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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의 영원한 숙제 해소...시키기

타라기 |2003.06.27 11:55
조회 950 |추천 0

 이렇게 해서 정말 잘 지낼수 있다면 좋으련만..그래도 혹시나 참고하시면 조을듯..

근데 사람이 싫으지면 어쩔수가 없다고 하던데..

결혼생활의 영원한 숙제, 시모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함께 잘 지내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자를 선택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줄줄이 딸려오는 시가, 처가의 수많은 관계들. 부부 갈등의 1순위를 점하고 있는 그 미묘한 양상을 살펴본다.

1. 가까이 지내다가도 역시 강 건너 먼 사이

▼ 내겐 너무나도 먼 당신의 이름은 시어머니

“오늘 내가 집 좀 치웠다”

퇴근 후 저녁 찬거리를 사서 집에 돌아와 보니 화분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오늘도 시어머님이 다녀가신 게다. 시어머님이 살림을 거들어주셔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을 확 열어제쳐서 멍든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시어머니는 교양이 철철 넘치시는 분이다. 반찬 하나를 만들어도 요리연구가를 능가하는 박식한 지식과 화려한 언변 때문에 나는 내내 보조요리사가 되어서 종종거려야 한다.

일년 열두달 제대로 쉬는 날 없이 바쁜 나에게 절대 김치나 밑반찬을 만들어주지 않는 분. 그러면서도 아들이 좋아한다며 게장 한 그릇 달랑 들고 와서 맛있게 먹는 아들을 바라보는 분. 그 옆에서 당신 아들이 제대로 못 먹어 꺼칠해졌다며 나 들으란 듯 혀를 끌끌 차는 분.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들어와 화분 위치 바꿔놓고 욕실의 수건을 바꿔 거는 분. 나는 그런 어머님이 하나도 고맙지 않다. 퇴근 후 깨끗하게 치워진 집에 들어설 때마다 “제발 나 좀 내버려두세요!” 하고 외치고 싶다. 완벽한 시어머니의 그늘 아래 부족한 이 며느리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31세, 결혼 3년차, 아이 없음)

“동서는 보물단지, 나는 애물단지”

남편은 나보다 한살 어리다. 교회 청년회에서 만난 우리는 남편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의 애정공세와는 딴판으로 시댁 어른들은 대놓고 나를 못마땅해하셨다. 이유는 내가 나이가 많고 고졸이라는 것. 남편 회사 때문에 춘천으로 이사를 가기까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눈물 없이 보낸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친정이 10분 거리에 있는데도 명절 때만 반나절 정도 다녀올 정도로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고 친정에서 싸주는 선물을 가져오면 항상 싸구려라고 타박을 해댔다. 그러다 작년에 시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동서는 지방이지만 대학원까지 졸업했다고 한다. 당연히 시어머니는 동서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동서까지도 나를 무시했다. 이번 설에 시댁에 갔더니 동서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도 시어머니는 동서가 만든 반찬만 먹으며 칭찬을 해댔다. 이제 나는 더이상 시댁에 가지 않는다.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며느리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시어머니도 알아야 할 때다. (33세, 결혼 6년차, 아이 둘)

“며느리는 파출부가 아니라구요”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시부모와 3년을 함께 살고서 얼마전 분가를 했다. 며칠 편하게 지내나 싶었는데 시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셨다. 처음엔 ‘갑자기 허전해서 그러시려니’했는데 웬걸 갈수록 말하는 내용들이 가슴에 턱턱 걸렸다. 냉장고 속이 지저분하다느니, 현관이 어지럽다느니 하는 말들은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이삿짐 챙기느라 제대로 정리를 못 하고 온 내 탓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시어머니는 한술 더 떠서 커튼을 빨아야 한다느니, 김치가 다 떨어졌다느니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오라가라였다. 이건 말만 분가지 두집 살림을 다 떠맡은 격이었다. 이불 빨래며 욕실 청소는 물론 주말이면 특식이라며 추어탕이니 삼계탕이니 해달라는 것도 많은 우리 시어머니. 아는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는데 왜 우리 시어머니는 바짝바짝 타는 내 가슴 속은 몰라주시는 걸까? 어머니, 전 파출부가 아니라구요. 저도 곱게 자란 남의 집 귀한 딸이라구요. 흑흑. (28세, 결혼 3년차, 아이 하나)

★ 시댁갈등 해소하는 노하우

▷ 주요 경조사를 챙긴다
시댁 식구들의 생일, 제사, 조카들의 입학식 등을 꼼꼼히 달력에 적어놓는다. 남편이 잊더라도 미리미리 챙기면 시어머니 사랑은 따놓은 당상.

▷ 형편껏 한다
남들 눈치 보면 힘만 든다. 액수로 비교하지 말고 영화표를 끊어드린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해가는 식으로 자신만의 센스를 발휘한다.

