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게 된 아이의 마음 안으로 떠나는 여행이야기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것, 아버지를 사랑했던 마음 만큼이나 ,
그 슬픔과 고통 또한 컸겠지
때문에 아이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생각,
아버지가 꼭 자신을 찾으러 돌아올 것이라는 놓을 수 없는 희망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끊임없이 좌절감만을 안겨 줄 뿐이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 치유되는 것일까.
고아원에서 만난 친구와의 관계맺음을 통해서
그럭저럭 고아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소녀
그러나 또 한 번의 좌절과 또 한 번의 이별.
마음을 꼭꼭 닫았 걸었던 소녀의 마음을 열어
이룰 수 없는 꿈과 기대만 심어 놓고,
친구는 홀로 입양되어 버린다,
늘 약속을 한 뒤에 지키지 않았던 어른들처럼.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삶보다 희망이 주어졌다가
빼앗기는 것은 더 절망스러운 경험이다.
특히 아이들은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그런 종류의 희망이
주는 의미들에 관해 알지 못하고, 익숙치도 않다.
마아 그 이별을 통해서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던
기억까지 한 꺼번에 치솟았을 것이다
늘 버려지고, 어떤 것도 지속적으로 남겨지지 않는 것만 같은
자신의 처지에 스스로도 어쩌지 못할 분노를 표출하고,
온 몸으로 시위를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현실은 비정하고 냉정하기만 하다.
소녀는 자신에게 죽음을 선언한다. 무력하다는 것은 죽음이다.
자신의 존재와 바람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는 것은 죽음이다.
소녀는 친구와 함께 돌보던 아기 새가 죽자
묻어두었던 주검을 파헤치고 자신을 스스로 묻는다.
마치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 어린 새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니 차라리 죽은 어린 새를 질투라도 하는 듯이
하지만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태어날 때부터 마치 깊숙이 입력된 듯한 살고자 하는 의지.
영화 속 다리를 저는 나이 먹을만큼 먹은 고아원 맏언니
고아성이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사랑과 자살로 돌파하고자
시도했지만 결국 모든 게 좌절 된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 처럼
소녀 또한 현실에 순응해 간다
이제 소녀 또한 입양이 결정되고,
친구들이 배웅해주는 작별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그녀가 누군가를 위해서 불러주곤 했던 그노래를
이젠 누군가들이 그녀를 위해 불러준다.
마지막으로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
고아원에 있던 내내 늘상 표정이 없던 새초롬한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지어보였던
해맑은 어린아이의 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크게 상처받지만,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으로 터득해 나간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슬픔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어른들조차 때로는 소화해내지 못해서 혼란스러운 그 감정들
지금 곳곳에서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힘들고 외로운 여행을 하고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경험의 테두리기를 벗어난 경험 앞에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우리는 모두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회복의 여정을 가고 있는 수많은 여행자들,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것과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은
함께 이루어진다
고아원 식구들과 부대끼며, 함께 마음을 열고,
다시 다치기도 하면서, 그리고 함께 웃으며,
아마도 단단히 틀어 박힌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만남뿐 아니라 헤어짐 또한
죽음이 아닌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비록 그 여행 중에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자랄 것이다.
지금은 훌륭한 감독이 되어서 자신의 상처난 기억을 통해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듯이,
모든 희망이 다 바스라사라진다 하여도,
절망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그 희망만은
언제나 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독의 담담함 속에서도 묵직한 감동이 배어나는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소녀가 아버지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당신은 모르실거야"와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면서도 깊은 어린 여배우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