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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4.청산리대첩 ⑶

조의선인 |2010.08.22 17:11
조회 982 |추천 0

 

★ 백운평전투(白雲坪戰鬪)에서 첫 승리를 거두다.

 

총사령관인 김좌진(金佐鎭) 장군의 작전지시를 받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장병들은 나뭇가지와 억새풀로 위장하고 수풀 속에 깊이 숨어 숨소리조자 내지 않고 있는데, 산짐승들도 눈치챘는지 귀뚜라미 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적막한 산속에서 복장은 남루하여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데 북만주의 기후는 10월답지 않게 가을을 지나 초겨울 추위가 닥치고 있다. 나뭇잎에는 벌써 서리발이 내리고 낙엽은 떨어져 조금만 움직이면 버석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결사항전(決死抗戰)을 결심한 병사들은 관 속의 시신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참으며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짙어가고 한기(寒氣)가 옷깃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편 채춘(蔡春) 소대장이 이끄는 수색대는 청산리 계곡의 초입인 백운평을 빠져나가 30리 전방까지 이동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야영중인 일본군을 발견했다. 채춘 소대장은 즉시 몇명씩 조를 짠 척후병을 일본군이 야영중인 인근에 급히 파견했다. 11시 30분에 흩어진 척후병은 새벽 3시 30분에 전원이 돌아왔다. 정찰한 내용은 일본군 2개 여단 병력으로 대량 추측하여 4천~5천명에 달했고 야포(野砲) 등 중장비 등을 갖추어 전투부대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채춘 소대장은 이와 같은 상황을 즉시 본대에 연락병을 보내어 보고하도록 했다.

 

채춘의 수색대는 곧 일본의 군영을 향해 총탄 몇 발을 사격했다. 곧 일본군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혼란스러울 무렵 다시 몇 발의 총탄을 쏘아 수색대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일본군은 정확한 목표를 찾지 못하고 위협사격을 가했다. 달빛마저 없는 칠흑 속의 야간에서 일본군으로서는 독립군 수색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고 산울림으로 수색대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도 추측할 방법이 없었다. 수색대원들은 청산리 방면으로 후퇴하면서 총성(銃聲)이 멈추면 다시 몇 발의 총탄을 사격하여 일본군을 유인하였다.

 

이러한 작전에 휘말린 일본군 2개 여단 병력은 수색대를 추격하여 청산리 입구 백운평 촌락까지 도착했다. 이때는 동쪽으로부터 훤하게 날이 밝기 시작하는데 주위는 삼엄하다.

 

일본군의 선봉부대를 지휘하는 야마다[山田童] 연대장은 백운평의 민간인 몇 명을 붙잡아와서 독립군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이에 한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독립군은 며칠 전에 5~6명씩 짝을 지어 저쪽으로 걸어 갔는데 어떤 사람은 총을 가졌지만 대부분 총은 없는 것 같으며 우리 젊은 사람들까지 위협해서 데려갔어요. 그리고 부녀자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데려다가 무엇하려고 그랬는지..... 이 마을에는 인구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검은 말을 타고 앞장섰는데 그 사람 뒤에는 30~40명 정도가 따라갔어요. 그리고 개중에는 대나무로 만든 창을 든 사람도 있었는데 군대라고 보기에는 형편없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부락을 전부 수색하여 먹을 것은 전부 약탈해 갔고 음식이 보이면 거지 새끼들같이 서로 음식을 갖고 싸워 힘센 사람이 차지하고 약한 놈들은 먹지도 못합디다.”

 

“음, 그게 사실이겠지?”

 

“그렇습니다.”

 

야마다 연대장은 마치 짐승에게 먹이를 주듯이 건어물 봉지를 그 노인에게 던져주었다.

 

조선 민간인의 말에 안심한 듯한 일본군은 휴식에 들어갔다. 텅빈 마을에는 식량 삼아 거적집에 기르고 있던 송아지와 몇마리의 소들이 있었고 그 거적집에는 항시 식량용으로 소고기가 있었다. 이것을 본 일본군 병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무불을 지피고 구워 먹는다. 어떤 병사는 송아지를 끌어다 총으로 쏴 죽인 후 단도로 목을 찔러 피를 마구 빨아 먹고 있다.

 

일본군이 마을에서 하루 저녁을 지내고 날이 밝아오자 수색대를 인솔하는 채춘 중대장은 참으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긴급히 대원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우리의 이번 작전은 아군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우선 일제히 총격을 두서너번 가한 뒤, 바로 후퇴하여 청산리 쪽으로 10리쯤 도망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두서너번 총격을 가한 뒤 다시 후퇴하여 청산리 계곡으로 적군을 유인하되 청산리 양쪽 고지에는 우리 장병들이 매복하고 있으니 어떠한 경우라도 종횡열로 매복하고 있는 장병들을 총격해서는 안되니 우리 수색대원들은 고지를 피하여 계곡 밑바닥으로 숨어서 패잔병같이 행동하라!”

