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기로 했다.
내가 울면 세상은 나를 가엾게 여기고 아파하는것이 아니라
나를 가치없게 본다는것을 알았기에..
나를 낙오자로 전락시킨다는 것을 알았기에..
당신 기가 너무 세요!!
초년고생이 많아요 ,,,
결혼도 20대엔 하지마세요,, 초년이 지나고 서른이 넘고 결혼을 하고나선 정말 고생한 것
다 떨쳐버리고 너무 잘 살아요.
사주 보는 사람, 점쟁이 말...
점은 점일뿐
내 노력하에 내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쯤은 이제는 아는 나이..
나는 굳게 믿는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 나도 충분히 행복해질수 있다고 ..
마음속에 악을 품으면서도, 우울증, 무기력증으로 병원신세를 지면서도
나는 오늘도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을 흘리면서 내 인생에 마가 꼈나? 의심도 하면서
내일의 단란함과 행복을 꿈꾼다.
파라만장했던 내 이십대..
나보다 더 파라만장 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어찌 내 글에 코웃음을 치지 않겠냐마는..
이십대
파라만장한 여자로 사는거에 흔히 있는 술집에서 일하지 않았다는것을 빼면...
나는 안해본 일이 없다.
99학번으로 난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서울에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집을 떠나 멋지게 독립생활을 꿈꾸던 나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아빠의 박봉에 딸린 자식이 3명이었던 우리집은 현실적으로 내 등록금과 용돈까지 줄만큼
넉넉하지 못했다.
등록금이야 학자금 대출이 있었지만..
용돈..
차비,식대 포함 월 10만원
거처.. 자취방을 구할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던 나는 2칸짜리 방 , 이모집에서 얹혀살았다.
이모부의 눈치,, 어린 사촌들의 괴롭힘,,
힘들었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강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울보였고 강할수있다는 자신감만 있었을뿐,, 누구보다도 힘들어했다.
사고싶은거 먹고 싶은거 많았지만
알바라도 하고 싶었지만 유난히 과제가 많은 과. 스터티가 필수였던 과 특성상
내게 시간이라것 또한 녹록치 않았다.
친구들이 이쁜옷 ,악세사리 사는게 너무 부러울뿐...
학교수업을 하다가 주식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잘못된 첫단추였다.
어줍잖게 주식으로 돈맛을 본 나는...
친구들과 동대문 쇼핑도 할수 있었고, 맛있는것도 사먹을수 있었던 . 나는 그저 좋았다...
전혀 경제관념이 없던 내게 카드가 발급이 되었고
현금서비스를 받아가며 주식 판을 벌였다.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결말..
돈 무서운줄 모르고 처음 돈 맛을 쏠쏠히 본 나에게 끊을수 없는 마약과도 같은 ...
쉽게 벌자 나의 사치는 극에 달했고 그러기를.. 3달~4달.. 정말 짧은 기간이었다.
카드가 막히고 돈의 압박이 다가오자 나는 부모님 몰래 학업도 포기 하고 카드값을 막기위해
일을 해야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인 월급으로 채울수 없었던 나의 카드값은 이자 막기에도 급급했고
급기야는 돌려막기도 모자라 제 3금융, 사채 끌어대기
얼마되지 않아 나도 내가 내 빚이 얼마인줄도 모른채로 신용 불량자가 되어버렸다.
신용불량을 숨기기 위해 나는 일해야했고 어떻게든 갚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된 사기단에 참여도 하고 알바로 취직된 회사에 사장이 유부남인걸
알면서도 만나주면 돈 주겠다해서 미친짓인줄 뻔히 알면서 그 남자와 잠자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나는
나중엔 이혼하고 결혼하자고 덤비는 사장을 뒤로 한채 잠적해야했고
사기단에서도 빠졌지만..
돈을 갚아야 겠다는 마음, 아니 돈에 눈이 멀어 무슨 짓이든 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던 모자란
가치없이 철없던 시절..
매체에서 카드값 때문에 자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말자
갚을수 있다... 해결할수 있다 일념으로 버티고 살았다.
우연히 알게 된 누드잡지 모델, 일본까지 건너가 일하고 번돈
불법 체류로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우리나라에서까지 연결이 에로물 촬영까지
미친듯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했지만 돌아오는건 사채의 이자 내기에도 벅찼다.
얼마못가 엄마가 아셨다.
혼자 죽어도 부모님께는 차마 알릴수 없었던 사실..
지방에 계신 엄마가 죽을결심으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셨다가 차마 죽지 못하고 내려오셨다고
서울로 오셔서 펑펑 우셨다..
남겨진 내 명의로 된 빚 1억 ...
엄마가 이리저리 친구분들에게 아빠 몰래 1억이라는 돈을 끌어모았고 한꺼번에 내 빚은 처리되었다.
