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지만,
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전쟁영화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영화로 접한 전쟁들은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아프리카 내전, 이라크전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1차 세계대전은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전쟁이었고 큰 관심도 없었다.
지난 일요일 오후.
예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들로만 수집했던 적이 있었는데,
수집만 하고 보지는 못했던 영화들을 한편 보기로 마음 먹었고,
나는 1931년 아카데미 작품상인 <서부전선 이상없다>을 선택했다.
그리고 드디어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개인의 야망은 잠시 접어두고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이 계속되는 독일의 어느 대학교.
교수는 학생들에게 조국을 위해 자원입대를 권유하는 발언을 하고,
폴과 알버트, 뮬러, 벤, 프란츠 등은 자원입대를 결심한다.
교수의 말만 듣고 전쟁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가득 찬 지원병들은,
시간이 갈수록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으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곁에 있던 친구들이 전투가 거듭될수록 전사하거나 불구자가 되자,
홀로 살아남은 폴은 인간의 연약함과 전쟁 자체의 허무감에 괴로워한다.
1년만에 부상으로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 폴은,
1년 전과 같이 자신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원입대를 권유하는 교수를 다시 만났고,
교수가 폴을 알아보고 선배로서 격려차원의 발언기회를 주자,
폴은 학생들 앞에서 교수의 말은 거짓이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증언한다.
"황제와 난 이 전쟁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우린 전쟁을 원하지 않았어. 그러니 집에 가겠어."
"황제는 벌써 갔어."
1930년에 개봉한 흑백영화를 지금 내 방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그리고 영화사의 명작들은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루이스 마일스톤(Lewis Milestone) 감독에게 이 영화는 첫 유성영화였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의 클로즈업과 전쟁영화 치고 컷이 길면서 정지영상이 많은데,
아무래도 배우들의 대사가 관객들에게 더 잘 들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촬영한 것 같다.
마일스톤 감독의 또 다른 영화로 1960년에 개봉한 <오션스 일레븐>이 있는데,
이 영화는 2001년에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신이시여, 저들은 우리한테 왜 이런거죠?
우린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왜 이런 곳에서 서로 싸우게 하는 거죠?
이 총과 군복을 버리면 너도 캣, 알버트 같은 동료가 됐을 거야."
인상적인 것은,
1930년대 만들어진 전쟁영화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의 구성의 탄탄함이다.
일단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제작된 전쟁영화들의 교과서와 같다.
전쟁의 참상과 병사들 개개인이 바라보는 전쟁의 회의적 시각,
비극을 짐작하게 하는 복선 등.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정확하게 담겨져 있어 더욱 실감난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었고, 특히 그들이 말한 대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주연급 배우들은 거의 첫 데뷔작일 듯 싶은데,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꽃미남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930년대 배우들이라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없다.
이외에도 긴장감을 주는 배경음악과
타격감이 느껴지는 효과음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심각한 상황도 아니고 우린 숫자도 많다고 했죠.
아저씨하고 있으니까, 그 말이 진짜처럼 느껴져요."
1차 세계대전은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헝가리 등)과
연합국(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이 4년 4개월 동안
유럽 전 지역에서 벌인 전쟁이다.
기록에 의하면 양 진영을 합하여 약 900만명의 군인들이 전사했고,
전투기, 잠수함과 같은 군사장비와
대량 살상 무기들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는데,
패전국은 베르사유 조약를 비롯한 패전 책임을 지는 조약들을
연합국을 상대로 맺어야 했고,
승리국들과 협력국들은 패전국의 식민지를 나눠 갖거나,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은 극단적 민족주의인 전체주의와 파시즘, 독재정권을 낳았고,
약 20년 뒤에 인류 최악의 전쟁인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서로가 처음부터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의 수뇌부는 "전쟁 없이는 평화란 없다" 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영화는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반전(反戰)영화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전쟁은 평범한 집배원을 하사관으로 만들고,
학문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병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명분을 부여한다.
즉, 자국 내에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부터 개인의 꿈과 야망은 잠시 접어두고,
조국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날아오는 총탄 속에 바쳐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군대는 합법적으로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곳이다.
국방의 의무를 지키러 온 사람들도 있고, 장교와 부사관으로 입대한 사람들도 있다.
일단 그들에게 군복을 입혀놓고 총을 쥐어 준 순간부터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온 몸을 불살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린다.
그들의 죽음은 국가입장에서는 영광스런 죽음이지만,
남겨진 자들에게는 영원한 슬픔이 된다.
이렇듯 국민들은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국가의 위급 상황시 강제적으로 자유를 제한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당연시 되어 왔다.
근래에 들어 <엘라의 계곡>, <허트로커>, <그린존> 등과 같은 반전영화들이
매년 한 편 이상씩 제작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들이다.
왜 이런 영화들이 유행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 내 많은 사람들의 반전시위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만류와 우려보다,
영화가 가진 시청각적인 힘이 더욱 강력한 반전시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미국은 지금 자기들이 벌인 전쟁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는 것과 같다.
이는 사회적으로 미국의 국민들은 이라크 전쟁이 빨리 종결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고,
더이상의 인명피해와 미국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바라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1930년에 제작된 이 영화처럼 말이다.
전쟁은 권력자들이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는 일이다.
물론 자국 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족과 친구들의 생존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국민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데 국가 위정자들의 판단 속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국민이 져야 하는가?
나는 이 대답을 정확히 말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예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도망가는 것은 국가 위정자들이었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군복무자들과 국민들이었다.
이건 우리 나라 역사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은 이 영화 첫 장면에 이런 문구를 삽입했다.
<이 영화는 고발이나 고백이 아니며, 모험은 더더욱 아니다.
죽음에 직면한 이들에게 죽음은 모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전쟁에 희생된 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영화가 인류 역사 속에서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 것은,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영화가 실현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접하게 만들어 주었고,
여러가지 상황들을 설정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생각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변화시켰다.
이렇듯 영화 한 편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다.
이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