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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이 현대영화에 물려준 것들

전민배 |2010.05.30 23:16
조회 589 |추천 2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이 현대영화에 물려준 것들>

1980년 1월 앨프리드 조셉 히치콕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3세에게 작위를 받았다. 히치콕은 매우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열린 축하연에 참석했다. 한 기자가 이런 명예를 받는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히치콕은 특유의 머뭇거리는 태도로 대답했다. “아마도 부주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은 그의 영화가 누린 엄청난 대중성 때문에 종종 부주의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히치콕은 특유의 능청으로 비평가와 관객을 골려줬다.

히치콕의 그 유명한 장난기는 무수한 일화를 남겼다. 종종 히치콕은 영화 안에서도 자신의 장난기를 시험했다. 히치콕이 오랜만에 고향인 런던으로 돌아와 연출한 말년의 흥행작 <프렌지>는 여성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묘사한 스릴러였다. 히치콕은 예고편에 출연했다. 감자포대를 실은 트럭 뒤칸에 넥타이로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가 실려 있다. 차가 흔들리면서 여인의 맨몸이 드러날 때 별안간 뚱뚱하고 퉁명스러운 얼굴의 히치콕 감독이 화면에 나타나 관객을 보고 말을 건넨다. “이런, 저 여자는 내 넥타이를 매고 있어요. 이 넥타이는 내 것이란 말이오.” 히치콕은 발가벗겨 살해당한 여자의 목에서 넥타이를 풀어 태연히 자신의 셔츠에 다시 맨다.

일상의 공포로 관객을 들쑤시다

무섭거나 긴장감을 주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 자신은 늘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던 서스펜스 영화의 대명사 앨프리드 히치콕. 올해는 히치콕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추모할 것도 없는 것이, 그는 20세기 대중에게 가장 널리 얼굴이 알려진 그리고 지금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사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새>와 같은 히치콕의 대표작들은 끊임없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고, 히치콕 영화에 대한 논문의 제목을 모아놓은 책이 따로 발간될 정도로 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생전의 히치콕은 “나는 월트 디즈니를 부러워했답니다. 그는 오로지 카툰만 그리지 않아요? 만약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릴 수도 있고 말입니다”고 말했지만 그는 영화현장에서 배우를 비롯한 스탭들을 좌지우지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을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히치콕은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데 명수였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선 케리 그랜트가 연기하는 주인공 손힐이 아무도 없는 광활한 옥수수밭에서 살충제를 뿌리는 경비행기의 습격을 받았고, <사이코>에선 여주인공 마리온이 목욕탕에서 샤워를 즐기다가 칼로 난자당한다. 히치콕 영화는 사람들로 붐비는 광장에서의 살인을 즐겨 묘사하며 그와 똑같은 비중으로 가장 안전하고 사적인 장소인 목욕탕이나 거실에서의 살인묘사도 곧잘 끼워넣었다. 광장 공포증과 폐소공포증을 오가며 히치콕 영화의 사건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장소에서, 당사자 이외엔 아무도 믿지 않는 불가해한 사건이 악몽처럼 벌어진다. <새>의 여주인공 멜라니는 학교에서 새떼가 아이들을 습격한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히치콕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정말 무섭다. 그는 공포는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편안하고 일상적인 세계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살인은 어두운 거리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것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내가 신데렐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사륜마차에서 시체가 발견되도록 할 거예요. 그렇게 했는데도 관객에게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주지 못하면 내가 오히려 실망할걸요.”

히치콕은 훌륭한 이야기꾼이었지만 플롯에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관객으로부터 심층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방식이었다. 프랑스 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는 사람들에게 자기만족의 기쁨을 준다. 그것은 사회적 의무감과 도덕성을 거부해서 얻어지는 일종의 배반, 도피, 고독 등에서 오는 만족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히치콕은 심술궂게도 관객의 그런 기대를 배반했다. 그는 관객이 동정이나 연민을 품게끔 주인공들을 일단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위장시켜 놓은 뒤 나중에 그런 기대를 가볍게 좌절시키는 수법을 쓰곤 한다. 피닉스시의 전경을 훑다가 호텔방으로 카메라가 이동해 들어가는 <사이코>의 첫 장면과 늪에 은닉된 마리온의 차가 기중기로 들려 올려지는 마지막 장면, 어두운 심연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같은 처음과 끝의 대비는 곧 관객을 인간 본성의 밑바닥으로 안내했다가 풀어주는 임상심리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관객은 처음에 사장의 돈을 훔친 여주인공 마리온의 행위에 연민을 품었다가 영화 중반에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대목에서 충격을 받고, 마리온을 죽인 노먼 베이츠를 동정했다가 그의 사악한 또다른 얼터 에고의 실체를 보고는 망연자실한다.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교묘하게 건드리는 <이창>에서 히치콕은 건너편 아파트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진작가 제프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관객은 기꺼이 제프리의 엿보기에 동참하면서 샛꾼의 자리를 즐기지만 제프리가 망원렌즈로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도덕적 책임감을 느낄 때 낄낄거리던 관객도 어느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프리가 두발 다 깁스를 하고 창문으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것은 남의 삶을 엿본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도덕적 책임을 요구받는 것인지를 능청스럽게 꼬집는 히치콕의 유머였다.