엄마의 결단으로 살아난 나는
그렇게 나는 빚에서 헤어나와
다시 정상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차례차례 빚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휴학없이 무작정 학교를 그만뒀던 나는.. 전문대로 야간대에 진학했고 낮에는 일하며
밤에는 학교를 다니며 간신히 2년을 마치고 23살때 만난 남자친구 집안의 부유함으로
나는 졸업과 동시에 남자친구 집에서 차려준 가게의 사장이 되었다.
남자친구랑 같이 운영하라고 1억 5천이라는 돈을 들여 차려준 가게였지만
남자친구는 얼마못가 일하지 않았다.
차려준 가게 동네 분위기와 사람들이 구질구질 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는 가게를 그만뒀고
나는 직원을 데리고 가게를 꾸리면서 월급사장으로 일반 직장인보다 많은 돈을 받으며
빚을 갚아나갔다.
뭐 어차피 결혼하기로 했기에.. 양쪽집안 다 알고 허락했기에..
미칠듯이 사랑한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조건에 ... 함께 해온 세월의 정에 그쪽 부모님 인품에
우린 결혼을 약속했고 가게도 내 가게라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일하지 않고 집안에 있으면서 알콜중독 수준으로 술을 마셔댔고 툭하면 당장
가게 문닫아라, 쌍욕에 우리집안 가진거 없다며 상처줬다.
나는 미친듯이 죽지않을만큼, 돌아버리지 않을만큼 버텼다.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버텼고 , 악으로 오기로 버텼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 내가 그 사람에게 들인 시간이 아까웠고 여기서 무너지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시간..
그러다 내 과거가 그 남자에게 발각되었다.
어느 새벽
그 남자가 내가 과거에 사채빚 갚으려 찍은 에로물 동영상을 봤다며 소주10병을 사들고
내집으로 찾아왔다.
처음엔 아니라고 했지만 급기야는 내 앞에서 그 동영상을 틀어보이겠다해서 내가 맞다고 했고
삐걱대던 사이 ..결국 서로를 헐뜯으며 만신창이가 되고
차라리 술집에서 얼굴 안보이게 술을 팔고 몸을 팔지 그랬냐는 그사람 말과 함께 시간을
보내봤지만 결국 헤어졌다.
너무 힘들었던 햇수로 5년, 만... 4년의 그 남자의 연애가 끝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여러남자들의 대쉬와 만남..
힘들었던 시간으로 어떤 만남도 두려웠던 내게 다가온 사람은 내가 막무가내로 싫다했다.
나도 누군가를 상처줬다. 그냥 만났을뿐..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해도
내 옆에 있던 새로운 사람의 진심이 마음에 들어왔고 나는 사랑을 시작했다.
사랑의 시작인줄도 모르고 그저 그 사람이 내게 주는 편안함이 좋아서 나는 마냥 행복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진심과 내 마음이 운명이라 생각했다.
주변에서 니가 어떻게 저런 조건 안좋은 남자를 만날수가 있냐고 말려도 나 역시 좋은 조건
아니라며 위로했고 사랑하기에 조건따위는 내 사랑을 가로막지 못한다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빚에 시달리며 지금까지 모은돈을 모두 빚잔치 했지만 그 남자의 꽤 많은 학자금대출 빚이
무섭지 않을만큼, 그 사람 닮은 아이를 낳아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는 몸과
마음을 그 남자에게 올인했다.
내가 처음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
나의 빗나간 과거의 사진협박 메일을 받고도 나를 원망하는 말도 하지않았던 사람.
나를 사랑하기를 거침없었던 사람이었기에..
그저 나는 내 운명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1년동안 나는 경제적으로 힘들었어도 그 사람의 집안사정, 경제적인 문제로 미래가 불확실 했어도
나는 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이 미친듯이 행복했고 좋았다.
스무살이 지나고 그 사람과 지내면서 처음으로 내 삶이 편안했다.
처음으로 행복했다.
그런 사람과 헤어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지만 그 계기가 우리의 사랑을 이어가지 못할만큼 헤어져야 할 이유였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아마 평생을 살아도 모를지도 모르겠다.
많이 매달렸지만 아파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할수있는것은 그저 내가 마지막 해줄수 있는것은
보내주는거뿐이라 나는 이별했다..
나를 사랑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지막을 남기고
헤어지는 마지막날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는 나와 성관계를 마지막으로 수면제를 먹고 잠든
나를 뒤로 한채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그 사람을 원망을 많이 했다.
사랑한 시간 1년...
꿈인거 같아... 울지 않겠다고 악에 바쳐 이를 악 물면서도 연인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고 ,
내가 힘들다고 하면 품에 안고 힘들어 하지 말라고 웃는 그 사람이 그립다.
