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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침대 위에

엽호부활 |2007.08.09 23:40
조회 1,041 |추천 0

낯설은 침대 위에

 

"후~ 힘들다. 그나저나 이 놈은 왜 아직 안오는 거야?"

형민은 새로 이사온 오피스텔에 짐을 나르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뻐근한 허리를 한번 주욱 펴고는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이삿짐을 도와 준다고 한 놈이... 제 시간에 와야할 것 아냐? 그런데...
소식도 없고..."

그때 겸연쩍은 듯 상규가 불쑥 얼굴을 내밀며 소리쳤다.

"헤헤헤. 미안하다, 형민아. 내가 좀 늦었지?"
"조금 늦었다고? 임마. 약속한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었으면..."
"아이고... 죽을 죄를 졌다. 후후후. 사실... 늦잠을 자서 말이야."
"됐다. 됐어. 어쨌든 남은 짐 정리 하는 거나 도와줘."

상규는 방안을 둘러 보다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형민아, 그런데 정말로 이 방이 그 가격에 얻은 거야?"

어수선한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담배를 빼어 물던 형민은 고개를 끄
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렇다니까. 정말 싸지? 다른데 같았으면 전세는 커녕 월세로도
못 얻을 가격인데... 더군다나 저번 주인이 쓰던 가구들이며 다른 것들도
공짜로 준다하니..."

상규는 형민을 한번 힐끔 보고는 오피스텔 구석 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물이 잘 안나오던가...
화장실에 배수가 안된다던가..."

상규는 싱크대의 수도를 틀어 보기도 하고 화장실의 물도 내려보면서
정신없이 왔다갔다 했다. 형민은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비벼
끄며 얘기했다.

"괜히 트집잡지 말고... 부러우면 너도 나처럼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하란
말이야. 맨날 백수로 지내지 말고..."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둘의 웃음 소리가 오피스텔에 가득히 울려퍼졌다.

                   ****************

"으... 취한다. 나... 더이상 술, 못먹겠다. 형민아... 나... 이제 그만
갈께."

상규는 아직 덜 정리된 형민의 오피스텔에서 술을 먹다가 도저히 못 견
디겠다는 듯 잔뜩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형민도 상규 앞에서
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어... 그럴래? 아이고 벌써 자정이 다 됐네? 자고 가지 그래?"
"아냐. 잠은 집에 가서 자야지. 어쨌든 내일 내가 다시 올테니 그때 마저
정리하자."
"응... 그래. 괜히 저녁먹다가 반주로 한, 두잔 시작한 것이.... 이 시간
까지..."

형민은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방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상규는 흐린 눈
으로 형민을 바라보다가 억지로 일으켜 깨웠다.

"야, 침대에 올라가서 자라. 봄이라해도 아직 쌀쌀한데... 맨바닥에서 
자면..."

상규가 간신히 부축을 하자 형민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곁에 놓인 침대에 털퍼덕 드러 누웠다.

"으... 응. 그래 내일 보자. 잘... 가..."

형민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코를 골기 시작했다. 상규는 되는 대로
이불을 덮어주고는 오피스텔을 나섰다.

                   ****************

-따르릉, 따르릉-

열번이 넘게 전화벨이 울리자 상규는 졸린 눈을 억지로 비비며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여... 보세요? 아, 형민이구나..."
"도... 와줘... 너무... 무서워..."

전화기를 통해 들린 형민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간간히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상규의 졸음을 일순간에 쫓아 버렸다.

"왜... 그래?"
"나... 지금 오피스텔에 있어... 제발 이리로 빨리 와줘. 어서..."
"아... 알았어. 갈께. 지금..."

너무도 다급한 형민의 부름에 상규는 이것 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재빨
리 외출복으로 갈아 입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새벽부터..."

상규는 향민의 오피스텔을 들어서자 마자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그러나
형민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 뿐이었
다. 상규는 방에 불을 켠 후 형민에게로 다가가 다시한번 물었다.

"형민아, 무슨 일이냐니까?"

여전히 형민은 희멀건한 눈망울만 이리저리 굴리며 턱을 덜덜 떨뿐 아
무 말도 없었다. 상규는 그런 형민의 뺨을 몇번 때리다가 씽크대에서 찬
물을 받아와 형민의 얼굴에 끼얹었다.

"사... 살려줘."

그제서야 상규의 얼굴을 알아 본 듯 정신을 차리며 조그마한 소리로 중
얼거렸다. 상규는 어쩔 줄 몰라하며 형민의 어깨를 흔들었다.

"자, 진정해. 나라고, 상규. 어서... 얘기를 좀..."
"으... 음..."

갑자기 형민은 긴장이 풀렸는지 그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상규는
한동안 형민을 바라보다가 안절부절하더니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구급
차를 불렀다.