몽타주와 카메라워크, 미학적 경지

관객과 영화의 역동적인 관계, 낄낄거림에서 황당함으로 바뀌는 심리 메커니즘을 파고들면서도 히치콕은 그런 주제를 구구절절이 설교하지 않는다. 히치콕이 생전의 인터뷰에서 늘 자랑스럽게 말했던 ‘순수영화’라는 말은 영화의 고전적 어휘를 완성한 히치콕 영화의 정체를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영국의 비평가 빅터 퍼킨스는 히치콕 영화가 ‘프세볼로트 푸도프킨(에이젠슈테인과 함께 영화의 편집 원리를 확립한 러시아의 몽타주 학파 감독)의 몽타주와 프리드리히 무르나우(독일 표현주시대에 선구적인 카메라 이동 미학을 개척한 감독)의 카메라 움직임을 완벽히 결합’한 예로 꼽았다. <이창>은 한 세트에서 찍었지만 구성이 무척 정교하다. 편집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히치콕은 이 영화에서 ‘A라는 화면이 B라는 화면과 결합되면 AB라는 화면이 만들어진다’는 푸도프킨의 유명한 몽타주 공식을 시범적으로 보여줬다. 건너편 아파트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제프리를 보여준 화면 다음에(A), 반쯤 벗어던진 젊은 여자가 체조하는 모습을 이어붙이고(B), 다시 웃고 있는 제프리의 모습을 보여주면(AB) 제프리는 중년의 음탕한 사내로 관객에게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정원에서 뛰노는 강아지 다음에 제프리의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면 그는 중년의 인자한 신사로 비칠 것이다. 히치콕식의 순수영화 개념은 편집뿐만 아니라 화면구성의 원리에도 이어져 <사이코>와 같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평과 수직 이미지가 충돌하는 시각적 대립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대영화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장면인 목욕탕 살해장면은 수직으로 내려치는 노먼의 칼과 수평으로 흐느적거리는 마리온의 팔을 대비시켜서 맺음할 때까지 약 45초 동안 70회 이상 변하는 카메라 각도로 격렬한 충격을 전해준다.

현대영화에 넓게 드리운 그림자

영화학자 마크 랭거는 “히치콕의 영향은 현대영화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이코> <이창> <39계단> <다이알 M을 돌려라> <열차 위의 이방인> 등 히치콕 영화만큼 자주 많이 리메이크된 영화들도 없다. ‘히치콕 이후’ 현대영화에서 관음증, 맥거핀, 광장 공포증 등 히치콕적 특징은 상식이 됐다. 히치콕은 서스펜스 스릴러뿐만 아니라 필름누아르, 공포영화 장르에서도 태두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히치콕은 명암대조가 심한 조명을 선호하는 필름누아르 장르가 할리우드에 뿌리내리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히치콕의 영향력은 로만 폴란스키, 쿠엔틴 타란티노, 심지어 최근의 <매트릭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랭거는 평했다. 78년작 <할로윈>으로 시작된 난도질 공포영화는 노먼 베이츠가 샤워기 꼭지 아래서 마리온을 무참하게 난도질하는 그 유명한 <사이코>의 목욕탕 살인장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히치콕과 동시대 감독들 가운데 히치콕의 무성영화에서 스틸기사로 일했던 영국 감독 마이클 파웰은 스스로 ‘아주 독창적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도깨비 같은 감독’이라고 평했던 히치콕 선배의 스타일을 모방했으며 <엿보는 톰>을 말년의 걸작으로 남겼다. 프랑스 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조는 서스펜스 장르를 통해 히치콕과 경쟁하려 무진 애를 쓰는 가운데 <공포의 보수> <디아볼릭> 같은 걸작을 남겼다. 촬영감독 출신인 영국 감독 니콜라스 뢰그는 <지금 보지 마라>에서 히치콕의 <레베카>와 <새>를 절충한 것 같은 현대적인 스릴러 영화로 감독의 입지를 굳혔다. 평생 히치콕을 존경해 히치콕과 나눈 인터뷰를 책으로 묶어 펴낸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피아니스트를 쏴라> <상복을 입은 신부> 등의 영화에서 히치콕 영화기법에 존경을 바쳤다.

