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비난하는 당신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자살자들이 이기적이고 비겁한 행동이라 여길 것이다. 혹은 죽은 용기로 살라는 식상한 말을 별 생각없이 내뱉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생각을 지닌 당신들을 비난하고자 한다.
당신들은 자살자들을 이기적이라 하지만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이기적이다. 당신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에 해당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 할 것을 기대한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사업가이든 무슨일을 하든 혹은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선후배로서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개인차라는 것이 있다. 당신들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역할과 관계를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어떤 이의 역할에 있어서 당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 혹은 그 어떤 이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혜택을 강조한다. 그것을 강조하면서 우울해하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타인을 위해 목숨을 연명할 것을 강조한다. 그 어떤 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을 견디는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것인지 속사정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몇마디 위로의 말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의 인생 전부과 관련이 있다. 자살자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이겨낼 수 없게 살아온 것이다. 당신들은 충분히 강하고 당신들에게 닥친 일들을 스스로 감내할 능력이 있지만 자살자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런 능력을 새로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자살자들은 극소수해 불과하다.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고통스러운 목숨을 연명할 것을 강요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라.
인터넷 포탈에 자살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라. 당신의 곁에는 우리가 있다는 메세지가 커다랗게 뜬다. 자살자들의 곁에는 누가 있을까 . 없다. 아무도 없다. 있다면 자살을 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부모형제가 있고 친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물리적인 존재일 뿐이라면 자살자들에게는 있어도 있는 게 아니다. 자살자들에게는 주변 인물들이 심리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털어놓고 이야길 한다 하더라도 그저 식상한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말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자신의 모든 일을 벗어던지고 삶의 휴식을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장기적으로 치유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혹은 당신들은 자살충동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엄살로 치부하고 자신의 삶이나 타인의 삶을 들먹이며 을러댈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슨 못난 소리를 하냐며 윽박지를 지도 모른다. 그런 언행들은 정말 몰상식한 행동이며 자살자들의 자살을 더욱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당신들은 고양이에게 호랑이의 역할을 강요하는가??? 우울증에 빠진 고양이는 호랑이와 비교당하는 자신을 더욱 비관할 것이 분명하다. 우울한 고양이가 자살하고 나서야 꽤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겠지만 그저 당신들에게는 남의 일일 뿐일 것이다. 당신들과 당신들이 들먹인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사람들은 정신력이 강한 호랑이들이기 때문이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얼마나 멍청한 말인지 아는가? 사람에게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평생을 쌓아오면서 생기는 것이다. 자살자들도 일순간에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살아 왔던 전반적인 삶 자체가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가치관이 자살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그들에게는 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고 이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당신들에게도 삶이 고통스러운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들은 평생을 잘 견뎌왔고 앞으로도 잘 견뎌 낼 것이다. 당신들은 삶에 대한 용기가 있고 그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자살자들은 삶에 대한 용기를 잃었고 그 의지가 매우 약하다. 갑자기 삶에대한 용기가 사라지거나 의지가 약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서서히 약해져 왔고 당신들은 그것을 방관했다. 자살자들이 약해지건 강해지건 그것은 당신들과는 상관 없었다. 단지 자살자들이 살아 생전에 당신들이 기대했던 역할만 잘 수행해내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것들을 당신들이 어찌 할수 는 없다. 자살자들의 나약함을 당신들이 알았다 하더라도 뭔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당신들은 없다. 단지 비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당신들은 그 뛰어난 용기로 멋진 삶을 살기 바란다. 자살자들에게는 살 용기가 죽을 용기보다 어렵다. 당신들은 이해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 심정은 자살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내가 말하는 것은 당신의 용기를 자살자들에게 빗대어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살자들의 자살은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었다. 당신들이 살아가는 용기가 당신들의 삶의 일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자살을 인정할 줄을 알아라.
혹시나 자살 기도를 했다가 실패를 한 사람들 중에 자살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를 극복해냈고 새 희망을 찾았으며 살아갈 용기를 갖췄을 것이다. 또한 당신들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자살자들에게 들먹일 것이다. 분명히 알아둬라. 그것은 당신들의 경험담이다. 자살자들의 경험담이 아니다. 자살자들도 그들의 자살이 실패한 이후 당신들처럼 새 삶을 찾을지, 아니면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지 당신들은 알 수 없다. 당신들은 자살자들의 삶을 장담해 줄 수 없다. 그들이 자살을 시도할 때 그들의 삶을 당신들이 책임져 주지 않을 생각이면 아무말도 하지 마라. 비난하지도 마라. 당신들은 비난 할 자격이 없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극복한 것이지 자살자들의 삶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 자살자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그저 비난만 하지 말아라.
당신들이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삶을 해쳐나갈 용기와 생활력과 정신력을 가졌다고 너무 잘난 척 하지는 마라. 자살자들은 그런 대단한 용기가 없어서 자살하기는 했지만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단지 당신들보다 약했던 것 뿐이고 삶을 스스로 일찍 끝냈던 것 뿐이다. 당신들의 대단한 삶들도 자살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어떤 죽음인지는 아주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들이 살아가면서 이루는 대단한 것들은 당신들이 오래오래 연명한 삶이 끝나는 순간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행복과 명예는 영원하지 않고 그저 일순간에 불과하다. 이루고 나면 죽음처럼 허무함이 밀려올 때도 많을 것이다. 그것들이 당신들이 감내하고 이겨낸 고통의 대가들이다. 결국 당신들도 자살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삶을 마칠 것이다. 그러니 자살자들의 이른 죽음을 비난하지 말라. 적어도 자살자들은 자신이 죽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전부 다 읽고난 이후에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읽지도 않고 따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무시하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이 글을 읽을 때 쯔음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공연한 헛수고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