                   ****************

"형민아 정신이 좀 드니?"
"음... 좀... 휴~ "

입원실에 반나절을 누워 있던 형민이 부시시 일어나자 내내 그의 곁에
서 간호를 하던 상규가 다가와 물었다.

"좀 더 누워 있어."
"괜찮아... 그보다..."
"그보다... 뭐?"

형민은 여전히 불안한 눈길로 병실을 두리번 거리다가 깜짝 놀라 침대
에서 뛰어 내리며 소리쳤다.

"사... 상규야... 혹... 시... 저 침대에... 뭐가 없나... 좀 살펴줘..."

너무도 두려움에 가득찬 형민의 시선에 상규는 아무말도 않고 침대를
살펴 보았다.

"보통... 그냥 철제 침대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상규의 걱정스러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형민은 벽에 바짝 붙어서 오
들오들 떨며 침대만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말이야..."

상규는 형민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정히 안으며 쇼파에 앉혔다. 형민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말을 이었다.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자고 있다가 문득 목이 마르더라고. 그래서 일어나
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술이 너무 과해 그런가 보다하고
억지로 눈을 뜨려고 했지. 그런데 눈조차 떠지지를 않는거야. 간혹 나는
가위에 눌려본 경험이 있어서... 아마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
너도 알다시피 가위에 눌리면 각자들 하는 행동이 있잖니?"

"어떤...?"

"나같은 경우에는 두 주먹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힘껏 바닥을 밀어내며
일어나는 거야.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익숙해지면 그 방법이 가
장 괜찮거든? 그래서 어제도 두 손에 힘을 주고 침대를 밀치는데..."

"그런데...?"

상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형민을 바라보았다.

"단단해야할 침대가 척척하면서도 물컹한 느낌이 들더라고. 처음에는 내
가 혹시 침대에다 토했나 생각했는데... 아무튼 재빨리 일어나 손으로
침대 위를 더듬어 보았지. 몽롱한 정신이라 불을 키는 것도 잊고는 말이
야... 그런데 컴컴한 방안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 같더라고...

머리가 쭈볏서더구나. 얼른 일어나 벽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올렸는데...
반짝이는 형광등 불빛과 함께 그 물체가 스르르 없어져 버리는 거야. 순
식간의 일이라 확실히 보지는 못했어도... 너무 기분이 나쁘더라고...
그 왜 있잖아... 아주 오래 산 집이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섬뜩할 텐데...
이건... 이사 온 첫날이니..."

"그렇겠지... 그래서?"

"한동안 침대를 쳐다보다가 내가 잘 못 봤겠지라고 마음을 다 잡으며 화
장실로 향했지. 세수라도 해서 정신을 차릴 셈으로 말이야. 한참을 머리
에 찬물을 뒤집어 쓰는데...  침대 있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
야..."

형민은 말이 계속 될수록 어제 밤의 일이 떠오르는 듯 간혹 몸서리를
쳤다.

"어떤...?"

"침대가 심하게 흔들리며 나는 삐걱,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딨지?
어딨는 거야?' 이런 소리가 말이야. 그것도 들릴락 말락하게... 가녀린
여자 목소리였어.. 한참을 화장실에 멍하니 선 채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지.
주변이 환하다 쳐도 너무 오싹하더라고...

그렇게 한 십분쯤 지났는데 마루에 걸어 놓은 괘종시계에서 1시를 알리
는 종이 치더라고... 나는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화장실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 보았지... 그때 갑자기 정전이 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지. 한참을 소리치다가... 보니...

침대 위에 다시 희미하게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너무 놀라 입을
다물고 한참을 쳐다보니까... 긴머리를 양쪽으로 빗어서 넘긴 잠옷차림의
여자의 뒷모습이었어... 그 여자가 내 침대위에 우두커니 앉아서 두리번
거리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상규는 갑자기 '피식' 웃으며 형민의 얘기를 짜르듯 얘기했다.

"어릴때 많이 듣던 싸구려 귀신 얘기 같구나. 훗... 너 혹시 몽유병 있
냐? 아니면..."

형민은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상규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이야. 너무도 무서워서 벌벌 떨고만 있다가 해가 뿌옇게 떠오를 때
쯤 그 여자 형체가 점점 없어 지더라고... 그래서 네게 전화를..."

상규는 형민의 진지한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평소의 네 성격으로봐서는 거짓말 할리가 없긴 한데... 그래도
너무 황당한 얘기라서..."

아직도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형민이가 조심스럽게 상규에게 말했다.

