,
말리지 말라고 때리더라구요..
엄마도 포기했고.. 나도 포기했어요..
동생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더 이상 찾지도 않았고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다친걸 보고 오빠는 당장 자기네 집으로 가라고,
화를 냈고,
엄마도 동생이 그러는걸 보고 지쳤는지,
너도 다 필요없다가 나가라고 해서,
오빠네 집으로 다시 들어가게됐어요..
그렇게 많이 다쳤지만,
아기는 괜찮았어요..
그렇게 맞을때도 배를 움켜쥐고 하지말라고 울었어요..
오빠네 집에와서 많이 힘들었어요..
동생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여기 집에서도 아버님과 할머님이 늘 구박하고,
잔소리 해서 쉴틈이 없었어요..
아버님이 수박농사를 지으세요.
수박계약을 하고 나서 받은 계약금으로,
오빠방에 옷장이랑 침대를 사주셧어요.
제 짐이 오니깐 옷둘곳이 좁아서,
사주셨어요.
침대도 싸고 작은 싱글이었지만,
그래도 감사했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술안드시면 우리며느리 우리며느리 하시는데,
술드시면 힘들게 하시죠..
할머님(아버님의 엄마)이 아버님이 사주신 가구를 보더니,
그러시더라구요..
너는 우리집에 머 빌붙으러 왔냐고..
왜 우리돈 나가게 하냐고..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이런 혼수는 너네 집에서 해와야
되는거 아니냐고.. 우리아들 돈 나갔다고..
참 서운했어요....
병원에서 아들이라고 귀뜸을 해주시더라구요.
남편이랑 이름도 짓고,
좋아했어요..
아빠도 그렇고 남동생도 그래서.
아들보다는 딸을 바랬는데, 그래도 아기가 좋았어요..
한편으론 아들 낳는다면 시댁에서 좋아하실것같아서요..
그런데, 아들이라고 하니깐,
아버님과 할머님이 안좋아하시더라구요..
아무래도 시댁쪽엔 아들이 많아서 딸을 더 바라셨나봐요.
아들낳는것도 다 너네 근본없는 친정탓,
입덧하는것도 다 너네 돈없고 근본없는 친정탓.
힘들었어요.. 엄마 험담을 하고, 안좋게 말하는게 정말 서러웠어요..
툭하면,
자기네 집에서 나가라고,
내치시고,
새벽에라도 꺠워서 밥차리라고 그래서
밥상차려드리면 이게 머냐고, 굶겨죽일꺼냐고,
밥이 이거머냐고, 밥상도 엎으시고, 욕하시고,
괜히 차려라 물려라 시키시만 하시고..
음식못한다고 친정탓하시고..
솔직히 음식하는게 서툴러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얼마 안됐잖아요..
음식은 다 엄마가 하고, 엄마가 해준밥만 먹으니,
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도 요리책, 요리사이트에서 열심히 보고 익혀서
연습하고 하는데도.. 마음에 안들어하시네요..
입덧할때 참 많이 고생했어요..
정말 아무것도 입에 댈수가 없었어요..
생각만해도 아찔해서 울렁하기만했어요..
물만마셨어요..
어느 누구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굶어죽을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참으면서 물에 밥을 말아먹었어요..
입덧한다고 말도 못꺼냈죠..
입덧하면 너네집 근본이 안좋아서 입덧하는거라고 하시니깐요..
자기네 식구들은 입덧한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다 너때문에 그러는거라고 하시니깐요..
괜찮은척 아무렇지 않은척 입덧안하는척 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4시에 절 깨우세요.
밭에 가야한다고.
수박밭에 데려가서 일을 시키세요.
제가 지금 임신 5개월이에요.
하루종일 땡볕에서 하우스에서 일하면 정말
쓰러질것같아요.
생활비도 안주셔서 반찬할것도 없어서 제대로
해먹지도 못하는데,
하루종일 땡볕에서 일이라니요..
조금만 쉰다고 해도 못쉬게 하세요..
가만히 있으면 애기만 커진다고
일을 해야한다고..
네가 하는게 머있냐고 일하라고 하세요..
수박도 너무 무겁고.. 너무 덥고..
빈혈에 힘도 없고..
저보고 일을 시키시면 아버님은 대포집에가셔서
막걸리드세요.
혼자 조용히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뒤에서, 안보는곳에서..
늘 오빠만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하고 버텼어요..
요즘따라,
남편하고 많이 싸우네요..
며칠전,
엄마가 자궁에 이상이 있어서,
검사를 받았는데 수술을 하셔야한대요..
너무 걱정이 되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시큰둥하더군요..
