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이들이 너무좋다.
그래서 나중에 커서 아이를 낳으면
내 아이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차서 숨이 멎을것 같다는게
'지금' 내 생각이다. 늘 생각은 바뀌고. 그래서 변화의 여지를 두는게 현명하니까.
적어도 지금은-
내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고
교육을 제공하고
더 나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돕고
내가 겪었던 과오를 피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일들이 가치있게만 생각된다.
하지만
일정부분 과잉공급된 사랑은 간섭으로 변질될 것이고
내가 그랬듯이
내 아이들도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하고
그렇게 나와의 다툼이 시작되겠지.
또는
상대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받는 사람입장에선 절대 욕구충족이 되지 않는 다는 것.
이건 정말 두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나는 다 줬는데
너는 부족하다.
더 달라
나는 이게 한계다.
이렇게 우리는 일생을 struggle한다. 나를 채우기 위해.
너로,
너의 사랑으로,
너의 이해로,
실로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이해받기위해 사랑한다는 말이 더 정수 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몇시에 일어날지, 무슨옷을 입을지,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수많은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선택하고 또 선택한다.
이렇듯 우리 인생이 미미한 선택에서부터 큰 임팩트를 지닌 선택에까지
끊임없는 선택에의 결과물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자기만의 합당한 논리를 단순히 '이해받기위해'
써내려 간다.
선택의 결과 아래 수많은 주석을 단다.
여자들이 수다를 더 많이 떠는 이유는 어떠한 결과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해받기 위함임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비밀을 털어놓거나 상황을 열거함만으로도 안도감을 얻고 홀가분해한다.
나는 얼마나 너를 이해할 수 있나
나는 얼마나 이해받을 수 있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해 받을 수 없다는건
세상에 나는 홀로 쓸쓸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깨닫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렵고, 분노하고, 더 이해해달라 손톱을 치켜 세우고 상대를 할퀴기 시작한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이해받지못하면 관계는 끝이라고 선언해 버리고 돌아서고 다시 나를 이해해줄 누군가를 찾아서
철저하게 외로운 항해를 시작한다.
나를 낳은 내 부모조차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른 배에서 태어난 완전한 타인에게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행동은
절대적인 오만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선망받는 이유는
그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우리는 단 한명에게라도 이해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데 그들은 수백명 수천명이
그들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사실 이것만큼 부러운 것은 없다.
관심받고 그들의 기분이나 선택들이 주목받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극명해지고 살아갈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심지어 우리가 싸이를 하는 이유도,
싸이가 정말 time consuming적이고 백프로 보여지가 위한 공간임을 알면서도
타인을 의식하면서 글을쓰고 사진을 올리고 음악을 선택하고
보여지는 나를 만드는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을 얻기위해서 라는 것.
이해받기 위해서 라는 것.
조금은 이해받지 못해도
조금은 내 삶이 너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라도
이해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직은 서툴고 힘들어도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되고,
나는 56억명이 얽혀서 살아가는 이 거대한 타원형의 집합체 중 지극히 작은 일부일뿐
그 이상도, 그이하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것을
인지하고
또 인지하고
까먹지 않기위해 늘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