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심의 과정을 거치고 영화의 ‘1분 30초’ 가량을 편집해 어렵게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개봉 전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으면서 관객들에게 영화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악마를 보았다>는 늘 새로움을 탐구하는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친절한 금자씨> 이후 5년 동안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 최민식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의 약혼녀인 주연(오산하)이 무자비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현은 지켜주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범인을 찾아내 더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복수를 약속한다. 수현은 추적 끝에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이 범인임을 알아내고 찾아내 죽을 만큼의 고통을 주고 놓아주고를 반복하며 사냥 놀이 같은 복수를 시작한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는 여러 범죄영화나 복수를 다룬 영화에서처럼 매우 단순한 이야기 구조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장르와 이야기의 힘보다는 인물의 힘을 강조하고, 대립되는 두 인물간의 행위와 감정에 집중했다는 김지운 감독의 말처럼 <악마를 보았다>는 수현과 장경철이라는 두 캐릭터의 선이 굵은 영화이다. 실제로 <악마를 보았다>는 다른 영화들처럼 이야기와 사건 속에 인물의 행위와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행위와 감정 속에 이야기와 사건이 진행되는 아주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편집된 1분 30초가 한 장면 통째가 아니고 단순한 표현의 길이 조절이 합쳐진 숫자라는 사실을 통해 <악마를 보았다>속 인물의 행위가 매우 사실적이고 관객들에게 직설적으로 다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장경철의 살해 행위와 인체를 토막 내는 극악무도한 장면을 사실적이고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효과적으로 관객을 수현의 편에 서게 만들고 수현의 복수의식에 동참하게 만든다.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버린 수현과 그런 새로운 악마와의 대결을 즐기는 장경철. 그리고 그 두 악마의 대결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수현에 편에 서서 복수의식을 바라보며 잔인한 영상에 괴로우면서도 수현의 행위를 통해 복수와 응징에 대한 카타르시스 역시 느낀다. 수현의 장인어른과 처제는 그만두라하지만 수현과 수현에 편에 선 관객의 감정은 멈추지 못한다. 나 역시도 수현을 말릴 수 없었다. 짐승을 잡기 위해 인간이 짐승이 돼서 되겠냐는 오과장(천호진)의 말 역시 이미 인간과 짐승의 구별이 힘들어진 수현과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과연 악마는 누구일까. 영화의 제목인 <악마를 보았다>는 누가 하는 말인가. 그 것은 장경철을 본 수현의 말일 수도 있고, 수현을 본 장경철의 말일 수도 있다. 또한, 점점 악마로 변하는 수현과 수현의 행위를 보며 인간과 짐승이라는 구별의 선이 없어진 나 자신 마음속에 또 다른 악마를 보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악마를 보았다>의 주인공인 이병헌과 최민식 두 배우 모두 좋은 연기를 펼친다. 이병헌은 터질 듯 말 듯 한 수현의 내적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복수를 행하는 순간에 수현의 표정은 분노의 표출이 아닌 공허와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5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최민식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로 사이코패스의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어 캐릭터에 힘을 실어준다.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는 조명과 색을 사용한다.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냉혈한 복수를 하는 수현이 등장하는 장면과 수현의 공간은 블루의 색감이 대부분 사용되었고, 인물 조명 역시 블루이다. 반대로 무자비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장경철의 공간과 인물 조명은 옐로우이다. 장경철이 타고 다니는 학원 승합차 역시 옐로우이고, 장경철의 공간 속 연장이나 살해 도구들 역시 옐로우의 느낌이 나는 나무 재질이나 녹이 슨 갈색계열이다. 옐로우의 색감이 도는 화면은 핏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더욱 자극적이다. 영화는 이렇게 인물과 공간간의 색 대비를 통해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캐릭터에 느낌을 더욱 부각시킨다. 공간감과 공간의 깊이감을 주는 조명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영화는 상상력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창작되어지고, 상상력 역시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잔인하고 차마 인간이 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영화 속 인물들의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행위들이 우리의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그러한 현실이 존재했었고, 또 등장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깝고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