다시는 사랑따위는 하지 않을것이라 못할것이라 생각하면서도 ,, 강하게 살고자 하는
나는 오늘도 바보같이 울고 말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면서도 난 아직 그와의 이별이 너무도 아프다.
마음에 구멍이 난거처럼 미치도록 가슴이 시리고 , 그 사람의 품이 그립고
그 사람의 부재로 내게 사랑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 사람과 이별을 겪으면서 나는 이직한 새 직장에서도 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만둔거지만,,, 교육기간에 쓰러지고 아프고 ,결근했던 나에게
사회는, 새 직장은 나를 마지막까지 발령을 내지 않았다.
많은 나이에도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좋아했던 엄마아빠의 기대와 기쁨에도 불구하고
나는 짤렸다.
그러기를... 몇주째..
나는 무기력증에 우울증에 ..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천장을 바라보고
깨어나 있으면 머릿속에 드는 잡생각이 싫어 그저 죽은듯이 잠만 잤다.
4년동안 사귀고 헤어진 그 남자한테 연락이 왔고
그 사람은 나랑 헤어지고 다시 집에서 차려준 가게를 시작했다며 직원이 필요하다 했다.
아니 내가 필요하다 했다.
내가 가진 별거 아닌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며 내가 절실히 필요하다 했다.
또다시 제의한 많은 급여 그리고 장사가 되는만큼의 인센티브...
돈이 필요했고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나는.. 내가 우울증 걸린 상황을 말해주었고 그래도 괜찮다며 일해보자
해서 그저 직원으로서 일하겠다 했다.
다음주부터 일하겠노라고 했고 내 우울증을 달래 준다며 바다를 갔다.
비가 온 뒤끝이라
하늘이 맑았고 파도는 높았고 ..
바다냄새는 꽤 비렸다.
파도를 보면서 모래사장에서 그 사람은 내게 가게 일 얘기를 해줬고 나는 들으면서
잠깐 그 사람이 화장실을 간 사이 울어버렸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그 사람은 화장실을 다녀온후 우는 나를 보고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일 얘기를 하는데 왜 우느냐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이 따위로 가볍게 일 할거면 당장 그만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렀고 내어준 가게 키를 다시 뺏어 당장 서울로 올라간다 했다.
말없이 그냥 있었다.
그래 일 얘기 하는데 운 내가 바보니까 , 내가 맹추니까 ..
근데 그 남자 하는 얘기...
니가 가진게 뭐있냐, 아니 니네 집이 가진게 뭐 있냐. 니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라고 내가
여기까지 널 데리고 와서 돈쓰고 봉사해줬는데 감히 ,, 잘해주면 알아서 기어야지
머리가 그렇게 나빠서 어디 사회생활 제대로 하겠냐,,,
서울로 올라가는 차 속 내내 그 사람은 미친듯이 화를 냈고
아무 대꾸 없는 내게 잘못했다는 말 안한다며 갑자기 휴게소에서 내리라고 했다.
평창 휴게소에서 가방들고 내렸다.
콜 택시 불러서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니가 무릎꿇고 빈다면 자기가 서울까지는 태워다 줄수는
있다했지만 ...
난 가방들고 그냥 무작정 내렸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정말로 쌩~ 가버렸다.
그 사람이 밉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돈때문에 넋이 또 나가 그 일한다고 했던 내 발등을 찍었을뿐...
세상은 내가 울면 그저 나를 바보 취급하고 나를 업신여긴다는 것을 뼈저르게 느꼈던 어제하루..
나는 그 사람의 충격적인 대사로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왔고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볼것이고
울지 않겠노라 ,, 강해지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자식이 울면 부모는 피눈물을 흘린다고 했던가..
엄마는 내가 아파하는 걸 보고 밤새 기도를 드리고 내가 안보이는곳에서 운다..
우리집의 둘째딸인 나의 인생이 제일 안타까워 하는 엄마.
첫단추를 잘못끼어 그런거라 아파하는 엄마.
동생과 언니는 모두 '사' 자 직업을 가졌는데.. 너만...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
어제 엄마의 눈물을 보고 ,
자식이 울면 부모의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했다.
책도 읽고 밥도 열심히 먹고
힘껏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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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니 정말 길다.
그저 내 파라만장한 얘기를 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고
내 장문의 글을 읽는 힘든 사람들에게 나도 행복하겠다고 사는거니 .. 위로를 하고 싶었다.
그저 파라만장한 내 삶에
가슴쓰린 악플은 없기를..
나는 힘들어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래도 살고 싶어하고 행복하고 싶은 나를 보았다.
세월의 힘만큼 무서운것은 없다고..
시간이 지나서 내 삶을 돌아볼때 그때의 고통이 참을만, 견딜만 했노라고 생각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