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계 및 국민들의 경제활동에 관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 체제 은행제도 운영이다. 왜냐하면 이슬람법에서는 이자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 제도가 이자를 금지하는 꾸란의 원칙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때문이다.
고리대금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비난받고 있으나 이자의 합법화에 기초를 둔 자본주의 체제하의 현대 은행제도는 이자를 경제생활의 필요조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와 같이 이슬람 국가와 비이슬람 국가 간에 대규모의 무역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자제도를 기초로 하여 운영되는 자본주의 체제 은행제도 운영은 피할 수 없는 현상처럼 보인다. 따라서 비이슬람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무슬림들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제도를 따르도록 강요받고 있다. 왜냐하면 국제무역은 국내 차원이 아닌 국제적인 은행제도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이슬람 은행과 자본주의 체제의 은행이 병존하여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슬람 은행들의 운영체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슬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고리대금과 이자의 금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 사회에 대한 이슬람의 기본적 가치관 중 하나는 곤궁한 상태의 채무자를 돕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본 덕목을 해치는 고리대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금지되고 있다.
꾸란에 나타난 고리대금의 금지는 자비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자비심이 인간의 동정심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고리대금은 모든 동정적인 감정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고리대금업자란 막대한 그의 재산에 한 푼이라도 추가하기 위하여 채무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이며 모든 동정심을 빼앗으면서까지 그의 이기심을 채우는 자들로 취급된다. 또한 이들은 힘든 노동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기생해서 살기 때문에 고리대금은 게으른 습관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속되는 투쟁의 과정 속에서 이슬람은 노동의 편에 서고 고리대금의 금지를 통해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회복하고 노동이 자본에 예속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이 노동의 고귀함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꾸란에서 하나님은 상거래를 허락하셨지만 고리대금은 금지하셨다. 그 이유는 상거래가 노동과 기술을 요구하는 반면 고리대금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궁핍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그를 좀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것만이 이슬람의 목표이므로 고리대금업을 하나님이나 예언자와의 전쟁이라고 간주하여 엄하게 금지하는 것이다.
이자 금지에 대한 근거도 역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다. 아랍어에서 이자에 해당하는 ‘리바’라는 단어도 빌려준 원금에 대한 ‘웃돈’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 중에는 이것을 고리대금 성격의 거래에만 적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이율의 고저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이자를 포함한다.
이는 세계 각국의 경제사에서 보듯이 모든 이자는 종국에는 고리대금의 형태를 띠는 경향이 있고 채무자에게는 점점 무거운 짐이 되고 있어 고리대금과 이자를 구별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무슬림들의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자를 수반하는 은행의 예금 문제는 무역 문제처럼 현대의 경제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 은행은 차용인으로서가 아니라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고 예금주의 요구에 따라 돈을 내주는 수탁자로서 예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예금은 금고 속에 사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운용되어 이득을 보게 되면 일정 비율을 예금주에게 지불한다. 즉 고정 이윤을 보장하는 이자는 금지되어 있으나 은행이 이 돈을 운영하여 발생하는 이윤에 대한 배당금은 가능한 것이므로 이슬람 은행은 이자의 개념이 아닌 투자의 개념인 것이다.
사업자본에 대한 이윤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합작을 금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 이익뿐만 아니라 손실까지도 함께 나누어야 된다. 고정이자 지불은 사업이 적자를 내더라도 자본은 항상 이윤을 본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으로 사업이 잘될 때에는 자본에 대한 이윤이 회사의 이윤보다도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은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자본가나 노동자 중 어느 한쪽이 부당한 이득을 보거나 부당한 손실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만일 사업이 이익을 낳을 경우 자본은 이익의 정당한 몫을 갖고 손해가 날 경우에도 손실 또한 나누어 책임진다.
무슬림들은 이 방법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자본가들은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더욱 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작금의 현실 세계를 치유하고 공동체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병폐의 원인이 자본주의의 생리인 이자 지급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나 운하 건설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국가나 회사에 대한 대부일 경우 자본을 공급하는 주주들은 일반적으로 이익에 기초한 배당금을 받으나 때때로 주주들은 고정 이윤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이 꾸란의 이자 금지에 해당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윤율은 분명히 고정되어 있으나 이때의 이윤은 사업 이윤에서 지불됨으로 일반적으로 이 고정 이윤 역시 이윤의 일부분으로 이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적자를 보아 사업 이윤이 고정 이윤 지급액보다 적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적자를 메꾸어 주는 예비기금이 있어 부족한 이윤을 보충하여 지급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도 역시 다양한 배당금 지급의 일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배당금 지급이 고정 이자의 지급보다 이슬람의 정신에 더욱 부합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슬림은 이슬람 은행에 계정을 유지하는 것을 종교적·도덕적 의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은행들은 예금 유치를 위해 다른 은행들과 경쟁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많은 고객들은 이슬람 은행은 물론 자본주의 체제 은행에도 계정을 유지하는데 이는 외환이나 해외 업무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슬람 은행들은 자본주의 체제 은행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하는 것으로서 간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