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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몇 가지 작은 생각들

소금인형 |2009.09.03 23:29
조회 122 |추천 0

1. 서론

 

식민지배, 전쟁, 분단과 군사독재라는 한 민족 혹은 국가가 겪을 수 있는 현대사의 거의 모든 비극을 한 세기 동안 경험한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인정히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이념의 날카로운 대립과 분열, 갈등이 어쩌면 일정부분 필연적인 것이라 하겠다. 지금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윤택한 경제적 환경과 정의로운 분배원칙이 지켜지는 서구 국가들의 경우에도 그들이 오늘날의 안정적이고 성숙한 사회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반을 갖추기까지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과정속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한 갈등과 폭력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가 아직 더 나은 삶의 조건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특히 정권교체 후 정치적 휘발성이 큰 여러 민감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며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주된 갈등의 원천으로서 이념 대립은 다시 한 번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2. 용어 개념의 명확화-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이념 문제를 다루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흔히 쓰는 정치이념을 표현하는 용어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필수적이다. 특히 보혁갈등으로 대변되는 현재의 정치적 대립 속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의 정확한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정치이념을 좀 더 완벽한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려면,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좌익과 우익이라는 또다른 스펙트럼의 축선상에서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요컨대 보수와 진보는 흔히 쓰이는 것처럼 우익과 좌익개념과 배타적으로 연결되는 용어가 될 수 없다. 용어 그대로, 보수와 진보는 현존하는 질서에 대한 태도를 근거로 하는 것이므로, 현존 질서가 어떠한 성격인 것인가에 따라 보수와 진보, 그리고 우익과 좌익은 교차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좌익과 진보는 같이 연결되는 것으로 많이 통용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의 현존 질서가 우익중심적으로 형성되어온 배경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좌익의 질서가 특정 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된다면, 우익은 곧 진보라는 성격과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라는 것은 좌우익이라는 특정한 정치적 가치를 담고 있는 관념과는 달리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의 모습은 그 사회의 지배적 질서의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우리 사회내 보수와 진보의 문제를 논의하는데는 그 지배적 질서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 한국 사회내 보수와 진보의 성격이 정해질 것이므로, 보수와 진보의 내용 자체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의미있게 논의될 성질은 아닐 뿐더러 그 내용에 있어서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3. 反대한민국 세력?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의 개념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일부 자칭 보수세력들을 중심으로 종종 주장되는 것이 이른바 '反대한민국 세력' 담론이다. 정치적 논쟁구도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의 이 같은 주장은 그러나 그럴 듯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앞서 논의했다시피, 보수와 진보라는 단일 스펙트럼 축선상의 논의는 정치이념의 논의에서 그 의미는 매우 제한적이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反대한민국 세력 담론은 역시 또다른 축의 개념이 먼저 논의되고 정의되어야 존재할 수 있는 스펙트럼 상의 논의라는 점에서 같은 한계를 보인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 실체는 그 자체로 특정 정치적 이념의 적실성과 사회적 의미를 결정하는 준거가 될 수 없다는데 있다. 그것은 보수, 진보 논의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과연 어떠한 가치와 이념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개념인지에 대한 또다른 축선상의 논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反대한민국 세력'이라는 용어는 곧 그 안에 도덕적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깊게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 실체는 완벽하게 고정되고 정의된 실체가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구성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수정되며 역사적으로 살아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관념이다. 대한민국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정치경제적 지향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국가' 자체는 인간 역사에서 확고히 뿌리내린 보편적 도덕률처럼 어느 가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보편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개인의 사상과 양심, 정보의 소통과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요즘들어 부쩍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고정된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여러 역사적 방향으로 꿈틀거리는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에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중립적인 성격을 띤 '국가' 그 자체에 정치이념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 보편성을 부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보편적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도 자체는 자유민주주의 취지에 반하는 집단주의, 국가주의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 역시 가지고 있다.

 

4. 좌익과 우익- 판단 주체의 문제

 

한국 사회를 심각한 정치적 갈등으로 몰아가는 이념정향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고, 깊이있는 성찰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에는 매우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누가 판단하느냐'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척박한 이념 지형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논쟁에서 그간 지배적 위치를 점해온 우익적 시각에서 좌익이념과 그에 속한 집단과 논의를 정의내리고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치를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인간은 전지전능함에서 비롯되는 절대적 옮음과 선의 상징으로서의 '神'이 아니라는 본질적인 한계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때문에 '인간'이 개입된 모든 인문사회적 현상에 대한 논의에서는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의 주체'의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인간으로 구성된 어떤 사회적 집단이든, 인간이 완벽하거나 절대적인 정당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기에 가치판단의 문제는 그 주체와 관련하여 매우 신중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누가 좌익과 우익을 구분하고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내 우익담론에서 비롯되는 우익적 시각에서의 좌익 개념에 대한 접근 경향은 이처럼 가장 중요한 판단주체의 문제를 암묵적으로 미리 전제하는 한계가 있다.

