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총 연장 68km의 긴 하천입니다.
높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왕피천은 예로부터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오랜 세월 때 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하게 됐습니다.
한 때 일부 구간의 개발로 심한 오염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깨끗이 치유된 상태입니다.
왕피천(王避川)이란 이름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에서 따온 것입니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1994년 이후 정착한 한농복구회 유기농공동체를 중심으로
12개 마을 9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왕피천 가운데 길이 없는 구간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 속사 마을부터 근남면 구산리 상천동까지
5km 사이립니다.
문명세계에서 벗어나 호젓한 강물에서 즐기는 강줄기 트레킹의 최적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은 교통이 매우 불편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자가용으로 왕피리나 상천동으로 접근해 트레킹을 시작한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무난한 트레킹법입니다.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상천동의 마지막 집에 차를 세우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며 왕피천에 닿습니다.
길은 따로 없다. 첨벙첨벙 물을 헤치고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합니다.
강물이 크게 한 굽이를 돌면 사방이 막힌 적막강산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치 않은 왕피천은 물고기의 천국입니다.
바닥이 보이는 깨끗한 물속에 고기들이 쉬지 않고 헤엄치고 있습니다.
순박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즐기며 강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여름의 더위는 까맣게 잊을 수 있습니다.
작은 폭포가 형성된 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굽도는 강줄기를 따라 넓은 모래밭을 통과하면, 정면에 왕피천 중에서 가장 절묘한 풍광을 지녔다는 용소가 보입니다.
강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이곳은 수심이 깊은 데다 양옆이 수직절벽으로 둘러싸여 헤엄쳐 건너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남쪽 지능선으로 난 우회로를 이용하면 도보로 통과가 가능합니다.
우회로를 통과하면 용소 바로 위로 뚝 떨어져 내려섭니다.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이곳까지는 약 1시간 거리.
용소를 통과하면 왕피천은 평범하게 변합니다.
잔잔한 강을 둘러싼 산자락은 두루뭉술하고 하상의 바위도 큰 특징이 없습니다.
왕피천과 합류하는 두 가닥의 지계곡을 지나 넓은 자갈밭을 통과하면(용소에서 20분 거리) 물굽이가 다시 크게 휘됩니다.
이곳에 숨어 있는 비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영월 동강의 대표적인 비경인 어라연보다 큰 바위섬이 왕피천 한가운데를 막고 서고 있는 것입니다.
바위 위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바위섬을 넘어 물을 건너 또 다시 물굽이를 돌면 잔자갈이 깔린 널찍한 장소가 나타납니다.
잘 정비된 야영장 같은 강변입니다.
하지만 자갈밭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허리까지 빠지는 깊은 물을 건너야 합니다.
이곳을 통과해 서너 차례 물굽이를 돌면 서서히 강폭이 넓어집니다.
바위 사이에 떠내려 온 철근 구조물들이 걸려 있습니다.
넓은 자갈밭이 있는 곳에서 물을 건너 20분 정도 진행하면 멀리 숲 사이로 건물 지붕이 보입니다.
울진군 서면 방면에서 찻길이 닿아 있는 왕피리 속사 마을입니다.
용소에서 시작해 1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 입니다.
왕피천 트레킹의 골칫거리이자 묘미는 바로 교통편입니다.
워낙 오지라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울진군 서면 소재지인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 왕피리까지는 약 13km.
도보로 3~4시간은 족히 걸리고, 울진에서 택시를 타면 요금이 50,000원이 넘게 나옵니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그래도 접근하고 빠져나오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상류인 왕피리 속사 마을과 하류인 구산리 상천동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다시 간 길을 되밟아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이 두 마을 사이의 거리는 약 5km.
왕복하면 10km쯤 되는 만만치 않은 거리입니다.
왕피천 비경지대인 상천동~속사 구간을 왕복하는 데 도보만 5시간 가량 소요됩니다.
중간에 식사하거나 수영하며 더위를 식히는 데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코스로 안성맞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