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2010-08-23]
시즌 첫 골을 터뜨린 기성용(21·셀틱)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기성용이 23일(이하 한국시간) 셀틱 파크서 열린 ‘2010-11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세인트 미렌전에서 통렬한 중거리슈팅으로 골을 터뜨리며 4-0 대승에 힘을 보탰다.
3-0으로 앞선 후반 25분 교체 투입된 기성용은 후반 35분, 25m가 넘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오른발 강슛으로 상대 골문을 열어젖혔다. 이날 골은 모처럼 경기에 나서 터뜨린 올 시즌 첫 골이자 팀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이라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기성용은 이렇다 할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기성용을 둘러싸고 축하했지만, 차분하게 셀틱 진영으로 복귀하는 기성용의 얼굴에는 오히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골을 넣고도 ‘우울한’ 이유는 뭘까. 이는 소속팀에서 불안한 입지에 놓인 기성용의 처지와 무관치 않다. 셀틱의 릴 레넌 감독이 여전히 기성용을 ´어린 유망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릴 레넌 감독은 지난 6월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전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뒤, 한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견인한 기성용과 차두리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특히 차두리에 대해선 “압도적인 피지컬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공격가담이 인상적이다”고 평가하면서 셀틱의 영입대상 1호로 지목했다. 기성용 역시 “날카로운 프리킥과 폭넓은 시야를 지녔다”며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막상 리그가 시작되자, 차두리와 기성용의 희비는 크게 엇갈렸다. 차두리가 셀틱의 주전 윙백으로 발돋움한 반면, 기성용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벤치에 머물고 있는 것.
셀틱은 이미 보수적인 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연령과 경험을 가장 중시하는 데다 영국 국적의 선수를 우대하는 경향이 짙다.
현재 기성용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4살이 많은 스콧 브라운이다. 지난 2007년 셀틱에 입단한 스콧 브라운은 거친 수비력이 장기지만, 공격력은 기성용보다 한수 아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브라운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로 이적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기 때문에 기성용이 브라운 후계자로 낙점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브라운이 잔류를 선언하면서 기성용의 입지는 다시 좁아졌다.
현재로선 브라운이 부상으로 이탈하지 않는 이상 기성용이 주전 자리를 꿰차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셀틱의 선수기용 스타일은 기성용의 성장 길목을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성용은 브라운보다 4살이나 어리고 리그 경험도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월드컵 16강팀의 주전 멤버로서 공정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이상의 기량을 선보일 잠재력이 충분하다.
기성용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그리스,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덴마크, 세르비아 등 세계적인 축구 강국과의 진검승부에 선발 출장하면서 얻은 경험 역시 스코틀랜드 리그 경험 못지않게 값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첫 경기였던 지난 11일 나이지리아전에서 잠재력과 가능성을 우선시하며 윤빛가람을 대표팀 선발로 기용한 바 있다. 윤빛가람 역시 이날 골을 터뜨리며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감독이 팀과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레넌 감독이 자신이 말한 대로 월드컵 기간 기성용의 기량에 믿음이 생겼다면, 과감히 기회를 줘 셀틱의 미래로 키워가는 것이 현명하다. 주전과 비주전 간의 선을 확실하게 그어놓고 공정한 경쟁조차 가로막는 레넌 감독의 선수기용 방식이 못내 아쉽다.
〈데일리안 스포츠 이충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