 

인문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의에 신을 끌어들이자는 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 실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지향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음에도 사홰내 구성원들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구성되는 생명체와 같다고 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좌익과 우익을 구분하고 특정한 지배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가치판단을 내리는 문제에서 판단주체에 대한 사전적 성찰이 요구되고 그에 따라 보편적 도덕률로 재단하기엔 어려운 정치적 이념의 구분에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공존의 문제

 

이같은 좌익과 우익의 구분, 접근방식, 가치판단에 있어서의 한국 사회내 지배적인 '우익중심적' 시각은 상이한 가치의 '공존'이라는 또다른 측면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의 탄생 배경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가지는 근본 특성상 우파이념이 그 주류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이 공존하며 만들어가는 사회와 관념은 기본적으로 그 인간만큼이나 다양하다. 인간은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단일하고 몰가치적인 상품과는 달리 고유한 개성과 주체성을 가지는 존재라는 근본적인 정의에 비추어 볼 때, '다양성'은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집단이나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발전하는 근본적 토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떠한 특정한 이념적 지향이나 가치가 지나치게 지배적으로 작용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그 다양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연결되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어느 집단이든 그 안에 존재하는 가치와 이념들의 분포상의 차이는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가장 지배적인 형태의 가치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세력 분포의 차이가 곧 그 해당 가치의 도덕적인 판단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고 볼 수 없고, 한 사회집단내 지배적인 가치의 존재 역시 '단일한' 가치만의 상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앞서 논의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과 같이 전지전능함에서 오는 절대적, 보편적 판단을 100% 내릴 수 없고, 다양성의 바탕위에서 존재한다는 정의에 기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구성되고 만들어지는 모든 사회적 관념들은 역시 100% 완벽할 수 없고, 그러한 이유로 인간 세상에는 단 하나의 단일하고 절대적인 관념이 존재하지 않고 여러 다양한 목표와 철학, 배경을 지난 많은 종류의 관념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익중심적 시각에서의 일방적인 좌익개념의 상정 및 판단은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비추어봐도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 다시 한번 주장하건대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가치와 관념도 완벽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지배적 이념체계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조차도 그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다른 정치이념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수정되어 왔다.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하며 1989년 '역사의 종언'을 외쳤던 후쿠야마가 10년 후 자신의 판단에 대한 오류를 인정했듯이, 고전적 자유주의의 무분별한 질주가 세계대전이라는 퇴행적 결과로 나타났듯이, 현대판 신자유주의의 열풍이 최근의 전세계적인 경제, 금융위기로 나타났듯이, 우리가 우월하다고 믿으며 지배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이는 것들도 홀로 존재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자유민주주의에 절대적 믿음을 보였던 후쿠야마가 자신의 논의의 토대로 삼았던 헤겔류의 보편적 역사관에서도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正-反-合의 작용 속에서 궁극적인 역사의 종착점으로 '진보'에 나가는 단선적 과정이다. 이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해 낸 가장 선진적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조차도 그것과는 다른 방향성을 지닌 이념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스스로 새롭게 갱신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상호작용'은 어느 일방에 의한 다른 일방의 가치에 대한 배타적인 접근과 맹목적인 가치판단이 아닌, 서로가 가진 장점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가치에 비추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는 조금 더 상호적이고 건설적인 작용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실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의무이자 과제이다.

 

6. 결론

 

본격적인 민주화의 길에 접어든지 20여년이 흐르고, 어느덧 공고화에 접어들었다고 보는(최근 몇 년사이에 급격히 무너지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들을 보면  애석하게도 이 점은 자신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에서 급격히 거세지고 있는 정치이념간 대립은 주의 깊은 성찰과 접근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다.

 

그만큼 인간의 주관적 관념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인간의 근본적 불완전성에서 오는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전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또다른 근본적 조건인 다른 것에 대한 '관용'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군주정, 파시즘, 공산주의, 권위주의 등 다른 모든 이념들의 도전을 이겨내고 진화하여 가장 지배적인 이념의 지위에 오른 데에는 이들과 달리 상대의 존재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고 개방적 사고와 관용으로 건설적인 방향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즉 '배제와 억압'이 아닌 '관용과 표용'의 담론으로 다름에 기반한 다양성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어떤 사상과 관념이든 우선적으로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의 시장속에서 논의되고 경쟁하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본래적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갈등 자체는 그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가 될 수 있다.

 

양 날개로 날아가는 새와 두 바퀴로 가야 비로소 안정적일 수 있는 자전거처럼 자유민주주의의 본래적 취지와 가치에 좀 더 충실하는 것이 현재의 이념적 혼란 상황을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켜 더 성숙하고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해 나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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