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가을병
/ 보 스
고요한 달빛그림자 창가를 두드리고
벌레 소리 마저 잠들 때 쯤이면
망망한 대해에 홀로 버려진 듯한
깊은 외로움 속으로 빠지게 된다.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쓸쓸함은
가슴에 가득 차오르다가 마침내 뜨거움이 되어
목젖에 경련을 일으킬 만치
나를 고통스럽게 할 때가 있다.
현존하는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적당히 포장된 껍데기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이라는 세파 속에서
내 속의 자아마저도 잘 훈련되어지고
그럴듯하게 조련 되어진
가식의 모습만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자식 배 안골리고
내 자식들만이라도 남의 자식들에게
기죽지 말고 어깨 쭉펴고 살라고
눈밭에 맨발로 내몰리듯 동동거리며 살다보니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게다.
이제 내아이들도 자라 내 품을 떠나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독수리처럼
힘찬 날개 짓을 준비하려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듯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가에는 어느덧 잔주름이 잡혀 있고
이마 위에는 희끗희끗 서리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중년의 계절 가을을 또 다시 맞는다.
누가 우리 세대를 향해 '잘숙성된 와인세대'라 했던가?
그것은 우리 듣기 좋으라고 누군가 지어낸 말,
이제라도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나서면
쓸쓸한 마음도 채워질 수가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이 가을이 지나고 첫눈이 내리던 날
깨끗히 치유 될, 홍역처럼 찾아오는
중년의 가을병인지도 모르겠다.
gi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