남편은 친정, 엄마 얘기하는걸 안좋아해요..
나하고 있으면 애교도 많고 잘하는데,
성격이 A형이고 무뚝뚝하고 소심해서,
붙임성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는 아버님하고 말도 안하죠..
대신 말해달라고 저한테 부탁할정도니깐요..
6월.
남편이 마지막 외박을 나왔어요.
이제 제가 배가 부르기 시작하니깐,
옷이 답답하고 안맞더라구요..
이제 임부복 사야할것같다고,
제가 그동안 알바잠깐 했을때 모아둔 돈으로
임부복을 사러갔어요..
얼마 없었어요.. 7만원정도..
4,50만원은 아기 산부인과 가느라고 다 썻어요..
아들이라고 구박하는 시댁에서
산부인과 간다고 말도 못꺼내는 처지에,
진료비 달라고 말은 엄두도 못냈죠..
갈때마다 초음파검사에, 무슨 검사 무슨검사한다며,
몇번갔는데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다 얼마 없던 제돈으로 감당했어요..
물론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혀요.
임부복을 사러갓는데,
남편이 여름옷이 없다고 투덜대길레,
그럼 하나 고르라고 해서, 고른다는게,
7만원언치를 샀어요.
결국 임부복은 하나도 못사고 남편 여름옷만 잔뜩삿죠..
카고바지 못샀다고, 많이 아쉬워하더라구요.
다음엔 카고바지 꼭 사달래요..
정말 속상했어요..
철이 없어보였어요.
나는 임부복도 못샀는데 말이죠..
그래도 아무말 안했어요.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면 그만이죠..
저는 괜찮아요.
그날 저녁,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며,
저녁6시에 남편이 나갓어요.
일찍들어온다고, 2시간만 보고온다고,
저녁만 먹고 바로 온다고요.
며칠안돼는 짧은 외박.
같이 산책가자고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밤10시가 되도 안들어오더라구요..
전화할까하다가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술한잔
하는구나 하고 방해하지 않으려고 참다가,
12시에 전화를 했는데,
이미 술에 취해서, 들어간다고 들어간다고
같은말만 반복하더라구요..
1시에는 아예 전화기가 꺼져있더라구요..
2시반이 되서야 들어오더라구요..
정말 속상했어요..
저는 이렇게 시댁에서 아버님 할머님 눈치보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농사일에 힘들어서,
친구들 만나는건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
혼자 시댁에 있으면, 외로워요.
열정적이게 다니던 대학생활도 그립구..
친구들도 그립구...
친구들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학 머하러다녀~ 시험도 안보고 난 좋다~ 이렇고 웃고 말았지만,
늘 되돌아 가고싶고 공부하고싶네요..
엄마한테안부전화를 하고나서,
남편한테도 한통화하라고 했어요..
역시나 싫대요..
무조건 싫대요..
나중에, 이따가, 좀이따가, 할꺼야, 나중에, 내일, 알아서할께.
이러고 말아요.
한번도 먼저 한적이 없어요.
우리가 상황이 이러면 엄마한테 잘해드려야하잖아요.
내가 자기 아버님 모시고 사는거 알면,
자기도 좀 엄마한테 안부전화 한통화 하는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자꾸 미루고 안하길레,
도대체 왜 안하는거냐고..
자기가 그럴처지냐고..
얼른 전화하라고.. 몰아부쳤어요.
방에서 소리가 커지다 보니,
아버님이 깨실것같아서 집밖에서 말하게 됐죠.
내가 자꾸 전화하라고 했어요.
처음엔 그냥 한 소리일지 몰라도,
점점 미루는 남편모습을 보니 짜증나고 오기가 붙어서
자꾸 전화하라고했죠.
전화하는게 한시간 걸리는것도아니고,
그냥 안부전화잖아요.
그래도 끝까지 싫다는거에요.
눈물이 터졌어요..
서럽고 화가나서 눈물이 났어요.
제가 눈물이 많은편이에요.
화가나도 기분이 좋아도 영화를 보면 꼭 눈물이 흘러요..
정말 눈물이 많은편이죠..
남편은 제가 우는걸 제일 싫어해요..
남편은 위로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내가 힘들어 안겨도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이죠..
울어도 힘들어해도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이에요..
내가 우니깐,
울지마. 울지말라고 했다. 너 우는거 싫다고. 짜증난다고.
이러더라구요.
내가 눈물을 그칠줄 몰라하니깐,
절 밀었어요.
뒤에 돌에 걸려 넘어져서 하마터면 배가 닿을뻔햇어요.