▷ 역할분담을 확실히 해둔다
무엇이든 며느리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깨야 한다. 요구가 과할 경우 미리 안 되는 것은 처음부터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 남편에게 도움을 구한다
갈등이 있을 경우 대부분 시어머니와 바로 부딪치면 오히려 갈등이 증폭된다. 이럴 때는 남편을 이용한다. 같은 의견이라도 며느리가 말하는 것과 아들이 말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 요구할 것은 요구한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당신이 시집살이 하던 대로 며느리를 길들이려는 시대착오적인 시어머니는 드물다. 며느리의 말이 합리적일 경우 시어머니도 양보할 수밖에 없다.

▷ 손자, 손녀를 이용한다
아무리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도 손자, 손녀는 예뻐하게 마련. 아이들과 시어머니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 백년이 가도 영원히 남남일 것만 같은 당신, 장모님

“저놈은 왜 저렇게 지 엄마를 못살게 굴어?”

친손주가 울면 며느리 보고 “얘, 빨리 젖 물려라” 하다가도 외손주가 울면 “저놈은 왜 저렇게 지 엄마를 못살게 굴어?”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난 그 말을 듣고도 웃을 수가 없다. 우리 장모님이 정말 그러시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처남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을 차별하신다.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싸울 수도 있는 일인데도 장모님은 꼬박꼬박 처남네 아이들 편만 든다. 분명히 처남네 아들이 잘못했는데도 항상 우리 아들을 쥐어박는 장모님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내 아들을 데리고 그대로 돌아오고 싶다. “형이 먼저 내 장난감을 뺏었단 말이야” 하고 울며 억울해하는 내 아들에게 평상시 합리적이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말해왔던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얼마전 막내처남이 둘째를 낳았는데 장모님은 “우리 김씨 핏줄이라서 딸도 예쁘네” 하시며 좋아하셨다. 그 옆에서 씁쓸하게 웃고 있는 아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장모님의 그런 모습 때문에 처가를 피하게 된다.(35세, 결혼 5년차, 아이 둘)

“사위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싶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살아오신 내 부모님과는 달리 아내의 집안은 풍족하다면 풍족하달 수 있는 도시의 중산층 가정이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태생부터 다르지만 별문제 없이 결혼생활을 꾸려오고 있다. 그러나 아내의 가족들에게서 느끼는 생경함은 낯설다는 것을 넘어서서 불편하고 거북할 정도다. 아내는 막내딸이라서 장인 장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고 그래서 막내사위인 나도 끔찍이 아껴주신다. 그럼에도 나는 처가에 가면 편안하지가 않다. 내가 처가에 가는 날이면 장모님은 며칠을 벼르신 듯 산해진미의 갖은 음식들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내오셔서 손수 집어주신다. 그러나 나는 밥에 김치를 많이 먹는 스타일이라서 다른 음식들을 많이 먹지 못한다. 이거저거 집어주시던 장모님은 어떨 때는 화를 내시기까지 한다. 왜 그렇게 밥만 먹냐는 것이다. 물론 나를 생각해주시는 장모님의 정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장모님의 그런 자기중심적인 애정표현은 입에 맞지 않는 반찬만큼이나 나를 불편하게 한다. (29세, 결혼 1년차, 아이 없음)

“사위를 머슴 부리듯 마구 부리는 장모님”

모처럼 휴일인데 오늘도 쉬기는 글렀다. 장모님으로부터 저녁 먹으러 오라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사실 저녁만 먹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 먹기 전에 꼭 해야 할 일거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저번 주에도 베란다의 화분을 옮기고 방충망을 달아야 한다는 전화를 하셨다. 마침 학교 동기 모임이 있어서 선약이 있다고 그랬더니 “휴일인데 쉬지도 못해?” 하시는데 날 생각해주시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네까짓 게 뭐가 그렇게 바빠?’ 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저녁 먹기 전에 방충망을 달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처가의 머슴노릇하기도 싫고….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데 차라리 날 손님으로 여겼으면 좋겠다.(33세, 결혼 3년차, 아이 하나)

★ 멋진 사위되기 노하우

▷ 뭐든지 반반으로 공평하게
명절선물이나 용돈을 드릴 때 차이를 두지 않는다.

▷ 처가 식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가끔씩 처제나 처남을 불러내 영화를 보거나 저녁을 산다. 헤어진 다음 장모님에게 전화 한 통화 걸어 안부까지 물어본다면 당신은 만점 사위.

▷ 처가 쪽 가풍을 존중할 것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아내와 결혼한 이상 사위 또한 그 집안의 가풍을 따라야 한다.

▷ 아내를 아낄 것
귀하게 키운 딸자식을 당신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만으로도 장모는 당신에게 주저 없이 일등사위라고 치켜세울 것이다.