"정말로 말이야... 네 얘기대로 그 집이 너무 싸기는 했어. 더구나 전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그의 가구들까지 내가 떠 맡은 것도...
어쩌지? 그냥 이대로 있을 수도 없고... 무서워서 집에 들어 갈 수도
없으니..."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상규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면 일단 오늘 나하고 같이 네 집에서 밤을 새보자. 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자세한 걸 알아보기로 하고..."
"난 싫어... 무섭단 말이야."
"짜식... 소심하기는... 그러면 평생 밖에서 맴돌거야? 기껏 독립했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그래도... 나는..."
"좋아. 그러면 나 혼자라도 한번 가보지. 난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란
말이야."

자신감있게 일어서는 상규를 형민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

"도대체 뭐가 나온다는 거야? 새벽이 다 되도록 아무일도 없잖아?"

상규는 형민의 침대에 걸터 앉아 투덜대고 있었다.

"역시... 귀신이라는 건 없다니까. 형민이 짜식... 괜히... 아~함...
그나저나 나도 슬슬 졸려지는데?"

시간이 흐르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자정까지만 해도 초롱초롱하던 눈
이 조금씩 풀어지며 하품만 나올 뿐이었다. 상규는 크게 기지개를 한번
키고는 잠시라도 눈을 부칠 셈으로 방에 불을 끄고 침대에 벌렁 드러
누웠다.

"아이구... 모르겠다. 처녀귀신이 나오든 할머니 귀신이 나오든 잠이나
좀 자고..."

상규는 침대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얼마쯤 잤을까? 침대
위를 마구 헤매며 자고 있던 상규의 손에 물컹하고 뭔가가 느껴졌다.

문득 형민의 얘기가 생각이 나 등골이 오싹해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그의 곁에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것 같았는데... 상규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때 어둠속에서 형민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훗... 나야. 놀랐지?"
"엥? 네가 여기 왠일로... 휴~ 깜짝 놀랐잖아? 정말 너의 얘기처럼 귀신
이라도 나온 줄 알고..."
"헤헤헤. 사실... 전에 살던 이 집 주인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게 있어서...
너를 놀려 줄려고 일부러 그런 얘기를 한거야."

상규는 다소 안심을 하며 형민이가 있는 침대 곁에 다시 드러 누우며
싱겁다는 듯 물었다.

"짜식... 어쩐지... 싸구려 귀신 얘기더라만... 그나저나...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예전에... 이 집에 못생긴 여자가 살았었데.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으로
생겼는데... 그러니 성격인들 온전했겠어? 자신의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
으니 밖에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냥 이 집에 틀여 박혀 살았데.

그러던 어느날 옆집에 이사온 준수한 젊은이를 사모하게 되었나봐. 며칠
을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서 사랑고백을 했겠지. 역시나 거절 당한 건
물론이고 말야. 그녀는 너무 낙심을 해서 며칠동안 밥도 안 먹고 지내더
니만... 끝내 이 침대 위에서 홀로 죽고 말았데... 세상을 원망하며...
남자들을 원망하며... 또 못난 자신을 원망하며..."

상규는 코웃음을 치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훗...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못났으면 못난대로 꾸그려 박고 살던가...
하여간 재미있는 얘기이긴 한데..."
"아무튼 그 여자는 죽어가며 결심을 했데. 이 침대에 아무 남자라도 잔
다면... 그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죽어서라도 말이야..."

점점 가늘어지는 형민의 말에 상규는 여전히 웃음을 띠며 주머니를 뒤
져 담배를 한대 꺼냈다.

"멍청한 여자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라이터가 어디있더라...?"

상규가 부시럭거리며 라이터를 찾아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 품속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상규는 움찔하며 핸드폰을 꺼내 천천히 플립
을 열었다.

"아, 진한이구나. 이 밤중에 왠일로...  뭐야? 누가 죽어? 조금전에...
형민이가... 병원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무슨 소리야? 지금 내 옆에
형민이가... 있는..."

문득 싸늘한 기운이 느껴져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켰다. 흔들리는 손
길이라 몇번이나 라이터 돌 튀는 소리만 들리더니 이윽고 불이 붙었다.
그러자 어두컴컴했던 침대 주변이 푸르스름한 불빛에 다소 환해졌다.

"엇... 너... 너는... 아~ 악!!"

벌건 불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건 온통 일그러진 여자의 추악한 모습이
었다. 입술은 반쯤 말려 올라가 코 언저리에 붙어 있었고 눈은 흰자만이
번득거렸다. 상규가 너무 놀라 뒤로 물러나는데 그 여자는 손가락 마디
마디가 서로 엉겨 붙은 차디찬 손으로 상규의 어깨를 꽉 움켜 쥐고는
자신의 얼굴을 상규의 볼에 천천히 비벼대며 이죽거렸다.

"아까 그 얘기는 바로 내 얘기야... 키키키... 형민이란 놈은 조금전에
나를 보더니만 놀라서 도망가다가... 크크크...  아무튼... 너도 내 침대
에서 잠을 잤으니... 이제부터 너는 내꺼야... 평생... 너를 따라 다닐거
라고...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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