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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부르는 사업초기의 과잉투자

윤화숙 |2010.01.24 14:04
조회 321 |추천 0

 

  

  1990년대 중반, 뉴욕 소재 선물중개사를 통해서 미리 확보해둔 선물 계정을 근거로, 한국서 시행한 한 곡물도입 국제입찰에 응찰하여 낙찰되었다. 신용장(L/C)을 뉴욕 소재 주거래은행에 양도하여 리보 플러스 0.45%의 유리한 융자조건으로, 구매자금을 확보함과 동시에 'ZGC(Zen Noh Grain Cooperation)' 사와 베이시스 가격(Basis Price)으로, 우리 선물과 ZGC사 현물을 맞교환(Versus Trade)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회사로 찾아온 바이어 측 검사원과 함께, 선적 곡물의 품질 확인을 위해, 일리노이에서 루이지애나로 날아갔다.


  뉴올리언스가 위치한 미시시피 강 하구에서 상류 쪽으로, 164마일 정도 떨어진 세인트 제임스에는 120 에이커의 땅에다 미화 6,700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ZGC가 지은 거대한 규모의 터미널 엘리베이터가 있다. 높이가 40m나 되는 빈이 무려 60여 개나 늘어선 이곳에서 저장할 수 있는 곡물의 총량은 10만 톤에 달한다. 또, 필요시에는 유전자조작 곡물(GMO)을 자동으로 선별해 낼 수 있으며 누가 생산하고 수집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력추적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일본전농(日本全農)의 현지법인인 ZGC는 미국 중서부를 포괄하는 대평원(Great Plains)의 곡물을 일본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1979년에 설립되었다. 옥수수의 경우, 현재 일본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양의 약 30%에 상당하는 물량을 이 회사가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그 비중은 막강하다. 1988년에는 이토츠상사(伊藤忠商社)와 합작으로, 곡물을 생산지에서 수출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현지법인 CGB까지 인수했다. 이로써 ZGC는 현재, 미시시피 곡물유통의 17%를 장악함으로써 마침내, 미국 내 6대 곡물 메이저로 부상했다. 혹여, 국제곡물유통업에라도 진출해 볼까 해서, 선진지 견학이랍시고, 이러한 현장을 한번 돌아본 사람이라면 거의가, 그 거대한 규모의 시설 인프라에 질려, 금방 주눅이 들고 만다. 그만큼 동종업계 선발업체들의 시설 인프라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국제곡물유통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와 같이, 완벽한 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국내 대다수 관계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필자의 체험적 견해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하고 자금조달에 제약을 가진 후발업체가 사업 초기부터 그처럼 무리하게, 시설투자의 부담을 안고 가기보다는 차라리, 아주 가볍게 출발하기를 권하고 싶다. 혹자는 1960년대, 일본계 기업들이 물류 인프라 부족으로 국제곡물유통 사업에서 고전을 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 필요성을 강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현재, 그 분야의 추가수요가 크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생산지 농가들이나 컨트리 엘리베이터, 서브터미널 엘리베이터, 터미널 엘리베이터 등에 설치된 곡물보관용 저장창고는 시설수요를 충분히 능가하는 상태이고, 내륙수운을 담당하고 있는 제 시설 역시, 그 서비스 요금이 경매시장에 상장될 정도로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 수출항의 선적용 시설들도 한산하다 할 정도로 여유 있게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후발업체가 그러한 수급의 원칙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시설투자를 한다면 설혹, 곡물거래에서 상당한 이익을 남긴다 할지라도 시설운용 부문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어 결과적으로, 목적사업에서 큰 결손을 내고 말 것이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어떤 절대적인 규격을 기준으로 해서 농산물의 등급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해에 생산된 곡물의 평균적인 품질 즉, 중등평균품질(FAQ; Fair Average Quality)을 근간으로 하여 거의 모든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수집, 운송, 보관, 선적의 각 과정에서 수없는 혼합 조작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FAQ에 근접하는 품질로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Non_GMO와 같은 특수곡물(Specialty Grain)이라면 또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일반 상업용 곡물(Commercial Grain)은 거래 단계에서 굳이, 내 것 네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고, 내 물건을 내 창고에 보관하고 내가 직접 운송할 필요성이 거의 없다. 또, 선물과 현물을 맞교환할 수 있는 Versus Trade 방식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업초기부터 현물을 직접 구매. 조작하려는 발상은 실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라 하겠다. 곡물이나 시설의 주인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그냥,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곡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시설 인프라를 구비하려 고집한다면 미국 현지보다는 차라리, 국내의 보세구역이나 시설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제삼국가에 먼저 투자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과거 일본이 미국 내에 ZGC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곡물구매 방식을 C&F에서 FOB로 바꾸고, 수입곡물의 하역. 저장을 위한 곡물전용 부두와 터미널 엘리베이터 시설을 일본 내에서부터 먼저 건설하기 시작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시설 인프라 역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할 뿐이다. 즉, 수요가 공급을 부를 때, 그러한 시설투자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자기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체시설을 구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후발업체는 시설 인프라의 확충에 앞서, 목적사업과 관련된 제반 소프트웨어 구비와 인적 자원 확보에 더 많은 투자와 관심과 기울여야 한다. ZGC는 오래 전에 일본전농(日本全農)이 전액출자를 해서 설립한 미국 현지법인임에도 아직까지, 그 회사에서 일본인은 재무담당 부사장(CFO)을 포함하여 불과, 10 명 미만이다. 사장(CEO)를 비롯한 나머지 임직원은 모두 현지인들인 것이다. 일본계 기업들이 NGC를 설립하기 훨씬 이전부터 미국 내 국제곡물유통업에 진출하여 거의 반세기에 걸쳐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지인들의 손에 경영과 조작을 내맡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편이 아직도, 자기들이 직접 경영을 하기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국제곡물유통 사업을 완벽하게 영위하기에는 아직도, 역량축적이나 인맥구축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사업이란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워나가야 하는 법이다. 또, 목적사업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기에 앞서, 사업초기의 불필요한 투자나 낭비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첩경이다. 국제곡물유통업의 바람직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처럼, 섣부른 사업초기 시설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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