▷ 부부싸움을 했을 땐 장모님께 도움을 청한다
아내를 통해서 듣는 것보다 기분이 덜 상할 것이다. 또한 장모님은 도움을 청한 사위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2. 시모나 장모가 또다른 내 어머니로 다가올 때

▼ 당신 딸처럼 여기는 시어머니의 찡한 사랑

“꼬깃꼬깃 접혀진 어머니의 낡은 지폐”

6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는 시골집에서 혼자 사신다. 몇번이나 같이 살자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시며 거절하셨다. 둘째아이 입덧 때문에 누워만 있느라 올 설에는 시댁에 가질 못했는데 며칠 후 시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올라오셨다. 가으내 말린 박나물이며 고춧가루 같은 것을 바리바리 싸오신 어머니는 “그냥 부치려다가 손주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왔다”면서 첫애를 무릎에 앉히시곤 내 안색이 창백하다며 이런저런 걱정을 해주셨다. 입덧 때문에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드리는 내게 걱정 말라고 하시던 어머니는 다음날 일찍 시골로 내려가셨다. 남편과 아이에게 배웅을 맡기고 부엌정리를 하는데 어머님이 남기고 가신 짐 속에서 접혀져 있는 봉투가 나왔다. 연필심에 침을 묻혀서 힘들게 썼음이 분명한 메모와 함께 들어 있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지니고 있어서 접힌 자국이 나달나달해진 낡은 지폐 2만원이었다. “만난 거 사머거라”는 어머님의 서툰 메모와 낡은 돈을 보는 순간,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26세, 결혼 3년차, 아이 하나)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우족탕을 끓여주시던 어머니”

결혼하자마자 덜컥 애가 생겨서 한여름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처음엔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려고 했는데 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막막한 상황이었다. 친정엄마는 가게를 하셔서 도저히 나를 돌봐줄 형편이 못 되었고 시어머니께 부탁드리기에는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 있는 내게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얘야, 산후조리는 내가 알아서 해줄테니 걱정 말아라.”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시댁으로 들어갔는데 시어머니는 내게 너무나 잘 해주셨다. 끼니 때마다 손수 일으켜주시면서 지극정성으로 나를 돌봐주셨고 처음 목욕을 할 때는 등까지 세심하게 밀어주시면서 부끄러워하는 내게 “살이 많이 빠졌네. 잘 먹자” 하시며 위로해주셨다. 그러던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어머니께서 우족탕을 내오셨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있자니 어머니께서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면서 그 뜨거운 우족을 내가 먹기 좋게 뜯어주셨다. 열심히 먹으라며 고기를 뜯는 어머니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그렇게 한달 내내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난 친정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28세, 결혼 2년차, 아이 하나)

“그거 깨버려서 아주 시원하다”

작년 추석은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직장생활만 하던 나는 살림에 영 소질이 없었는데 시댁에서 일을 거들려니 주눅이 들어서 더욱 힘이 들었다. 또 집안 풍습이 달라 밥상 차리는 법도 친정하고는 많이 달랐고 출신지도 달라 시어머님의 사투리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휴일 내내 긴장해 있다가 마지막날 점심을 먹고 ‘이제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며 부푼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씻고 있던 커피잔이 손에서 미끌어지더니 쨍그랑 하고 큰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너무 놀라서 치울 생각도 못 하고 한동안 멍해 있었는데 시어머님은 그런 나를 툭 치며 “아가, 그 컵 너무 속이 좁아서 쓰기 불편했는데 아주 잘 깨버렸다. 속이 다 시원하네”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컵조각들을 치우셨다. 하지만 그 컵은 어머님이 새로 마련한 거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형님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때 그 순간만큼은 어머님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29세, 결혼 1년차, 아이 없음)

▼ 장모님은 또 한분의 내 어머님

“반대 무릅쓴 결혼, 맏사위라 존중해주시는 장모님”

이른 나이에 홀로 되신 장모님은 내가 처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대놓고 반대를 하셨다. 이유는 내가 병약해 보인다는 것.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장인어른 얘기를 꺼내며 혀를 끌끌 차는 장모님의 태도에 나는 무척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1년여의 시간동안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장모님은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하셨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별기대 없이 처가에 들렀는데 장모님은 이제껏 봐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나를 반기셨다. 몇 순배 술이 돌고 노래까지 멋드러지게 뽑으신 우리 장모님,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우리 귀한 맏사위, 아프지 말고 내 딸이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 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껏 가슴에 품고 있던 원망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35세, 결혼 5년차, 아이 둘)

“늘 우리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시는 장모님”

