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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겁네요.

아- |2009.10.15 04:22
조회 327 |추천 0

막상 이야기르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90년대 초,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저희 가족은 아빠 직장 때문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술 좋아하고, 담배 좋아하고, 게으른 아빠는 사촌 형이 소개해준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두 달만에 그만 두고 노느라 하는 수 없이 엄마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3년이었던 것 같아요, 이사했던 집의 집주인 아저씨 소개로 벌이가 시원찮던 재봉틀 일을 그만 두시고 저희 엄마는 식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당시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식당 일을 하는 엄마의 월수는 70만원. 아빠는 간간히 막노동을 했지만 한달에 열흘 이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있던 날이 많던 아빠는, 저와 동생이 학교에 가고, 엄마도 식당에 가면 혼자서 전축에 카세트 테이프를 돌리며 뽕짝을 자주 들었어요. 누구랑 마시는지, 돈은 어디서 났는지, 하교를 하고 나면 아빠는 항상 만취 상태로 잔소리를 늘어놨어요.

 

그 생활이 반복 되던 어느 날, 제가 중 1때 쯤.

학교를 다녀왔는데 아빠가 짐을 한가득 싸 놓았더라구요. 일자리가 생겨서 부산으로 간다더군요.

아빠가 없는 집은 천국이었습니다. 혀 꼬부라지는 아빠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정말 하기 싫었던 술·담배 심부름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때 저에게 사춘기가 찾아 왔습니다.

학교에서 말썽 부리고, 이런건 없었습니다. 다만 학교 밖에서 알게된 4살 연상의 언니와 어울리느라 집에도 안 들어가고, 학교도 잘 안 가고...

힘으로 절 제압할 수 없는 엄마는 하는 수 없이 형사인 이모부에게 도움을 부탁해 저를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려고 했죠.

저 그 때 엄청 맞았습니다. 따귀에, 걷어 차이는건 문제도 아니에요. 망치로 머리도 맞았는걸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좀 억울합니다. 아빠가 옆에 있었으면, 혀 꼬부라지는 소리라도 좋으니 옆에서 아빠의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엇나갔을까...란 생각 듭니다. 출석일수 모자라 제가 가고 싶은 학교도 못 가서 고등학교도 재수 했습니다.

 

그리고 고 1때쯤.

집으로 온갖 고지서들이 도착합니다. 보면 아빠가 부산에서 썼던 카드 대금, 핸드폰 요금 및 여러 독촉장들입니다. 돈 벌겠다고 부산에 갔으면서 돈을 쓰고 있는 거에요. 통화를 하면 알아서 갚을테니 걱정 말라, 해 놓고 다달이 고지서가 집으로 오게 만듭니다. 엄마랑 전화로 대판 싸우고 우리에게 피해 안 가겠다 하고는 호적 파갔습니다. (사실 파간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호적등본 보니까 아빠가 없더라구요.)

 

그렇게 엄마 혼자 벌어서 지난 2003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면서 서울에 온지 약 20년만에 지하집을 탈출 했어요. 작지만 처음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집에 삽니다.

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제 동생도 학교 그만두고 직장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온 가족이 버니까 부자 되는건 금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저 이직했는데 아빠가 자꾸 전화로 돈 얘기를 꺼내더라구요. 워낙 박봉이었고, 머리가 커지니 씀씀이도 커져 저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TV 앞에서 상도 없이 맨 바닥에 김치 하나로 식사할 아빠를 상상하니 도저히 모른척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10만원, 20만원, 30만원씩 보내드렸습니다. 저 결혼할때 다 돌려주겠다고 하셨지만 별로 받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올 초, 집 주인 아저씨가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해서, 적금, 보험 다 깨서 1,500 인가 올렸고, 다달이 10만원씩 월세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아빠한테 어렵게 어렵게 영상 통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영상 통화를 걸자마자 눈물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건네주고 말았습니다. 화면 속의 우리 아빠는 길 가다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할아버지였습니다. 염색해 줄 동료도 없는지 흰 머리가 덥수룩하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더라구요.

 

얼마전에 대구에 사는 막내 이모가 아파트를 샀다는 이야기에, 지금 사는 집 재계약 하지 말고 대출 받아서 더 좋은 집에 가자는 저의 말에도 이자 무서워 대출은 꿈도 못 꿨던 엄마였는데, 다시 대구로 가자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엄청 싸웠습니다. 눈물 콧물 범벅에 목소리도 잘 안 나왔는데 혼자 가시라고 계속 대들었습니다. 전 싫었어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다 이모들이랑도 친하지도 않구요. 엄마가 대구를 그리워하는 건 압니다. 정말 남편 하나 믿고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서울에 왔는데 대구에선 안 했을 고생도 하는 거니까...

 

저는 2월에 퇴사하고 재취업 전에 단기 알바 하며, 글쟁이가 되고 싶어 글 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느니 살이 쪘습니다.

어제 촐싹대며 퇴근한 엄마를 맞았더니 심각하게 앉아 보라더라구요. 괜히 쫄아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데, 제가 아빠 전화를 계속 피하니까 아빠가 하는 수 없이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가 보더군요.

제가 퇴사 하기 전에 저한테 치과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돈을 조금씩이나마 보내 드렸던 거고...

자세한 이야긴 모르지만 아빠가 치과에 가보니 임플란트다 뭐다해서 견적이 1,000만원이 나왔답니다. 아빠 능력에 가당치도 않은 돈이고, 고민 고민하면서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전화한 거 압니다. 근데요, 1,000만원. 저는 만져보지도 못한 돈입니다. '무슨 염치로 1,000만원을...' 이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해 줄 돈도 없구요.

또 눈물 콧물 범벅 되어 가며 죄없는 엄마랑 싸웠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엄마, 저, 동생. 10원 한장 보탤 능력 없는 제가 제일 화를 내고 있더군요.

미칠 것 같아요.

누구한테인지 모를 짜증도 나구요.

 

이유 모를 눈물만 흘리다가 답답한 마음에 글을 씁니다.

친구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상황을 알아줬으면 해서...

일단 쓰고나니 현실은 해결된 게 없지만, 마음은 놓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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