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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추억, 안정환 미스테리

대한민쿡 |2010.06.29 17:24
조회 848 |추천 0
안느의 추억, 안정환 미스테리  이 글을 예술의 향기 카테고리에 넣은 까닭은 나는 안정환을 일종의 예술적 대상으로 보아 왔기 때문이다. 코엘류 감독이 말했듯이 안정환의 플레이는 아름다웠다. 윙 포워드, 센터 포워드, 공격혁 미드필더(사실은 이 자리가 최적)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만능 플레이어였고 창의적인 공간플레이를 이용한 침투공격이나 예리한 킬 패스를 선보이면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동작은 그의 얼굴만큼이나 우아했고, 그 동안 한국축구의 고질병이었던 '주춪주춤'하는 잡 동작이 없어서 마치 그라운드의 발레를 보는듯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안정환을 리전드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서 최고참으로 일종의 졸업여행(?) 삼아 예우받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면서 왕년에는 명실상부 국대의 중심으로 요즘의 박지성 같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많아진 지금은 물론 과거 어느때도 대한민국 축구협회와 언론으로부터 정당한 평가와 대접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예를 들면 당시 그의 마크맨이었던 이영표(당시에는 윙포드였기에 윙백인 이영표와 자주 격돌)를 거의 실신시켰던(그 나마 당시 대학에서 그를 막아낼 수 있었던 수비수는 거의 영표 정도...) 1997-1998년에도 고등학생인 이동국은 유망주 자격으로 차범근호에 승선했지만, 그는 외면당했다. 1999-2000년. K리그를 휩쓸면서 거의 사기캐릭 취급을 받았던 시절에도, 그가 나오는 경기에는 구름관중, 아닌 경기에는 썰물 관중이었던 시절에도 당시 국대감독인 허정무의 외면을 받았다. 당시 축구계 어르신들은 그 구름관중이 단지 그가 잘생겼기 때문에 몰려왔다고 폄하하는 경향마저 보여주었다. 

지금 허정무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 많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2002년 당시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안정환이 유일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당연히 국대 에이스로 대접받아 마땅했지만,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서 그의 국대 승선에 토를 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중 소속팀에서 벤치에 앉는 경우가 많아 경기감각이 떨어진다는 기가막힌 이유도 있었다. 세리A의 벤치선수가 K리그의 주전보다 감각이 떨어진다고? 기가막힌 이유다. 벤치성이라는 비아냥을 산 박지성이 단 한번도 그런 이유로 국대 승선의 태클을 받은 적 없었던 것과 너무 비교된다. 그나마 최후의 순간에 이동국을 탈락시키고 안정환을 승선시킨 것은 축구협회 어르신들의 생각이 아니라 히딩크의 단안이었다. 단 한명밖에 없는 유럽파 선수, 그것도 세리A 선수의 국대 선발을, 그것도 부상중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고 까다롭게 결정할 만큼 당시 우리나라가 축구 강국이었을까?

만약 안정환이 없었다면 2002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폴란드 전에는 아마 정신차린 폴란드의 반격에 동점골 먹었을 가능성이 크고,  미국에게는 패, 포루투갈과는 혈전 끝에 무,  결국 2무 1패 정도로 조별예선 탈락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당시 국대는 강한 체력과 압박을 통해 실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지만, 문제는 마지막 꼭지점이었고, 그 꼭지점에 안느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두 번의 헤딩골은 뽀록 성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의 진가는 그 두 골이 나기 전에 무수히 많은 유효슈팅을 날림으로써 상대 수비를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어떤 한국 공격수가 축구 강국들과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헤집고 다녔던가? 그 광경은 정말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영광의 2002월드컵이 끝나고, 그는 무적 선수로 떠돌다 결국 빚 갚으러 J리그로 가서 앵벌이 신세가 된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그는 이탈리아를 격침시킨 괘씸죄로 이탈리아 구단에서 방출된 것이 아니다. 안정환을 망친 것은 오히려 이탈리아의 페루지아 구단이 아니라 그의 영유권을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감행했던 부산 구단과 당시 팽배해있던 반 이탈리아 국민 감정이다. 당시 페루지아는 재빨리 이적료를 완납해서 그의 이적을 완료했다. 안정환의 선택은 페루지아 팀으로 복귀한 뒤 페루지아가 교섭한 다른 팀(예컨대 라치오)으로 이적하면 그만이었다. 그 이적료는 페루지아와 부산이 계약대로 나눠 가지면 되고. 그런데 민족감정과 부산구단의 욕심 사이에서 그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그의 축구인생도 꼬였다.

하지만 이후 J리그에서도 팀의 리그 우승의 1등공신이 되는 등 꾸준히 활약했다. 그런데 조재진 같은 경우 J리그의 활약만으로도 국대에 선뜻 뽑히는데 , 유독 안정환만은 제2리그 주제에 무슨 국대 등의 비아냥을 들으며 늘 회의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비록 교체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엄연히 분데스리가 선수인 그를 이동국의 대안(!)으로 제2리거인 조재진과 저울질하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들도 이상한 편향을 보였다. 박지성 등은 후보로 출장하거나 부진해도 최대한 호의적으로 기사를 쓰는 반면 안정환은 조금만 부진해도 "위기의 남자" 등등의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 안정환은 단 한번도 한국 축구인들과 팬들이 자신을 신뢰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거라 여겨진다.