우리는 맞벌이 부부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장모님의 도움이 컸다. 베이비시터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 고민하는 우리 부부에게 장모님이 선뜻 애를 봐주시겠다고 나선 것이다. 장모님은 우리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셔서 아침, 저녁으로 들러 밑반찬을 마련해주시거나 틈틈이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주신다. 아내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장모님이 우리들을 돌봐주신 후로는 정말 집에 들어올 맛이 난다. 예전에 집은 최소한의 의식주만 겨우 해결하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집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다. 고마운 마음에 장모님과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장모님은 오히려 아내가 살림을 잘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신다. 항상 미안하고 또 고마운 우리 장모님께 오늘 저녁에는 꽃 한다발을 선물할까 한다. (33세, 결혼 3년차, 아이 하나)

“생일이면 통장에 돈을 부쳐주시는 장모님”

아내와 나는 캠퍼스커플이다. 같은 동아리의 친한 친구였는데 졸업을 6개월 정도 앞두고서 갑자기 살 집이 없어져서 막막한 상황이 발생했다.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주인집이 재건축을 한다며 방을 비워 달라고 한 것이다. 며칠 동안 살 곳을 알아보러 돌아다니고 있는데 지금의 아내가 자기네 집 옥탑방이 비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그 일이 계기가 되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장인, 장모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성호야” 하고 이름을 부르시면서 아들처럼 날 아껴주신다. 멀리 지방에 사셔서 자주 뵐 수는 없지만 철마다 과일이며 밑반찬을 보내주시고 내 생일날이면 소리 없이 통장에 돈을 부쳐주시곤 며칠 있다가 “정연이랑 맛있는 거 사먹었냐?” 하며 안부전화를 하신다. 우리 장모님은 그렇게 친구처럼 편안한 분이다. (34세, 결혼 5년차, 아이 없음)

★ 맞아맞아 베스트 5

▷ 본가에 이렇게 하는 아내 정말 싫다

- 본가에서는 무표정, 처가에서는 싱글벙글
- 부모님께 사사건건 말대꾸하는 아내
- 본가에만 가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아내
- 집에 빨리 가자고 눈치 주는 아내
- 뭐 챙겨갈 거 없나 눈에 불을 켜는 아내

▷ 친정에 이렇게 하는 남편 정말 싫다

- 이것저것 가리는 게 많아서 많이 먹지 않는 남편
- 친정 식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 남편
- 시댁에는 펑펑, 친정에는 조막손
- 바쁘다고 친정에 같이 가지 않는 남편(그러면서 놀러는 잘 다니지)
- 친정에만 가면 시계 보며 바쁜 척하는 남편

3. 멀게만 느껴지던 시가, 처가, 내집처럼 드나들기

▼ 중풍으로 쓰러진 장모님 정성껏 보살펴

명절만 가까워지면 아내는 부쩍 신경질이 늘어서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다. 난 고향집에 가려면 일주일 전부터 아내 눈치를 보고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했다. 그러던 아내가 달라졌다. 시키지도 않은 안부전화를 척척 해대고 내가 챙기기도 전에 친가 식구들 생일이며 제사를 챙기는 것이다. 역시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법. 그런데 되로 주로 말로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별일 아닌 것에 아내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얼마전 혼자 사시던 장모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 원래 심장이 안 좋았는데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 혈전이 뇌혈관을 막은 것이다. 이웃에 사시는 분들이 급히 병원에 옮겨서 다행히 회복이 빨랐고 왼쪽 손 하나만 움직이는 것이 불편할 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어머님이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회사에 말을 하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내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해서 간호사와 얘기를 하고 있자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내가 나중에야 도착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사흘 동안 휴가를 냈다. 외동딸인 아내가 의지할 곳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한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시면서 재활치료를 했는데 나는 간병인을 구하고 매일 병원으로 퇴근을 했다.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뒤로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별일 아닌 일에 감동하는 아내를 보며 ‘내가 그동안 해주는 일 없이 바라기만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세, 결혼 9년차, 아이 둘)

▼ 출산 때문에 친정집에서 함께 사는 동안 친해져

우리 형제는 2남 3녀인데 사위 셋 중에서 남편이 가장 조용하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숫기가 전혀 없다. 제사 때 모여서 형부들은 오빠랑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이랑 같이 음복을 하네 마네 하면서 떠들썩하게 술잔을 주고받는데 남편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카들 방에서 책을 읽거나 엄마 방에서 TV나 보다가 잠들기 일쑤다. 나는 그런 모습만 보면 속에서 불이 올라와 밖으로 불러내서 잔소리를 퍼붓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은 더 움츠러들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첫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오빠가 엄마를 모시고 있던 터라 오빠네로 들어갔는데 1개월 정도 같이 지내는 동안 남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밥을 같이 먹는 것이라더니 아침, 저녁으로 식탁에서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이고 나중에는 올케랑 설거지를 같이 하며 농담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자주 놀러가자고 했다. 그러더니 얼마전에는 아예 친정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난리다. 엄마, 오빠와 친해져서인지 언니들이나 형부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는 남편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 (29세, 결혼 3년차, 아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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