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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아가나아 |2010.06.15 13:30
조회 3,427 |추천 1

세살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나는 우리 땅 한평도 없이 소작농으로 살고 있는 시골 할머니한테 맡겨졌다.

세 살 이후로는 학교에서 찍은 소풍이나 운동회 단체사진 말고

어릴 적 추억으로 남길 사진이 없다.

찍어줄 사람이 없었으니깐.

 

아빠가 한번씩 시골에 내려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면

펑펑 울면서 버스를 뒤쫓아갔다.

아빠는 매년 나에게 말했다.

내년에는 같이 살자. 내년에는.. 내년에는..

나도 매년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 내년부터는 서울에서 아빠랑 살꺼야. 내년에는..내년에는..

 

초등학교 5학년때인가?

집으로 법원에서 보낸 등기? 뭔가가 왔다.

카드빚 600만원을 갚지 못한 아빠를 감옥에 넣겠다고..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소를 팔고, 영농자금을 빌리고  아빠를 구했다.

할아버지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 할머니가 맞았다.

 

그나마 명절에 회사에서 주는 선물이라도 들고 오던 아빠가

그후 매년 빈손으로 집에 왔다.

갈때는 할머니에게 차비를 빼앗아 갔다.

 

6학년 설날, 큰집식구들과 술을 먹던 중 싸움이 나서 아빠가 도끼를 들고 큰집에 쫓아갔다.

나는 아빠를 말리며 울다가 기절했다. 

 

학교 끝나고 할게 없던 나는 할머니가 논에 갔다오면 기뻐하라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책을 보고 공부를 했다.

초등학교 6년동안 1등을 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3등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기초수급자였다.

쿠폰을 받아 밥을 공짜로 먹었다. 수업료가 밀리는 적도 많았다.

급식을 다 먹는 날이면 거지라서 밥을 다 먹는다고 애들이 수군거렸다.

돈과 부모가 없는 서러움은 정말 컸다.

 

중3때 선생님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권했다. 할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공부 잘해서 성공해라고 유언을 남기지 않았으면 나는 실업계에 갔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은 더 기울었다..

 

아빠는 매일 저녁 술에 취해 전화해서 욕설을 퍼붓는 게

저녁 일과였다. 온갖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했다.

그런 날은 전화코드를 뽑고 울다 지쳐 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마음 속으로 아빠를 증오했고, 날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를 이해했다.

나같아도 이런 남자랑은 아무리 자식이 있더라도 못살겠다고..

 

내가 고3때까지 새엄마라고 인사시키러 데려온 여자가 둘이었다.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공부만 했고, 국립대에 진학했다.

괜찮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

신원진술서에 가족관계를 적어야 했다. 호적등본도 필요했다.

호적등본을 떼었다.

중국 국적의 여자가 내 엄마로 등록되어 있었다.

집에 데려온 여자들은 한국사람이었고, 아빠가 당시 같이 살고 있는 여자도

한국 사람이었다.

위장결혼..중국 여자가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혼인신고를 해준 것이다.

해 준 것도 없이 이젠 서류로까지 내 인생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취직을 하자 나에게 그냥 돈이 아닌 열심히 살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트럭 장사를 하고 싶은데 트럭 살 돈이 없다.

저축을 하고 싶은데 카드빚 아직 못 갚은 게 있어서 은행에서 돈을 다 빼간다.

부채증명서를 떼어야 파산신고를 할 수 있다. 돈이 필요하다.

한번만 더 믿어보자라는 심정으로 매번 돈을 보냈다.

그 돈은 트럭과 부채증명서가 아닌 술과 담배가 되었다.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 우리집에 대해 다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아빠가 친엄마는 세살때 이혼했고

현재 새엄마와 대학교때부터 같이 살고 있다고만 말했다.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자 아빠가 한 마디 했다.

난 해줄거 없는 거 알지? 그냥 가서 자리에 참석만 할게.

모아놓은 돈으로 결혼식을 치뤘다.

그동안 키워주신 돈이라고 할머니에게 축의금을 전부 드렸다.

절반은 자리에 참석한 값으로 아빠에게 갔다.

 

어버이날 남편이 장인어른 용돈 좀 드리라고 해서 돈을 보냈다.

그래도 어버이날이라 문자도 상냥하게 보냈다.

작년처럼 담배랑 술 드시지 말고 새엄마랑 맛있는 거 사 드시라고.

전화가 왔다.

돈 보내준 건 고마운데, 이 돈으로 뭘 하든 니가 상관할 바 없잖아.

앞으로 이런 돈 보내지 마. 나 절대 너네한테 도움 안 받아.

내가 너한테 도움 받을 정도로 못 움직이면 차라리 죽어버릴거야.

 

정말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정상인이 아닌 것 같다.

왜 어버이날 용돈을 보냈다고 대화가 이런식으로 되는거지?

 

아이가 생겼다. 직장을 그만뒀다. 남편 혼자 돈을 벌어야 했다.

시댁에서 아기용품을 거의 해주셨다.

너무 눈치가 보여 아기옷 전용 세탁기를 내 적금으로 사고, 아빠가 사준 것처럼 했다.

아빠가 말한다. 아빠 체면 좀 세워주려고 산거지? 고마워.

어이가 없다.

 

며칠 전 아빠가 같이 살던 새엄마와 따로 살기로 했다고 할머니가 말해준다.

결국 그 아줌마도 못 견디고 나가는구나.

남편한텐 아직 말을 못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까..

 

일요일부터 계속 전화가 왔었다. 그냥 받기가 싫었다.

어제 오전에 또 오길래 받았다.

이번주 할아버지 기일이라 시골 내려가. 넌 못내려오겠네. 애기 낳으면 보러 갈게.

응- 응- 대답만 하고 끊었다.

 

오후에 전화가 또 왔다.

야! 나 돈 좀 주라. 할아버지 제사라서 시골가야 하는데 차비가 하나도 없다.

내가 너밖에 없다. 나 돈 좀 줘. 할머니한테 할 말이 없다. 돈 좀 주라. 응?

 

술에 잔뜩 취했다. 이 말 하려고 계속 전화했었던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못간다고 해- 한마디 하고 끊고 전원을 꺼버렸다.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고 싶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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