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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_ 김진숙

꺄아아 |2009.12.21 13:53
조회 283 |추천 0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졌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이 소름 끼치는 살인 게임이 앞으로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LNG 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 낸 권력의 맛이 그렇게 달콤합디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붕 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 했습니까?

  21년 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 원, 세금 때면 80만 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 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가 88일을 애원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체감온도 영하 수십도 한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 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그냥 살 걸 그랬습니다. 변소에 버글거리던 구더기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 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 걸 그랬나 봅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 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이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강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 책봉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재계 순위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사장님이 재계 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한 달 수천만 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 한 달 100만원을 벌겠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 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 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어들어 오는데, 2년치 임금 7만 5,000원을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 간 그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 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 원 주던 노동자 잘라 내면 70만 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다가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명의 노동자가 골반 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죽어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 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들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 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 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 보며 일자리 구해 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 중에서

 

 

*2002년, 한진중공업에서는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65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파업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ㄱ미주익 지회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20명의 임금, 주택, 노동조합비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함으로써 생활에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이들을 사법 당국에 고소, 고발하였다. 검찰과 경찰은 10월 1일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금속노조, 지회 간부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높이 35미토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회사 측에 대화를 촉구하며 129일을 버텼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10월 17일 회사와 싸움을 계속할 것을 유서로 남긴 뒤, 재벌의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뒤이어 10월 30일 15시 50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곽재규 열사가 85호 크레인 근처의 4도크에서 투신하였다.

 

   옛날 얘기가 아니라, 내가 영도의 그 현장 근처의 학교에 들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얘기다. 그저 언저리만 맴돌 뿐인 비겁한 학생이었지만 전혀 진보적이지 않아 보이는 노무현에게 표를 던지는 선배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했다. 운동이 아니라 운동 가요만 좋아했고 책을 이것저것 읽긴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반년쯤을 수업에 들어가질 않았고 반년쯤은 동아리엘 가지 않았다.

   2003년 어느 여름날 아침, 술자리가 끝나고 쪽잠을 자고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선배들이 한진 가자, 고 했다. 일학년 때 선배들 따라 가보고 처음 가보는 거였나. 두번 다 그랬다. "인영아, 한진 가자~!" 어디 다른 동아리방 놀러 가듯이. 두번 다 나는 가장 나어린 후배였다.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 선전전에 끼여 한진 중공업 영도 사옥 앞에 서있었고 맞은 편 건물, 방 한칸에 가족들까지 모여 지내는 그 자리에서 염치없이 계란 둘러 갓구운 소세지까지 있는 아침을 얻어 먹었다. 여성과 아이부터, 다른 이부터 배려하는 그 숙소의 분위기와 정갈함, 따듯함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저 먼 하늘 아련히 손을 흔들던 분이 있었다. 아주 멀었지만 분명히 그의 미소를 보았다. 그가 김주익이라는 것을 몇 해가 지나서야 알았다. 어떤 구호를 외쳤는지 그가 왜 거기에 올랐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휴학을 하고 반년짜리 독일 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내 생일 전날 크레인에서 목을 맸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동료가 그 크레인 근처에서 투신했다.

   그가 김주익 열사인 것만 겨우 알고 있던, 그저 마음 아픈 정도였을 뿐이던 어느 날, 또(?) 선배들을 따라 저녁 일곱시쯤, 추운 강의실에 강연을 들으러 갔다. 강의실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강연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주노총, 이라는 낱말의 어감은 내게 무언가 낯설었고 불편했다. 허나 강연이 시작되고 나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노동해방'의 의미를 깨달아서(지금도 잘 모른다)도 아니고, 그간의 삶을 절절이 부끄러워해서도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강연 제목이나 이야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데도 그랬다. 사람이 저렇게 살 수 있는가 싶었다. 아픈 이야기를 미소지으면서 찬찬히 이어가는 그 분의 모습에 이상하게 내가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는 우연히(늘 우연히 혹은 그저 따라서) 내가 선배들을 따라갔던, 몇번 되지 않는 모든 집회에서 피맺힌 호소를 하던 그이였다. 빨간 띠와 높은 목소리로 선동적인 게 아니라, 정말 영혼을 건드리던 그의 강연을 들으며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참았던 건 감히 내가 울 자격이 있는가, 싶어서 였던 것 같다. 허나 그뿐, 나는 오래오래 그가 던져준 울림을 잊고 살았다. 학교 다니며 아침마다 저녁마다 한진중공업을 지나면서 그 스물한 살 여름날을 떠올렸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서울에 올라온지 일년 되는 날, 고려대에 강연을 들으러 갔다 표지에 그의 얼굴이 실린 걸 보고 반색하여 책을 집어 들었다. 작은책의 강연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그도 한진중공업의 노동자였음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었다. 그와 싸움을 시작했던 두 명의 동지는 20년만에 복직되었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반대로 그는 아직도 해고자다. 책의 글자 글자 하나를 쳐서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거나, 이만하면 살기 좋아졌다거나, 그런 일이 아직도 일어날리가 없다는, 그런 우리의 한마디로 인해 세상은 바뀌지 않고, 살기 좋아지지 않고, 그런 일은 아직도 일어난다. 감히 그의 책을 읽었다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강연을, 그의 책을 한번쯤은 듣고 읽었으면 한다. 참사람 김진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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