 

이 지시에 따라 수색대원들은 민첩한 행동으로 백운평에서 마음 놓고 야영중인 일본군을 겨냥하여 소총(小銃)과 장총(長銃)을 발사했다. 다시 불시에 기습을 받은 일본군은 4~5명이 거꾸러지고 수십명이 총상을 입었다. 이에 당황한 야마다 연대장은 급히 군마(軍馬)에 올라 일본도(日本刀)를 빼어들었다.

 

“적이 나타났다! 대오를 유지하고 반격하라.”

 

일본군이 맹렬하게 응전하면서 진격하자 수색대원들은 채춘 소대장의 후퇴 명령에 따라 즉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산등성이로 몸을 숨기면서 추격해오는 일본군을 향해 총격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기마병이 탄 군마의 목에 총탄이 박혔고, 말이 쓰러지면서 마상(馬上)의 병사도 데굴데굴 굴러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수색대원들이 순식간에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사라지자 그들의 행방을 놓친 일본군 병사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연대장인 야마다[山田童] 대좌(大左)는 긴급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도적들은 주민들의 말과 같이 무기도 형편없고 또한 조직화된 군대도 아니므로 조선의 독립군이라 불리우는 집단은 이토 히로부미 수상 각하를 살해한 안중근과 같은 발악에 불과하다. 어젯밤 급습한 것과 오늘의 공격을 본다면 불과 몇명되지 않는 도적들이 지구전을 한 것에 불과하고 또한 도적들의 병력이 집중되었다면 아군이 맹공격을 했음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 틀림없이 도적들은 중국 측의 권유나 위협에 못 이겨 장백산의 밀림 속으로 이동했고 우리에게 공습한 도적들은 그 대열에서 낙오된 몇명되지 않은 인원인 듯하다. 몇시간이 지났어도 반격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도적들도 벌써 이 지대를 빠져나간 것이 틀림없으니 아군은 일단 잠시 휴식하고 난 다음 소탕작전을 휘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사방에서 고기몰이와 같이 포위하여 일망타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독립군이 주변에 없는 것으로 판단한 일본군은 긴장을 풀고 여기저기에서 잠시 휴식한 뒤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무사안일한 태도로 행군하는 일본군은 무질서한 모습이다. 총을 거꾸로 메고 가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소대장들이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농담을 하면서 행군하는 자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소풍하는 행렬같았다.

 

이와 같이 1시간 정도 진군하니 일본군의 말미가 청산리 입구를 지났다. 그러므로 일본군 2개 여단 병력이 완전히 청산리 계곡 안으로 들어왔다.

 

북로군정서의 연성대장인 이범석(李範奭) 장군은 지금이 공격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일본군의 후미에서 깃발을 펄럭이고 있는 기마병을 향해 권총(拳銃)을 쏘았다. 이 총성(銃聲) 신호를 들은 독립군 병사들은 일제사격을 개시했다.

 

갑자기 일본군과 바로 근접한 지점에서 숨어 있던 독립군 사이에 불꽃이 튀는 접전이 벌어졌다. 일본군의 선발대 1개 중대의 병력이 삽시간에 전멸되었다. 바로 그 뒤를 따르던 일본군 기마대대가 계곡 중앙에 이르러 앞에서 총성이 들리자 긴급히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려는 찰나였다.

 

이때 높은 고지에서 쌍안경(雙眼鏡)을 들고 전황을 살피던 김좌진(金佐鎭) 장군은 일본군 기마대대의 중앙을 향해 총탄을 발사하고 군도(軍刀)를 허공에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김덕희(金德喜)·최인걸(崔麟杰) 등의 기관총대(機關銃隊)가 총좌(銃座)를 움직이며 맹렬한 사격을 시작했다. “따다닥!”하는 요란한 총성과 더불어 일본군 기마병들은 군마와 함께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쓰러져갔다.

 

이처럼 야마다 대좌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부대는 서전(緖戰)에서 2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간신히 퇴각하였다. 콩 볶듯 요란했던 총성이 멈추자 독립군 병사들은 적군의 시체에서 탄환과 수류탄 그리고 비상식량 등을 노획한 뒤 지정된 위치로 돌아왔다. 백운평 계곡에서의 첫번째 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김좌진 장군은 다시 무슨 중대한 결심을 한 듯 산등성이만 바라보고 있더나 혈기 오른 안색을 물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선발대에 이어 기마병까지 이곳에서 전멸했으니 반드시 대병력을 투입해 독립군을 포위하려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때마침 채춘 소대장의 수색대로부터 급보가 들어왔는데, 일본군 1개 대대 병력이 독립군의 왼쪽에서 진군을 계속하여 백운평 계곡을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일본군은 대병력과 중장비까지 투입할 것이 불보듯이 뻔한 일이고 또한 현위치가 노출되었으니 이곳에서 계속 싸운다는 것은 절대 불리하다고 판단되자 김좌진 장군은 즉시 전병력을 이도구(二道溝) 방면으로 후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북로군정서 병사들이 후퇴한 삼도구(三道溝)의 백운평(白雲坪) 계곡에서는 수백구의 일본군 전사자의 시체와 30여마리의 죽은 군마들만이 조용히 잠들어 있을 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바람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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