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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스파냐 내전, 그리고..

좌익 공화국 정부군과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 반란군이 서로 총을 겨누었죠.

그리고 프랑코 장군은 이겼습니다.

이로써 그는 에스파냐의 독재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 놈이 프랑코 장군)

 

 

 

1936년부터 1939년,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피를 보았습니다. 많은 공산주의자와 좌익 세력들이 에스파냐를 돕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공화국 정부군은 이런 지원세력이 있었음에도 패배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프랑코 장군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칭찬할 것이 단 하나있다면, 그는 이러한 지원에도 제 2차 세계대전에 중립을 지켰다는 겁니다.) 이 내전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연습이기도 했습니다. 지원받은 무기이나 전술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게르니카에서 민간인이 무차별 폭격으로 사망한 것을 보고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그렸고, 헤밍웨이는 이 내전에 참전 경험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습니다. ) 때문에 에스파냐는 프랑코 장군의 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치적 박해와 경제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나게 됩니다. (이제서야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크 장군을 추모하는 파시스트들의 시위 .사진출처. http://news.nate.com/view/20091122n02844)

 

 

 

에스파냐의 대표적인 두 도시는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입니다. 이 두 지역의 감정은 프랑코 장군이 오기 전부터 매우 안좋았습니다. 그들 도시가 가진 역사가 달랐고, 언어 또한 다랐습니다. 이에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의 서로 경쟁 의식은 매우 강합니다. 프랑코 장군은 카스티야를 중심으로 한 독재를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코 장군의 횡포에 분노한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반란의 기운이 멤돌았습니다.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독립을 원했습니다. 왜냐면 프랑코 장군이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카스티야와의 지역 감정이 더욱 더 악화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존재하던 지역감정을 강조하고 싶네요.) 하지만 프랑코 장군이 이를 가만둘리가 없었습니다.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을 괴롭히고 끊임없이 억압했습니다. 프랑코 장군은 1975년 죽을 때까지, 에스파냐의 파시스트 독재자로 군림합니다. 사망자수가 100만명에 가까웠던 이 내전이 바로, 에스파냐 내전입니다.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지금의 스페인인, 에스파냐에서는 대표적인 놀이가 있었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였습니다.

 프랑코 장군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여 카스티야,

즉 지금의 '마드리드'를 연고지로 둔 팀을 후원하였습니다.

이 팀은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이에 맞서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프랑코 장군에 맞설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라는 스포츠로 프랑코 장군을 꺾어야했습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그들의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인 'FC 바르셀로나'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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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공차기가 아니란 것을 이제야 아시겠죠?

 

 

 

 

 

 

엘 클라시코 더비.

 

4/12일(월) 레알 마드리드 : FC 바르셀로나

 

 

이 두팀의 치열한 승부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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