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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 마아!~

천둥번개 |2010.04.25 23:06
조회 1,710 |추천 6

나 어릴적 살던 동네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릉동이였습니다.

일명 청수장이라 불리기도 했었죠.
당시에 최대 인기 여배우 김지미 저택이 코 앞에 있던 산속 조용한 동네였고...

봄이면 상춘객들,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언제나 부산스럽던 동네였습니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너나 할것없이 모두가 꼬깔집을 짓고 살았던 시절입니다.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선, 동네 공동수돗가에서 줄을 한두어시간 서서 기다렸다가
물초롱으로 짊어져 날라, 부엌 한켠에 있는 물 항아리에 저장해 먹곤 했었죠.

공동수돗가에서 물지게를 걸머지고 일어서려면,
채 자라지 못한 키때문에 물초롱이 언제나 바닥에 질질 끌렸습니다.  해서...

물지게 끈이 얄팍한 가슴팍을 엇 지나치도록 엑스짜로 메어야만 겨우 물지게를

짊어질수 있었습니다.  한 겨울이 깊어가도,  어김없이 물지게를 걸머메야

식수 해결을 했답니다.

 

여름보담, 겨울이 좋았습니다.  동네 어귀로 들어서는 언덕길 양편에는 물초롱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은 얼고 또, 얼어 마치 자동차가 지나간 바퀴모양으로 나란히 나란히

봉긋하게 얼음판을 만들곤 했었죠.  우리들에겐 아주 휼륭한 놀이터였습니다.
칼날이 밖혀있는 외발짜리 썰매위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달려 미끄러질때면

조금전 물지게를 지고 눈물을 찔찔 짜며 올라서던 고통을 까마득히 잊곤 했었습니다.


내 어릴적 정릉, 청수장 동네의 매력은 이것뿐이 아니였습니다.
유난히 큰 바위돌이 많았었고, 노송이라 불릴만큼 장대한 조선소나무가 빽빽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산비탈에서 큰 바위를 뛰어넘고, 소나무의 가지 사이를

건너다니며 자라다 보니 중년이 넘은 요즘도 산타기같은 등산에는 20대 못지않게

자신 있으며, 타잔이라는 닉네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하셨습니다.
동대문에 있는 광장시장에서 미군들의 구제품을 대량 구입해, 동양인 체격에 맞춰

밤새워 수선하고 아침이면, 청수장에 내려가 깨끗히 빨래를 한 후, 다림질로 마무리해

전국 어느 장이든 쫓아다니며, 좌판을 벌이는 보따리 장사를 하셨습니다.
어쩌다 먼곳으로 보따리 장사 가실때면 해가 서산넘어로 넘어간지 한참이 되어도...

사방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둠이 밀려와도... 돌아 오시지를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쳐버린 나와 누나는 꼬깔집 바로 위에있던 탱크바위에 올라서

버스종점이 보이는 청수장 아랫쪽 부자마을을 한 없이 내려다 보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전기불빛만 겨우 가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둑한 밤중인데도 부자들이 살고 있었던 종점동네의 전깃불빛은

너무나 선명 했었습니다. 내 꼬깔집에는 호야가 끼워져 있는 남폿불이였기에 하루라도

게으름 피워 호야를 닦아놓지 않으면...

호야의 목부위에 새까만 그을림이 끼어 집안은 더욱더 음침하기만 했었습니다.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가기까지 엄마가 돌아오시지 않으면, 언제나 나만 부리던

내 누나는 자발적으로 호야를 세숫대야에 이리저리 굴리며 닦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나보다 겁이 많았던 누나는 어둠속에 숨어있던 무서움이 달려들기 전에

부산하게 손을 놀리곤 했었나 봅니다.

그러다... 세숫대야 속에서 호야가 산산조각나 누나의 그 작은 고사리 같은 손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질때,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리곤 했었습니다.

손을 베어 피를 흘리던 누나는 상처로 인한 아픔보다는 호야를 또 깨뜨리고 말았다는

두려움에 덩달아 울곤 했었습니다.
남포불을 켤 수 없을때, 우리 남매는 어둑한 집을 뛰쳐나와서 탱크바위 위에 나란히

웅크리고 앉아, 겁에질린 눈망울은 전깃불이 빛나고 있는 종점동네에서 떠나질

못했습니다.

또, 한대의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 종점으로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동차가

토~해내는 해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감 잡을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 버스에는 분명히 엄마가 타고 있을꺼야...  지치지 않고 누나는 나를

달래주곤 했습니다.

등짝과 뒷통수에서 스믈거리는 무서움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 남매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까치발을 떼고

저~어 아래 종점을 향해 목청껏 소리를...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엄~마아!~~~ 어~엄~마아!~~~ ~~~ ~~~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고 집채만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나가셨던 엄마는

훨씬 작아진 보따리를 여전히 머리위에 이고, 지쳐서 눈이 꽹한 모습으로 손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호떡 다섯개를 고이 들고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엄마의 머리위에 얹혀있던 쇳덩어리 보다 무거워 보이던 보따리 보다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호떡을 먼저 받아들고 했었다니...

옷핀이 줄줄이 꿰어있는 국방색 돈주머니를 방 한가운데 풀어놓고, 담배냄새가 잔뜩

베어있는 종이돈을 셀 때,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것 같았습니다.

엄마 : 내일은 엄마가 우리 동우기 검정운동화 사주마... 

 나   : 우와와!~ 신난당... 방구둘이 꺼져라 나는 폴짝였습니다.
누나 : 엄마 나는...히히힝~~~ (누나도 샘이 나나 봅니다.)
엄마 : 그래 우리 혜정이는 빨간 책가방 사주마...

누나 : 야홋!~ 신난당... (폴짝폴짝!~~~)

언제나 누나에게 친척 형님이 쓰던 남학생용 책가방을 얻어다 주곤 했던것이

엄마 마음 한켠에 늘!~  걸렸었나 봅니다.

그렇게 그렇게 내 어린시절의 밤은 깊어갔고, 산새들 우짖는 산속동네 아침은

밝아오곤 했었답니다.

그랬던 내 엄마 하늘나라로 소천하신지 오늘로 정확히 6개월 됐습니다.

근 12년간 거동 못하신 채, 휠체어에 의지하며, 고달픈 생을 버텨오셨던 내 엄마!~

평생 악착같이 우리 남매만 위해 헌신하셨던 내 엄마는 하늘나라로 소천 하셨습니다.


병원 외래 진료일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를 자동차에서 안아 내리고,

안아 태우는 이 아들을 바라보며, 깃털처럼 가벼워지신 어머니...

그 엄마는  내 등뒤에서 늘!~   말씀 하셨습니다.
여보게!~ 내, 자네에게 항상 고통을 안겨 주는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어머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 마십시요...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따라서 죽을 각오가 되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 어깨가 더 무거워집니다. 편히 업히십시요... 어머니

내 아들은 우리 모자간의 나누는 이야기를 옆에서 묵묵히 듣곤 했었습니다.
언젠가 가파른 계단을 오를때 한결 힘이 솟았습니다.
내 아들 성구기가 뒤에서 할머니의 엉덩이를 받친 체, 땀을 뻘뻘 흘리며,

밀고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엄마 사랑하는 내 엄마  하늘나라에선 자유롭게 걷고, 뛰고 하십시요...

추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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