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러 가는, 그 험난한 길
언제나 믿음이 가는 배우 조재현과 듬직한 산같은 배우 박인환과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열심히 쌓아가는 윤계상이 만들어냈다는 진자한 영화 <집행자>. 이 영화는 교차상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려했던 제작진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사형제 존폐논란에 대한 평소의 관심을 차치하더라도, 구설수에 오른 영화 홍보를 겸한 윤계상의 인터뷰는 논외로 하더라도,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차일피일 관람을 미루다보니 '이러다 이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는 게 아닐까'하는 염려가 들었고, 지난 일요일 보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토요일 저녁 인터넷 예매를 서둘렀다. 평소 단골인 CGV 용산과 영등포는 물론이고, 집과 가장 가까운 씨너스 서울대며 롯데 신림까지. 그 어떤 곳에서도 놀이 좋은 일요일 점심부터 저녁까지 이 영화를 보긴 어려웠다. 결국 롯데시네마 신림의 8:50분 상영 조조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고 예매했다.
○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가 사형을 하게 된다면
영화는 현재의 우리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정확히 반영한다 함은, 12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강력범죄로 인해 극악무도한 흉악범들을 사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가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결국 그 여론에 떠밀려 사형을 집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형집행을 앞둔 교도소. 그곳에서 펼쳐지는 일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람의 마음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하겠다.
12년 전까지만해도 수도 없이 사형을 집행해왔던 사람의 번뇌와, 누군가를 사형시키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사람의 불안함. 사형수로 살아왔으면서도 사형을 당할 날을 마주하고서야 느껴지는 참담함과 과거에 대한 회한. 그 복잡 미묘한 것이 친구와의 재회 속에서, 여자친구와의 갈등 가운데, 감자탕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하는 그 마음과 함께 나타난다. '내 마음은.... 내 생각은....' 이라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지만, 영화는 그들의 고민을 곧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고민으로 바꾸어 놓는다.
○ 생명의 경중, 그 누구도 잴 수 없는 무게
교도소라는 낯선 풍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날선 대립, 피해자의 가족들이 고통을 참지 못해 자살을 하거나 복수의 칼날을 갈게 만든 가해자와의 맞대면, 사형의 집행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모두의 똑같은 바람, 그 복잡미묘한 사람들의 마음 속을 헤집는 가운데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굉장히 명료하다. 그건 '생명에 경중이 있느냐?'는 것.
누군가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피해자와, 누군가를 무참하게 살해한 살인자와, 새로 태어날 아이의 목숨 중 무엇이 더 중하고 중하지 않은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결정을 해도 되는 것일까?
(약간의 사족을 덧붙이자면, '새로 태어날 아이'는 조금은 무리한 장치라고 생각되었다. 윤계상의 공무원 준비생 애인이 아이를 가졌는데 낙태를 할까 말까 고민한다. 우리나라에서의 낙태 문제는 단순한 생명 문제라기 보다는 미혼모 지원 부족이나 아이낳아 기르기 힘든 사회, 혹은 남아선호 등의 복합적 문제와 함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 또한 밤 길 두려워지게 만들고, 여자 아이를 낳아 기르기 두려워지게 하는 요즘의 사건사고들을 접할 때면, 이해할 수 없는 그 가해자들을 마구마구 욕하게 된다. 하지만 '저런 자식은 죽여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멈칫하게 되곤 했다. '타인의 생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므로. 물론 이것은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하는 한량같은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나다.
○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봤더라면 좋았을
이렇게 현 사회 이슈에 대해 다양한 논의점을 제시하는 이 영화가 교차상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일요일 조조영화로 가서 보니, 관객은 40대 중반 한 커플과 20대 두세 커플,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혼자 보러운 2인 등 10명 남짓이었다. (왠지 확인하고 싶어서 극장을 가장 마지막에 나섰다.)
보통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이면 영화관 스태프가 와서 출구쪽 문을 열어주곤 하는데, 스태프가 타이밍을 놓쳤는지 크레딧이 거의 다 올라가도록 스태프가 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누구도 스태프를 찾으려 하거나 먼저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는 엔딩 크레딧에 시선을 고정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훌쩍이고, 누군가는 둘이 조그맣게 생각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극장의 퇴장 길은 참으로 고요했다. 열명이 보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를 뒤로하며 나왔다. 이렇게라도 열심히 리뷰를 쓰지 않으면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평소보다 더 길고도 길게 리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