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패배였다. 패배의 요인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압박과 수비 조직력의 붕괴와 미숙한 볼터치, 부정확한 패스라 생각한다. 우리 수비수들은 공격의 길목 차단보다는, 공을 잡은 선수만 쫓아다니다가 많은 공간을 내줬다.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면 알겠지만, 패널티 박스에 침투한 상대 공격수 한 사람에게 수비수가 3명이 붙는 장면이 많았고, 빈 공간에 침투한 공격수들을 자주 놓쳤다. 이는 북한이 브라질전에서 보여줬던 수비조직력과는 대조적인데 좋은 말로는 모험적이었고, 나쁜 말로는 방심을 넘어서 오만했다. 그리스전에서 보여줬던 공격 길목 차단과 중앙에서의 강력한 압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게 결정적인 패인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패인은 미숙한 볼터치인데, 트래핑부터 볼 처리까지 최악이었다. 염기훈은 여전히 공을 끌었고, 박지성을 비롯한 미드필더진과 수비진마저 공을 끌었다. 그리고 한국선수들은 아르헨티나보다 드리블과 축구센스에서 뒤졌는데, 아르헨티나는 이점을 잘 이용해서 공격수들과 미드필더들이 하프라인부터 우리 수비 진영까지 강력한 압박을 했고, 이 전략은 성공했다. 이게 마라도나의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허를 찔린 셈이다.
세 번째 패인은 부정확한 패스였다. 전반전은 정말 최악이었는데, 후반전은 그나마 좋아졌다. 그러나 후반 약 20분까지 좋았던 분위기에서 만회골이 없었고, 반대로 아르헨티나는 전열을 재정비하여 날카로운 공격을 선보였다. 사실 게임이나 실전 경기에서, 강한 상대와 맞붙으면 일단 패스가 느려서는 이길 수가 없다. 패스가 느리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 선수들이 패스루트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고, 게다가 정확도까지 없으면, 자연스럽게 주도권은 넘어가고 완패는 거의 확정적이다. 오늘 한국은 전반전과 후반 세 번째 실점이후 아르헨티나에게 거의 공을 넘겨줬고, 세 번째 골을 내준 뒤로부터는 한국의 완패 분위기로 흘러갔다.
오늘 메시는 2선과 공격진을 넘나들며 때때로 수비에도 가담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테베스와 이과인, 디마리아에게 찬스가 많이 생겼고, 예상과 달랐기에 우리 수비수들이 약간 당황했다. 메시의 센스는 공격뿐 아니라 코너킥을 포함한 모든 세트피스 상황에서 빛났는데,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오늘 경기 MVP는 단연 이과인이다. 3골을 넣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었고, 타고난 골잡이다. 후반에 교체 출전한 아게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테베스보다 더 좋은 플레이를 했다.
한편, 오늘 경기에서 허정무 감독은 오범석을 선발출장 시켰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범석은 차두리보다 섬세한 플레이를 했으나 느렸고 과감하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김남일을 투입한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고 본다. 그는 후반 실점 이전까지 한국 수비를 잘 이끌었고 터프한 플레이를 해줬다. 박주영은 오늘 경기에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프리킥 말고는 그의 존재감은 공격수라는 포지션에 걸맞지 않았는데, 다음 경기 라인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허정무 감독은 상당히 고민할 것 같다. 기성용과 박지성도 부진했고, 이청용만이 득점에 성공하면서 그나마 선전했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왜 허정무 감독은 교체카드를 다 쓰지 않는 경기를 했을까? 그리스전에서 그랬지만 경기에서 선수교체 타이밍이 너무 늦다. 오늘 경기에서 후반 30분이 넘어서 박주영을 교체하고 이동국이 들어갔는데, 이미 경기는 다 끝난 상황이었다. 마치 이동국은 패전처리 투수처럼 등장했고, 표정에서도 짜증이 묻어났다. 반면 마라도나의 교체 타이밍은 놀라울 정도로 적절했다. 수비수 사무엘의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교체카드를 썼지만, 나머지 2번의 교체는 한국에게 치명적이었다. 오늘 승리 팀은 한 번은 어쩔 수 없이, 두 번은 결정적인 교체를 했고, 패배한 팀은 두 번의 교체를 했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허정무 감독은 이번 아르헨티나전에 승리의 의지가 있었는가? 오늘 경기는 이전에 그리스전을 본 우리나라 국민들과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한 경기력과 스코어였고, 다음 경기인 나이지라아전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만약 나이지리아가 그리스를 이기거나 비긴다면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치열한 경기를 해야하고,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이긴다면 그나마 좋다. 오늘의 패배가 좋은 보약이 되어 나이지리아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