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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자!!!

옳은소리 |2010.06.16 12:51
조회 912 |추천 3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99년 6월 15일은 북한 해군의 서해안 NLL 침범에 따른 제1차 연평해전이 발생했던 날이다.

 

당시 NLL 무력화를 노리고 NLL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과 어뢰정을 밀어내기로 저지하던 우리 해군에 대해 북한 경비정이 사격을 가하자 막강한 화력으로 반격, 북한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경비정 5척을 대파해 북한의 NLL 무력화 의지를 분쇄한 빛나는 전과였다.

 

북한에 의한 도발임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이를 응징하기 위한 마땅한 조치가 없는 답답한 현실이 11년전의 1차 연평해전을 생각나게 한다.

 

99.6.15 당시 1차 연평해전의 간략한 경과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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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연평도 해상은 얇은 연무가 깔린 가운데 청명한 날씨로 꽃게잡이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오전 7시 15분 북한 어선 5척이 NLL을 넘어옵니다. 10분 뒤에는 어선 8척이 추가로 월선, 남방 2.5Km까지 남하해 조업을 하죠. 7시 55분경 80톤급 북한 경비정 2척이 NLL을 넘었고 이어 420톤급 2척이 어뢰정 3척의 호위를 받으며 속속 NLL을 넘어 남하합니다.


NLL이남 10㎞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군 함정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죠. 당시 우리 해군은 영주함과 천안함(1,200톤급) 등 초계함 2척과 2함대사령부 소속 참수리 고속정(170톤급) 12척을 전진 배치한 채 북한 경비정의 남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7일부터 시작된 북한 해군의 NLL 침범은 일주일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죠. 전날인 14일 밤, 군 수뇌부는 남하한 북한 경비정에 대한 ‘충돌식 밀어내기’ 대응으로는 사태가 장기화되리라고 판단하고 저지선을 북쪽으로 올려 북한 경비정의 남하를 초입에서 막는다는 ‘원천봉쇄작전’을 결정했죠.


 



북한 해군 P-6급 어뢰정.

이윽고 “NLL남방 3Km 이상으로는 밀리지 말 것”이라는 군 수뇌부의 지시를 받고 있던 우리 해군 참수리 고속정들과 1,200톤급 초계함 2척이 전속력으로 물살을 가르며 북한 경비정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참수리 고속정들은 초계함과 함께 2개의 편대를 구성해 정면에서는 충돌작전을 펴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 경비정을 압박해 들어가는 양동작전을 구사했죠. 이것은 전날 조성태 국방장관으로부터 NLL인근해역에서 적극적인 봉쇄작전 명령을 하달받은 데다 북한 경비정이 13일부터 우리측의 ‘차단기동’에 대해 ‘박치기식’ 공격으로 저항한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오전 9시7분. ‘전속 질주’ 명령이 떨어지자 참수리 고속정 1척이 편대에서 빠져나와 해상시위를 벌이던 420급 북한경비정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 충돌합니다. 불시에 함미를 들이받힌 북한경비정은 우리 고속정에 박치기식 공격으로 역습하기 위해 덤벼들어 남북의 함정 두 척은 서로의 꼬리를 잡기위해 쫓고 쫓기는 해상질주를 벌입니다.


 



한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편대.

