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이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군인과 민간인으로 이루어진 커플들이 많이 있겠죠?
여자친구와 같은 학교 같은과 CC였구요.
약 400일 가량 만났습니다.
저는 전역한지 약 3개월 정도 되었고요.
헤어진지 1년 9개월 가량 되었네요.
네. 이등병때 헤어졌어요.
그것도 100일휴가의 다른 개념인 신병위로외박(4박5일) 출발 2주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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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하는 가족과 굉장히 귀여웠던 여자친구를 두고
입소대대 연병장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논산의 입소대대로 가서 3박4일을 지내다가
제30교육연대로 넘어갔어요.
전 몰랐는데 민간인분들은 훈련병에거 인터넷으로 편지를 써줄 수 있더군요.
그걸 조교들이 출력해서 해당 병사에게 나누어 줍니다.
훈련병 시절 언제나 편지의 양은 제가 제일 많았어요.
물론 인터넷 편지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편지이며
편지봉투를 세트로 많이 구매해서 하나하나 번호도 새겨가며
폭탄편지가 제게 배달 되더군요.
훈련소 동기들은 많이들 부러워 했어요.
그걸 받은 저도 상당히 뿌듯했고, 양은 많지만 읽은 편지 또 읽고
훈련받으며 상당히 더운 날씨지만 (7월군번이에요)
편지 내용 떠올려가며 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머금은채 훈련받았어요.
편지라는게 군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도움이 된다는걸 경험하고 알았죠.
가뜩이나 훈련병 시절에 전화를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저같은 경우는 각개전투할때 텐트를 제일 먼저 쳐야 전화를 할 권한을 주었죠.
저와 전우조는 정말 미친속력으로 텐트를 쳤습니다.
다른조들은 어떻게 텐트를 쳐야하나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저희는
그냥 땅에 철저히 박았죠. 1등했습니다.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고요.
첫 전화 당연히 부모님께 걸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울먹울먹 하시더군요. 애써 덤덤한척 전화를 걸은 본인이지만
갑자기 저도 울컥하더군요. 하지만 참았습니다.
저만 하는 군생활도 아닌걸요.
두번째 여자친구한테 걸었습니다.
제 주특기가 의무병과인지라 훈련소 수료를 한 뒤 후반기 교육을 위해
대전에 위치한 국군 군의 학교로 전속이 되었어요.
5중대에 배정을 받고 제 주특기 교육을 받기 시작했죠.
교육을 받으면서도 편지가 많이 오더군요. 훈련소 못지않게 많이 왔어요.
편지를 나눠주는 조교들(훈육분대장)도 짜증을 좀 냈어요.
너무 많이 오는거 아니냐면서...
하지만 좋았죠. 그런 핀잔 다 감수하고 동기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자기의 근황을 담은 사진들을 미니앨범에 정성스레 넣어서도 보내주고
훈련소때와 달리 비타민제도 꼬박꼬박 넣어서 편지보내주고
더욱더 정성이 빛이 났습니다. 한통한통 읽을때마다
휴가나가서 정말 잘해줘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휴가는 자대에 가서 일병을 달기 전달에 써야 4박5일을 받을 수 있었어요.
단, 국군군의학교에서 교육 마지막째주 일요일에 가족들과 면회가 가능했어요.
부모님이 반드시 참석하신다는 전제하에 면회 외출이 되었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모양은 안나지만 이등병 약장도 달고 있고, 전투화도 깨끗이 손질하고
더운 날씨였기에 팔을 접어 입어야 했었는데 접는것도 흐트러짐 없이 꼼꼼히
접었습니다. 그야말로 나름대로 완벽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면회날 너무나도 설레였고 저희 부모님도 오셨습니다.
여자친구와 동행한 상태로 말이죠. 너무나도 좋았어요.
내 사랑스런 가족과 여자친구를 본다는것에 잠도 안오던걸요.
눈과 정신은 퀭했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같이 밥도 먹고 저희부모님의 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전에 어디 볼일 있으시대서
여자친구와 둘만의 시간도 넉넉히 주셨습니다.
어느덧 헤어짐의 시간이 왔고 너무나도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한 채
면회인원들을 보냈습니다. 그날역시 잠이 오질 않더군요. 섭섭해서 말이죠.
그렇게 국군군의학교 시절을 마치고 자대배치도 받고 자대로 팔려가게 됩니다.
제가 거주지가 서울이었는데 자대가 경기도 성남이라 지리적으로 상당히
가깝게 배정되었습니다. 부모님도 여자친구도 너무나도 좋아하더군요.
문제는 여기서부터 있었습니다.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부터 기간병(그 자대의 병사)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기병 내지 신병이라 하여 부대의 잔 작업을 시행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군군의학교 시절에 전화를 비교적 자유로이 할 수 있었는지라 전화비를 상당히
지출 하였던 본인에게는 이 대기병 생활은 답답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화장실도 눈치껏 갔습니다.
전화를 하려면 계급 높은 고참들이 시키는건 다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모님께, 여자친구에게
부모님은 언제나 제 전화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점점 시큰둥해져갔습니다.
학교일정이 바빠서 였나보다...라고 생각을 했죠.
그 많던 편지들도 자대에 와서는 단 한통도 오지 않았습니다.
직감했죠. 이별을요...
남들보다 대기병 기간도 길게 했던 저는 한달만에 기간병으로 승격(?)을 하게 됩니다.
기간병이 되어서 내무실 고참들 시키는거 다 하면서 전화 할 기회도 받고 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는 횟수가 늘고 제가 이등병이니 만큼 언제나 뛰어다니고
갈굼들을 이겨내고 전화한통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허나, 역시 받지 않는 전화. 어쩌다 운좋게 받으면 금방 끊어야 할 기세였습니다.
감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유도 모른채 말이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군생활중 첫휴가 나가기 2주전에 헤어짐을 맞이했어요.
역시 이유도 모른채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예비역들은 알거에요. 일말상초라는 말들을 물론 곰신들도 알겠죠 !
허나, 저는 이말에 헤어졌네요.
첫휴가날이 왔습니다.
그래도 400일 이상 만난 여자친구인데 전화로 마지막을 하는건 아니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밥이나 한끼 먹자고 했죠.
그래서 약속이 정해지고 나가려던 찰나에 집에서 메신져를 하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 복학생과 저 군대간 뒤로 얼마 안있다가 저와 함께 했던 일들을
그 둘이서 한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저와 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학교 내에서 버젓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일단은 헤어진 이유도 모른채 헤어졌는데 밥이나 한끼 마지막으로 먹고싶어서
나가려던 찰나에 그것도 휴가 첫휴가 첫날에 말이죠...
밥..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유도 묻지 않은채... 알고 있으니까요...
작별인사할때 엄청 울며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전 왜 인지 아는데 묻지 않았어요. 그냥 그렇게 행복했으면 됬지 하고요...
저는 당장에 옆에 있어줄 수 없으니까 그녀의 행복을 빌며 등을 보였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어요.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나보죠...
이야기가 길었죠?
다 읽어주신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얼마나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땅에 존재하는 군화와 곰신들.
군인에게 있어서 분명 사제 먹을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끈끈한 의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정성이 들어간 편지가 아닐까 싶네요.
편지 한통은 계급을 막론하고 전화와는 다르게 계속해서 생각나게 만들고
힘을 주는 매개체인것같아요.
저도 비록 헤어진지 꽤나 되었지만 편지를 받고 기뻐했던 느낌이 생생하네요.
군화와 곰신들 !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신발들 거꾸로 신지 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