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남자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나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해
아침마다 옷을 고르고 머리를 손질하지만
정작, 약속 없는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지.
오늘 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내가 갑자기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내 주위의 오가는 이 많은 사람 중에
우리가 사랑했던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새삼 놀라워.
우리가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시절엔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아줬는데.
우린 서로 선물도 많이 주고받고
전화도 하루에 몇 통씩
마음도 남김없이 다 주고받았는데.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까
흔적이 하나도 없네.
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멍해질 때가 있어.
'정말 꿈을 꾼 걸까?'
그런 생각에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돼.
▶ 그 여자
은행잎이 정말 몇 장 안 남았네.
며칠 남지 않은 가을 거리를 보고 싶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척
정류장에서 서 있는데
하필이면 내 앞에 멈춰 서는 버스.
버스 속 사람들이
모두 차창으로 나만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난 괜히 전화기를 꺼내 들지.
이미 다 본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기도 하고
답장을 보내는 시늉도 하고.
하지만 그러다 슬쩍 고개를 들어 보면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지.
우리가 둘이던 시절
고개를 돌리면 늘 그 곳에 있던 너처럼
난 지금도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을 거라
착각하며 사나 봐.
'아까부터 쭉 지켜봤는데요.'
그 흔한 말로
내게 처음 다가왔던 너.
그 때가 벌써 지난겨울.
니가 왔다가 떠나고
가을이 왔다가 떠나고.
혼자 남은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