다른 선수들은 컨디션이 덜 올라와도 계속 출장하면서 기회를 주었지만(이번의 박주영 처럼), 유독 안정환만은 조금만 주춤거리는 기색이 보이면 바로 교체되었다. "거 봐라. 그럴 줄 알았다."라는 싸늘한 눈초리와 함께. 아시안 컵에서는 후반 거의 끝날 무렵에야 이동국 백업으로 투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그렇게 10분짜리로 투입될때마다 골을 때려 넣으면서 그는 무언의 시위를 했다. 골 세레머니를 생략하고 무덤덤하게 걸어가면서. 그렇게 힘들게 2006년 월드컵 국대에 합류했다. 붙박이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토고전에서 여봐란 듯이 결승골을 때려 넣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선발로 나오거나 출전시간이 길어지는게 상식이다. 그런데 2차전, 3차전으로 갈수록 도리어 출장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그는 후반 중반에야 투입된 프랑스 전에서 기가막힌 공간패스를 설기현에게 연결시켰고, 텅 빈 공간에서 설기현은 마음껏 크로스를 올렸다. 박지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순간이 이 순간이다. 결국 1승, 1무가 모두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그런데 3차전 스위스전에서는 출장시간이 더 줄었다. 이건 마치 잘하면 잘할수록 점점 따가되는 형국이 아닌가? 그래서 2:0으로 지고 있는 후반 끝무렵에나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외국 방송 캐스터들조차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아니운서는 "안느! 왜 안느가 더 빨리 나오지 않느냐!"라면서 초조하게 외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2006년도 끝났다. 그때 나는 이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때 이걸로 안느의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아픈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남겼다.

"안느.2002년의 영웅.그런데도 조국으로부터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한....2002년의 영웅을 후반전 중반에나 집어넣는, A매치 5골에 불과한 풋내기만도 못한 대접을 하는 그런 조국을 위해, 그래도 그 조막같은 시간동안에 최선을 다해 승점 4점을 선사한....그대의 눈물이 너무 슬프다. 부디 2010년 월드컵에는 정중하게 국가대표를 거절했으면.....하지만, 이대로 그대를 떠나보내는건 너무 슬프다."

하지만 그는 늘 마지못해 데려가서는 푸대접하는 대한민국 국대를 2010년에도 정중하게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가 늙어서 받는 푸대접이 아니다. 그는 앞에서 본 것처럼 심지어는 전성기때 조차 푸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그 푸대접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조국에게 보답했다. 하지만 조국은 그에게 그만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지금 온 나라가 캡틴 지성의 물결이다. 그런데 2002년, 2006년에 안느 물결로 언론이 도배된 꼴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언론은 걸핏하면 그가 전성기를 누리며 활약하는 순간에도 이회택-김재한-최순호-황선홍-최용수로 이어지는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누가 이을것인가? 이동국인가, 조재진인가, 아니면 신예 박주영인가? 따위의 기사를 날리면서 그를 음양으로 모욕하고 무시했다. 축구협회와 언론의 교묘한 안정환 무시와 모욕은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팬들은 그를 레전드라고 부르지만, 축협과 관련 언론은 한번도 그를 그렇게 대접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항상 위기때는 손을 벌렸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그 위기를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는 늘 버림받고 무시받고 모욕당했다. 대체 그 까닭이 무엇일까?

정작 그의 조국 바깥의 사람들이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대접해 주었다. 다음의 말들처럼
 
"왜 코리아의 부산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그의 완전이적을 두번이나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가 완전한 페루자의 일원이 된다면 난 주저없이 그를 주전으로 활용하겠다. - 세르세 코스미 페루자 감독 -"

"방한기간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코리아인들이 자신의 환타지스타인 안느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안느는 유럽에서 파울레타(PSG)보다 높게 평가 받고있다. 그의 화려한 캐리어가 보이지 않는가? 아무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을순 없다.- HELDER Marino Rodrigues Cristovao 셍제르망수비수 -"

"안느가 조금만 빨리 투입되었더라면 우리는 패배했을 것이다. -티에르 앙리"

안정환이 하다못해 중국에서 뛸지언정 한국에 잘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어찌보면 격하게 이해가 간다.
찢어지게 가는한 집에서 태어나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어가며 성장하면서 무수한 멸시와 모욕을 감내하며 싸워 이긴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성공한 다음에는 엉뚱하게 부귀해 보인다면서 욕을 먹고, 생애 단 한번도 제대로된 인정을 받지 못하며 겉돌았던 판타지스타.  그나마 코스미, 히딩크, 코엘류, 황선홍 정도가 그를 신뢰하고 인정했던 감독이었던 것 같다. 특히 부산 아이파크와의 마지막 결별이 안타깝다. 이제 그런 선수를 다시 볼 수 있을지....그리고 왜 한국은 이런 선수를 이토록 용납하지 못하고 힘들게 해야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려본다.

문득 일본 축구계에서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기린아인 혼다를 중용하고, 또 골 결정력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인 혼다를 난데 없이 원톱으로 박아 넣은 일본 오카다 감독의 용병술이 2002년 히딩크와 겹쳐보인다.  출처 : 부정변증법, 이글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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