거장에게 경배를! 거장을 베낀 거장들

히치콕은 동시대의 영화감독들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아예 히치콕 영화를 그대로 모사하는 <강박관념> <드레스 투 킬> <보디 더블>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드 팔마의 초기 대표작인 <강박관념>은 <현기증>에서 주제를 빌려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받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다른 여인에게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의 이미지를 투사하려는 헛된 시도를 되풀이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강박관념>은 죽은 어머니와 똑같이 닮은 딸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근친상간의 테마를 다룬다. 드 팔마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강박적인 욕망의 파멸을 다룬 이 영화에서 동일한 테마를 다르게 변주하는 지휘자의 입장으로 자신을 변명했다. ‘히치콕 이후’에 서스펜스 스릴러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이것은 때로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드 팔마의 작품은 암시한다. 프랑수아 트뤼포와 동세대 감독이었으며 젊은 시절에 히치콕 연구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클로드 샤브롤 역시 히치콕에 존경을 바치는 스릴러 영화만을 평생 동안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인 <도살자>는 히치콕의 <의혹의 그림자>와 <기차 위의 이방인>을 합친 것 같은 걸작이며 샤브롤 스스로 히치콕 영화의 본질이라고 파악했던 등장인물들간의 ‘죄의 교환’이라는 주제를 깊숙이 탐구한 작품이었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는 히치콕의 그림자를 거둬내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됐지만, 스릴러 장르 바깥에서도 히치콕적인 기교를 추구한 예는 흔하게 널려있다. 히치콕이 처음 개발한 영화어휘는 훗날 모두 관용구가 됐다. <현기증>에서 주인공 스코티의 고소공포증을 표현하기 위해 줌렌즈와 트랙이동을 결합시킨 줌 앤 트랙의 카메라 기교를 선보인 후, 스필버그는 <죠스>에서 브로디 서장이 해변가에서 상어를 처음 목격할 때 그의 심리적 효과를 암시하기 위해 이 기법을 썼다. 마틴 스콜세지는 히치콕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던 버나드 허만에게 사정을 해 <택시 드라이버>의 음악을 맡겼으며 이 영화는 <사이코>풍의 음산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주인공 트래비스의 눈에 비친 뉴욕 시내를 히치콕풍의 주관적 시점으로 묘사하면서 긴장감을 풍겼다. 히치콕의 영향은 다양하게 뻗어 있지만 국가와 세대간의 경계를 불문하고 그 흔적은 동일선상에 있다. <할로윈>에서 <유주얼 서스펙트>, 그리고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르기까지 히치콕의 그림자는 광대하다.

히치콕 미학의 대변자였던 평론가 로빈 우드는 히치콕이 ‘현대의 셰익스피어’이며 <현기증> <사이코> <새> 등은 20세기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히치콕 영화에는 종종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대사없이 영상만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현기증>에서 스코티가 마들레인을 추적하는 15분간, <사이코>에서 마리온이 피닉스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거쳐 베이츠 모텔에 들어서기까지 관객의 조바심을 자아내는 장면, <마니>에서 마니가 사무실을 터는 장면 등에서 이미지만으로 관객의 심리를 조종하는 히치콕의 솜씨는 약이 오를 만큼 능수능란하다. 로빈 우드는 말로는 환원불가능한, 이미지만으로 정서와 의미를 전달하는 히치콕의 스타일이 영화언어의 정체성에 가장 걸맞은 어휘를 창조한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아울러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도덕적 시련에 빠진 20세기의 인류에게 히치콕의 정교한 서스펜스 스릴러는 냉전시대의 가부장제 체제를 거꾸로 반영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했다.

히치콕 영화는 처음에는 그의 스타일의 독창성에 주목한 작가주의자들에게 찬양받았으며, 도덕적 진공상태에 빠진 현대적 삶의 조건을 서스펜스 장르의 틀을 빌려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그의 작품세계 역시 전통적인 휴머니스트 입장을 취한 비평가들의 옹호를 받았다. 70년대부터는 히치콕 영화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가학적이고 맹목적인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페미니즘 진영의 거센 공격이 있었다. 어떤 입장에 서든 히치콕 영화는 얘깃거리가 풍부한 대상이었다.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자주 ‘재미있는 영화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완벽한 시청각적 균형을 갖춘 그의 영화로 사람들이 허둥대는 것에 고소해했을 것이다.

어둠 속의 정신세계를 햇빛 아래로

히치콕은 직관적으로 대중이 좋아할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만들었지만 ‘사물은 겉모양과는 늘 다르다’는 것을 웅변하는, 상식과 관습을 깨는 작품세계를 추구했다. <39계단>에서 존경받는 시민은 스파이 조직의 우두머리로 밝혀지고 <파괴 공작원>에선 평화운동의 리더가 나치의 공작원으로 판명된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주인공 손힐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절박한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누명을 벗으려 애쓴다. <사이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알게 될거야. 내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지. 이렇게 말하겠지. 어,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잖아”라는 노먼의 독백이 흐르는 화면 위로 승리감에 도취해 광기로 번뜩이는 눈으로 관객을 쳐다보는 노먼의 얼굴에서 관객은 ‘사물의 외양과 본질은 다르다’는 히치콕의 생각에 얼마나 깊은 비극적 통찰이 감춰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히치콕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밝은 햇빛 아래 드러내고 관음증과 살해와 강박관념과 죄의식으로 얼룩진 어두운 세계를 서스펜스 영화의 경쾌한 스타일로 뚫고 나갔던 아이러니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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