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조금 쌀쌀해져 왠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생각난다.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옆집 할머니께서 쑥 수제비 한
그릇을 내미신다. 지난번에도 맛있게 먹어서 내심 반가웠다. 고소하고
감칠맛 가득한 수제비와 함께 따뜻한 국물을 들이키니 온몸이 기분좋게
풀어져 노근해져 온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과거 어느날이 불현듯 떠오른다.
스무살 시절. 같은 화실에서 일하던 한 여자애와 가깝게 지낸 적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어느 곳에 함께 가기 위해 약속을 했고, 그날은 날씨가 궂었다.
우산을 챙겨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지만, 만나기로 한 곳 근처 어느 가게인
가에 들고 있던 우산을 맡겨 버렸다. 평소 준비성이 많은 그녀도 당연히 우
산을 들고 나올 것이라 짐작하고 함께 쓰고 싶은 뻔한 속셈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고, 때 마침
내리는 비를 함께 쫄딱 맞을 판이었다. 나는 서둘러 맡겨 둔 우산을 찾아오
기 위해 뛰어야 했고, 결국 내 우산을 그녀와 나란히 쓰고 걸을 수 있었다.
그날은 비가 많이도 내려 나의 오른쪽 어깨는 흠뻑 젖어 버렸지만, 기분은
참 많이 설레였고 두근거리던 기억이 난다. 나의 유치한 속셈이 그녀의 새침
한 바램과도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속으로 많이 기뻐했다..
순수했던 시절이었고 숫기없이 많이 순진했던 나의 지난 날을 떠올리자니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비가 계속 내린다..
계속 될 것 같았던 지난 날이 쉽사리 지나가 듯
마냥 쏟아지는 이 비도 얼마 후엔 그치겠지..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