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무실 여직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밥을 먹지 않는다.
멀쩡한 점심을 왜 굶느냐고 했더니 급하게(?) 다이어트를 해야한단다.
내 보기에 비교적 날씬한 20대 초반의 처자였는데 무슨 다이어트?
그리고 다이어트라는 것을 과연 급하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 왜 급다이어트를 해야하는지 물었다.
"여름에 캐러비안 베이 가서 비키니 수영복 입어야 하거든요... 아랫배가 좀 ㅎㅎ..."
그 여직원이 다이어트에 성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아마도 실패했을 듯) 고작 여름 휴가 때 하루 놀러 가기 위해 여러달을 밥도 굶어야 하는 것이 좀 인상적이면서 잠시 케러비안 베이라는 곳이 궁금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인공파도를 타기 위해 커다란 풀장에 콩나물 시루 처럼 모여서 환호성을 지르는, 뙤약볕에서 한시간 이상을 기다려 거대한 순대처럼 생긴 미끄럼틀을 탄다는 캐러비안베이에 갈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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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난히 덥다.
연일 폭염주의보에 밤엔 이른바 열대야라는 것이 찾아와서 찬물로 샤워라도 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 힘들다.
캐러비안베이 가기 하루 전 날 동행인이 말한다.
"미끄럼틀 한번이라도 타려면 빨리 입장해야돼. 저녁에 가방 싸놓고 새벽 4시에 일어나자 마자 출발하자구.
'헐... 황산벌 새벽전투에 출정하는 백제군도 아니고... 비장하구만...'
미지근하고 축축한 열기에 잠을 자는둥 마는둥하고 새벽 4시반쯤 일어나 5시에 집을 나섰다.
한낮의 열기가 흔적처럼 남아있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수면부족의 노곤함이 가시질 않지만 동이 터오는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늘 상쾌하다.
휴게서에 기름을 넣고나서 우아하게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실은 아침부터 너무 더워서 그닥 우아하진 않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지나 경부선에 합류하여 신갈 분기점에 다다른다.
시원한 드라이브가 끝나고 아침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강릉방향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하는데 차량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있어 언제 진입할 지 모르겠다.
혹시 이 모든 차가 전부다 케러비안베리로 가는 걸까?
더딘 진행에 지루해진 나는 조수석에서 닭처럼 졸고 있는 동행인에게 퀴즈를 낸다.
"어이~ 경기도에 사는 터프가이 삼총사 이름 알아?"
"그런게 뭐여... 몰라..."
"첫번째 터프가이 이름은 '스티븐 신갈'이여..."
"푸하... 웃기고 있네.. 두번째는 뭔디?"
"두번째는 '아놀드 수원제네거'라고..."
"ㅎㅎ 말되네... 다음은?"
"세번째는 '장 끌로드 분당'이야..."
"ㅎㅎㅎ..."
이런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엄청난 슬로비디오로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하지만 차는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다.
8시는 고사하고 10시 전 입장도 어려울 듯하다.
놀이공원에 들아가기도 전에 벌써 힘이 빠진다. 하루가 매우 힘겨울 듯 하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에버랜드 입구에 다다르니 이미 햇살이 가득 퍼져있다.
정문 앞 1주차장은 이미 가득차 있고 입구에서 수 킬로 떨어진 제5주차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다시 한번 힘이 빠진다. 이러다 시작도 하기 전에 놀 힘이 다 빠지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머나먼 5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앙상한 표지판이 줄지어 서있는 정류장에 유치원 학동들 처럼 줄을 지어 섰다.
놀이공원에 입장도 하기 전에 모든 주위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배급빵을 타는 난민들 처럼 우리는 뛰어가서 셔틀버스에 오른다.
입구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매표소와 입구에도 마치 지남철에 붙은 쇳가루 처럼 사람들이 가득하다.
눈 돌릴 곳도 없이 너무 많은 군중을 보고 있으려니 몸 보다도 눈이 먼저 피로해진다.
하지만 피로를 느끼는 건 나뿐인 듯 모두들 즐겁고 기대감에 찬 눈빛들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며 줄이 짧아지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