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에 눈을 뜬다.
눈꼽을 비비면서 수영장에 나간다.
수영을 한다.
책을 본다.
수영장 옆 레스토랑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다시 수영을 한다.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MP3며, 다이어리 같은 것을 챙겨들고 나와 시내로 간다.
시내를 구경하고 로컬 샵에서 마사지를 받는다.
해변으로 가서 걷거나 모래사장에 누워 심심해한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다시 수영을 한다.
한번 더 샤워를 하고 밤 늦을 즈음 클럽에 간다.
춤추거나 다른 여행자들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한다.
압도적은 비쥬얼을 가진 미남, 미녀들의 댄스를 찬양한다.
호텔로 돌아와 밤 수영을 한번 더 하고 잔다.
가끔 더 심심하면 자위도 한다.
이를테면 이게 내 짧은 발리 일정의 전부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러려고 간 여행이었다.
물 옆에서 시간을 물쓰듯 펑펑 쓰다가 오려고.
허허할 때는 일기를 쓰거나
한국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싶어 했다.
나, 이러이러해서...... 네가 참 좋다.........는 골자의 문자를
친구 몇 놈과 회사 몇 사람에게 보냈다.
어머니께도 보냈었나? 이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도 안먹고 여행지의 감상에 취해서 그런 짓을 했으니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죽도록 창피해졌다.
뭘 먹을지 고민하면서 쿠타 시내를 두 바퀴 째 천천히 걷는다.
그러는 사이
띠릭, 나도 네가 참 좋다.........................라는 의미 비슷한 문자 한 두 통과
입 닥치고 돌아와라 / 미쳤냐?............정도의 문자 몇 통을 받는다.
뭐.... 기분이 썩 괜찮은 답장 축에 속한다.
먼지와 매연이 풀풀거리는 도로 바로 옆으로 오히려 남미 풍의 생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파티오.
여행자들이 산처럼 쌓인 바스킷 해산물 세트를 시켜놓고는
행복해 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오호. 바로 저것!
뭐에 홀린 것처럼 (음. 지난 포스팅에 말한, 쥐 시체에 가야만 하는 파리의 맹목성 같은 종류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쭈뼛거리며 웨이트리스 누나에게
"저기 저 사람들 시킨게 뭐에요?"라고 묻는다.
랍스타 쉬림프 바스킷 어쩌고...
혼자 랍스타를 시켜 먹는 건 잠깐 다소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시간 레스토랑의 음악에 발을 맞추면서
열심히 랍스타를 뜯어먹는 내 모습은,
초라하거나 어색하기 보다는 용감했던 것 같다.
난 예전부터 혼자 자취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친구 녀석들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어차피 외로울 인생이라면
되도록 많은 기회를 통해 (비록 사소할지라도) 최대한 열심히 용감해지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부단히 용감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은
이제는 일종의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 혼자이면서 충분히 시크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때는 부러워 미치겠고 닮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내 친구는 혼자이면서 화려하게 늙든, 초라하게 늙든, 그건 다 독거노인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거라고
열변을 토했지만)
그런 시크함은 나와는 분명한 거리가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최소한 쓸쓸하거나 비겁하지 않는 솔로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 여행은 다소 청승맞고 일부 찌질하더라도
강해지는 일종의 실험이자 연습인 셈.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흔히들 발리를 신혼여행지로만 많이 알고 있지만,
산속이나 절벽에 틀어박힌 최고급 풀 빌라를 제외하고는
(주로 레기안이나 발리의 저 아래 혹은 동부 동네들)
오히려 중서부 해변쪽 호텔이나 쿠타시내 인근 로컬 숙소들에는
나홀로 여행자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돌아보는 구역과 동선 역시 서로 다른 발리의 이미지를 상기시키는데,
이를테면 서부쪽 해안에서 주로 여정을 보낸 사람들은
아마도 발리를 서퍼들, 밤과 열정에 취한 청춘들의 천국이라고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모래사장에 도미노를 세워둔 것처럼 까마득하게 이쪽 해변에서 저 끝까지
쿠타비치 전체에 걸쳐 좌르르르륵 꽂혀있는 서핑보드와 아마추어(간혹 프로) 서핑 강사들, 호객꾼들을 보고 있으면
발리는 분명히 서핑을 위한 곳이라고 정의해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혼자라서 나약하고, 게으르며, 설렁설렁 시간이나 까먹고 싶은 욕심이 컸던 까닭에
서핑을 배우려는 능동적인 노력이 내게는 없었지만,
만약 당신이 서핑을 배워보고자 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준비 없이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몸매 깔끔한 발리 청년들의 강습을 들으며
쿠타비치에서 하루 종일 서핑을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발리 아가씨 강사는 보지 못했다)
해맑은 물은 아니지만, 바다는 얕고 길면서 바람은 강하고 파도는 높다.
맥주 파티, 칵테일 파티가 해변 여기저기에서 밤마다 열리고,
약간의 철면피 근성만 있다면 어디든 끼어들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열려있다.
치안도 꽤 안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멀지 않은 날 기회가 된다면
한달이나 두 달 정도 이곳에 와서 저들처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태양을 뒤집어 쓰며
피부를 문어 먹물이나 흑진주처럼 검고 기름지게 태우고
아침부터 밤까지 서핑을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사실은 다이어리에, 꼭 3년 안에 그리하리라, 적어 넣었다.
저 모든 젊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용감해 보인다.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하며 시크해서 함부로 흔들리거나 망설이지 않는
자유롭고 고고한 동물들 같았다.
2009 Bali
당신과 나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