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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1회

독도의병대 |2009.11.12 17:47
조회 121 |추천 0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의 발상지

- 구미 유채꽃밭 국토체험장 -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1회 )


* 문무대왕의 축복


문무대왕은 백제를 정복한 정복자였지만 당으로부터 웅진도독으로 임명 받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과 의도적으로 형제의 언약 및 상호 불가침 조약을 강요당하고, 본인은 계림 대도독으로 임명 받는 수모를 당했다.


승자와 패자가 같이 당나라의 지방 행정관 취급당하는 수모를 묵묵히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이루지 못한 고구려 통일에 당나라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신라군이 평양성을 정복하여 보장왕의 항복을 받자, 당은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두어 세 나라를 한꺼번에 식민지화 하고자 했고, 이에 문무대왕은 승리의 기약이 없는 세계적인 대제국 당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비굴한 평화보다는, 가치 있는 전쟁을 선택한 문무대왕!


동생 김인문을 중국에 인질로 두면서 당의 정보를 습득하고 일면 화해, 일면 전쟁의 양면 작전을 쓰면서 결국 당나라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왕으로서, 과거 어느 왕보다 멋있고 위용이 넘치는 왕릉을 소유할 자격이 갖추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문무대왕은 찬바람 휘몰아치는 동해바다에 자신을 던졌다.


“죽어서도 동해바다에 우뚝 서서 동해바다로 쳐들어오는 저 일본으로부터 이 나라와 사랑하는 후손을 지키겠노라고……”


문무대왕의 후손을 향한 이 엄청난 축복은 돌아가신 부왕을 기리며 동해바다에서 때때로 들어와 쉬시라고 감은사 절까지 지어드린 아들 신문왕의 지극한 효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무대왕의 그 간절한 축복은 지금도 이 민족에게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전 속에서도 한민족의 얼을 지켜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만년 역사를 지내오면서 강대국에 둘러싸인 반도 국가로서,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의 후손사랑과 나라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성경을 보면 포도주를 먹고 하의를 벗은 채 잠든 아버지 노아를 보고 형제들에게 알린 가나안은 형제들의 종이 되라는 저주를 받았고, 옷을 벗고 잠든 아버지의 허물을 덮기 위해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아버지의 아랫도리를 덮어드린 샘과 야벳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가나안의 후손 흑인은 야벳의 후손 백인의 종이 되었고 야벳은 셈의 후손 황인종이 사는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감으로써 노아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 졌다.


OECD 국가 중에서 노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


거리에 방황하는 대다수의 노인들이 후손을 축복하기보다는 저주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노인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존재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드리고 후손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 위해 만든 것이 구미 유채꽃밭 국토체험장이다.


독도의병대(www.o-dok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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