이어 오전 9시20분.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다른 참수리 고속정이 80톤짜리 북한경비정을 정면으로 들이받았죠. 또 우리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을 호위하고 있는 북한 어뢰정을 향해 다시 돌진, 저지작전을 벌입니다. 공격을 받은 북한 어뢰정이 뒤로 주춤 물러납니다. 북한 경비정들도 초긴장, 어뢰정 근처로 몰려들었죠. 사정거리 3㎞의 어뢰 2발을 장착한 북한 어뢰정은 우리 측의 초계함 동원에 대응해 북한경비정을 호위하는 임무를 받고 있었습니다. 북한 경비정들로선 어뢰정이 공격을 받으면 자신들이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타타타탕’. 오전 9시25분, 참수리 고속정이 북한 어뢰정을 막 들이받는 순간, 근처에 있던 북한경비정에서 맹렬한 총성이 울립니다. 북한경비정 갑판으로 일제히 올라온 수병 10여명이 조준사격 자세를 취하고 25㎜ 기관포로 우리 고속정 1척과 천안함을 향해 선제사격을 가해 온 것이죠. 기관포 공격을 받는 것과 동시에 우리 측 해군함정의 함포들도 불을 뿜기 시작합니다. 컴퓨터로 북한경비정을 자동 추적하던 참수리 고속정의 40㎜함포가 북한경비정에 작렬하는 한편, 초계함에서도 76㎜ 포탄이 쉴 새 없이 날아갑니다. 대치하던 양측 함정들이 일제히 상대방을 향해 시뻘건 불을 뿜어내는 함포사격은 이후 5분여간 치열하게 계속됩니다. 우리 측의 집중공격으로 불리해진 북한 어뢰정이 초계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하려는 듯 방향을 틉니다. 바로 그 순간 초계함에서 발사된 76㎜ 포탄이 어뢰정 선체에 그대로 명중하죠.


 



한국 해군 동해급(1200톤) 초계함, 사진은 PCC-769 안동함.

선체 정중앙에 포탄을 맞은 북한 어뢰정은 굉음과 함께 요동칩니다. 하늘에는 시뻘건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높이 솟았고, 북한 어뢰정은 선체가 기웃하면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죠. 참수리 고속정의 집중사격을 받은 다른 소형 경비정 1척도 추진력을 잃고 30도 정도 기운채로 표류합니다. 우리 초계함과 고속정에서는 남은 북한경비정을 향해 일제히 십자포화를 퍼부었죠. 북한 경비정중 420톤급 1척이 대파되어 화염에 휩싸이고 나머지 북한 경비정 3척도 선체 곳곳이 파손된 채 북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합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던 북한 경비정 1척은 침몰을 면하고 겨우 북쪽으로 예인되었죠.


9시30분, 조성태 국방장관은 전군에 경계태세 강화 지시를 내립니다. 국방장관의 지시는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통해 전군에 전파됐고 전군은 ‘준전시 상태’에 돌입하죠. 같은 시간 공군의 주요 전투비행단들도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갑니다. 공중 초계활동 전투기도 2배 이상 늘어납니다.


오전 10시. 서해5도 인근 해군부대와 해병여단, 해군 2함대 사령부 등에 ‘데프콘―3’에 준하는 전투준비태세가 내려지고, 오전 11시에는 전군에 ‘워치콘―2’가 발령됩니다. 육해공군 전군에 즉각적인 비상발령과 ‘서해안 상황’이 신속하게 전파되었고, 야외 훈련 또는 교육 중이던 모든 부대가 즉각 복귀해 장비와 인원을 점검합니다. 경찰청도 낮 12시를 기해 인천 강화경찰서 등 인천과 경기 강원지역 12개 경찰서에 ‘작전비상 을호’를 발령하죠.


이날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에 대해 우리 해군이 즉각 응사, 북한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420t급 경비정 1척을 대파시켰으며 나머지 북한 경비정 4척도 선체 등이 파손된 채 퇴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교전에서 참수리 고속정 정장 허욱 대위 등 해군 장병 7명이 부상, UH-60 헬리콥터로 수도 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죠. 북한 해군의 인명피해는 침몰한 어뢰정 승조원 전원(17명)과 경비정에 탑승했던 수병 등 2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의 중앙통신은 이날 서해상 남북한 교전상황에 대한 첫 공식반응을 통해 “남한측의 엄중한 무장도발행위”라고 비난하며 “즉시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999년 9월2일 북한은 ‘조선 서해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하고 NLL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이 수역에 대해 자위권 행사를 하겠다고 밝힙니다. 이어 2000년 3월23일에는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공포하며, 서해 5개섬을 입·출항하는 2개 수로를 지정, 남측의 모든 함정과 민간선박은 제1, 2 수로를 이용하도록 발표하기도 했죠. 이후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은 남북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 논의를 통해 NLL 수역의 일정한 양보를 얻어내려고 시도했지만 남측의 ‘NLL 사수’ 여론에 밀려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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