다행히 먼저 팔이 닿아 옆으로 넘어졌지만,
발목부분이 까졋어요.
넘어져서 더 눈물이 나도,
그냥 절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가더라구요..
남편이 군대로 복귀하고 나서 얼마 안있어,
엄마 생일이었어요.
제가 남편한테 엄마 생신이니깐,
축하전화한통 해드려, 하니깐
그때도 또 응 알았어. 이러고 말더라구요..
저녁쯤이 돼서, 오늘 전화했어? 이러니깐,
말이 없더라구요..
밤이 다돼서, 제가 그랫어요.
오늘 바빳나봐,, ? 그래서 전화못해드렸어,, ?
그럼 문자라도 한통 해드려.. 응? 생신이시잖아..
알았다고 하고, 안하더군요..
화가나고 짜증이났어요..
제가 남편번호로 엄마한테 생신축하드린다고 문자를 넣었어요.
(남편은 대전에서 의경이에요. 수경이라서, 핸드폰을 쓸수있지만, 그다지 자유롭지 않아서 몰래써요)
정말 할말 없었어요..
도대체 왜 연락을 안하는건지..
남편이 실망스럽고 든든하지 못했어요..
저는 엄마한테 제 남편이 좋은사람이길 자랑하고 싶고,
그렇게 보여지길 바래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깐요..
나보다 더 좋게 보여지길 바래요..
남편도 군대일로 바쁘고,
정신없겠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어요.
더이상 말안꺼냈어요.
기분나빠할것같고, 또 싸움이 될테니, 그냥 참고 말았어요. 그냥 그렇게 넘겼어요.
저번주말이었어요.
제가 남편한테
나 : "주말에 엄마가 수술한대, 가봐야할것같애..
근데 할아버님 제사있는데.. 어떡하지.. 제사를 지내야할까? "
남편 : "제사 지내 그럼. "
나 : " 엄마 수술하는데.. 아무도 없잖아..
나라도 가봐야지... "
남편 : " 그럼 병원가 "
나 : " ...... 걱정돼? "
남편 : " 어 "
나 : " 말투가 왜그래.. 제사지내? "
남편 : " 제사지내야지 그럼. 우리집 제사 안지내냐?
너 처음 맞는 제사인데 안지낼꺼야? "
나 : " 그건그런데.. 엄마가 수술하잖아.. "
남편 : " 낫겠지 머 "
나 : "..............................................."
화가났어요..
눈물이 났어요..
또 훌쩍이니깐,
남편이 짜증난다고 내가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어요.
그뒤로, 연락안해요.
저도, 남편도. 연락안하고 있어요.
늘, 남편이 잘못해도,
어색한게 싫어서 마음불편하게 해주기 싫어서
먼저 말걸고 사과하고
아무렇지않게 넘기던 저였어요.
제가 먼저 웃고 힘내자고 넘겼어요.
하지만, 이번엔 먼저 연락하기가 싫어요..
남자가 자존심이 그렇게 쎈가요..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는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지 조차 모르겠네요..
결국, 저는 고민을 많이하다가,
제사를 지냈어요..
15시간동안, 제사준비를했어요..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웃으며 견뎠어요..
다 저를 안좋게 보겠죠..
다 제가 몸을 함부로 굴려서 사고쳤다고 욕하겟죠..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더 악착같이
모든일을 깔끔히 해내려고 노력했어요.
늘 이럴때마다 잘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죠..
요즘 자주 티격태격하는것같아요..
자꾸 이유없이 짜증을 내길레,
조용히 물었어요..
왜 자꾸 짜증을 내냐구..
남편이 제대하면 머 먹고 살아야할지 걱정이라고
끝내는 감추다가 말하더라구요..
저도 알아요, 그런거..
그래서 더더욱 압박하지 않고, 부담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난 당신을 믿고, 다 이해하고,
어렵게 살아도 괜찮다구요..
내가 자기 아버님 더 잘모시고 노력많이 하겠다구요..
우리는,
소문난 닭살이었는데..
저는 여전히, 사랑한다는말도, 보고싶다는말도,
당신 하나뿐이라는 말도, 여전히 해요..
늘 사랑이 깊어만 가니깐요.
하지만,
남편은 이제 그런말을 안해요..
연애할때는 나 좋다고, 그렇게 느끼한 멘트도 많이 하더니,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도, 뽀뽀도,
애기에 대한 말도 안하려고 해요..
남편의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면,
정말 다 이겨낼수있을것같은데요..
정말, 한마디만요..
우울증이 심해져요..
너무 우울해요..
애기가 발로차네요.. 엄마 힘내래요..
힘내야죠..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