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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엄마

이정희 |2010.09.03 03:04
조회 485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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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 6개월 차

 

29년을 살아온 그 곳 그 집을 팔 때의 기분이란

실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히 알 수가 없다

 

그 곳에서 초중고대학까지 졸업하고

이십대의 모든 시절을 먹고 자고 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집은 내 놓자마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눈 깜짝할 새 팔려 나갔다

 

손이 부지런한 엄마 덕에

20년을 버텨 온 집은 새 집처럼 반짝거렸고

새로 들어올 댁에서는 하루라도 날짜를 당겨

입주하고 싶어했다

 

아빠가 직접 지은 우리 집

시멘트 벽지 싱크대 목조 장판 샹들리에 욕실타일 현관문

복도 대리석 자동센서 창문틀 강화유리 베란다 옥상물탱크

 

하나 하나 당신네들의 손이 닿았던 그 곳을

이젠 다른 이들이 만지고 쓰다듬겠지

 

키웠던 강아지를 딴 집에 보내도 서글픈 법인데

하물며 20년 넘게 산 이 집을 다른 안주인에게 넘겼을 때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뉴타운 덕에 후덕한 값을 받은 아빠는

연신 새로 이사갈 집 구경에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그러질 못했다

 

이사를 가는 날까지도

새 집주인에게 집안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며

마치 3박4일 렌트 해 주는 별장 주인처럼

못내 미더운 눈치였다

 

-

 

엄마와 아빠는 아빠의 사무실이 있는 망우동으로 이사를 했고

언니와 나는 우리집의 3분 거리에 있는 주택으로 짐을 옮겼다

 

나와 언니는 그렇다쳐도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동네 살이를 하게 된 엄마는

매일 매일이 곤욕이었다

 

지나가면 엉덩이 붙이고 눌러앉아

반찬거리 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채 수달 떨던

흑석 시장과는 달리

엄마네 집 앞엔 공룡만 한 이마트가 떡 하니 있다

 

상가건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용한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던

옛동네와는 달리

엄마네 집 앞은 체인점 맥주집과 단체석 가든이 즐비하다

 

저녁 6시만 되면 네온사인 가득한 불야성이 된다

 

당시 엄마는 젖도 안 뗀 새끼가 어미개를 잃어버린 것처럼

초조하고 우울해했다

 

그리고 아빠는 매일 새로운 맥주집을 찾아다니는 재미에

엄마를 모른 척 했다

 

그러자 이주일에 한 번꼴로 김치 핑계를 대며

김치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흑석동집에 들르기 시작했고

엄마는 흑석동에만 오면

생기가 넘쳐 혈당이 쭉쭉 내려가는 호전을 보였다

 

-

 

이사하고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엄마네 집엘 가 봤다

일 핑계 대고 한 번도 들른 적 없던 그 곳

 

택시비만 만육천원이 넘는다

 

엄마와 나의 만남의 장소는 역시나 이마트 앞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내 새끼-하는 표정으로

근처 식당에 들어가 밥 부터 먹이신다

 

난 배고픈 척하며 비빔밥 한 그릇을 열심히 먹는다

엄마가 시킨 국밥까지 몇 수저 더 뜬다

 

먹고 있는데도 더 먹으라고 -

엄마는 한 수저도 뜨지 않은 국밥 그릇을

어느 새 내 코 앞에 밀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엄마는 망우동 집이 많이 낯설겠다

 

거대한 저 건물들 사이에서

작고 삐쩍마른 50대의 여자

 

그 여자의 그림자는 이 길거리에 녹아들지 못하고

자꾸만 허공을 떠 돈다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제는 엄마 아빠의 집이라고 부르는,

그 집이 마치 3D 영화에 나오는 가상 현실 같다

 

안방 티브이 위에 걸린 이제는 10년이 된

촌스럽기 그지없는 가족사진

'아 나 대학 갔다고 아빠가 기념이라고 찍자했던 그 사진이지'

 

픗- 오래된 장맛 같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엄마가 자두를 씻는 동안

엄마 베개를 베고 누워 사진을 바라본다

'엄마는 매일밤 허기진 마음을 이렇게 달랬겠구나'

 

자고 가라고 이부자리를 피던 엄마를 뒤로 한 채

엄마 고쟁이를 벗어 고이 접어 놓고

나는 다시 흑석동 집으로 와 버렸다

 

6개월만에 처음으로 막내딸이 집에 온다고

선풍기 사다놓고 고기 재워놓고 나 입을 잠옷까지 데려놓았던

 

50대 여자,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좀 더 있다가는 조짐이 이상하겠다싶어

얼른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나선다

 

잠옷 바람으로 뒤따라 나오는 엄마

우린 또 다시 이마트 앞까지 걸었다

 

'아침에 빵 먹지마'

'언니가 괴롭히면 엄마집으로 와'

'너희집 김치 다 떨어졌을텐데'

'이 시간에 택시 타면 위험한데'

'선풍기 너무 얼굴에 틀어놓고 자지 마'

'여름엔 잘 먹어야 돼 군것질도 그냥 다 해'

'그래도 집 밥을 먹어야 되는데'

'니가 입이 까다로워서 내 밥 멕여야 되는데'

 

생이별하는 연인들도 이만큼은 서럽겠지

 

엄마를 두고 성큼 성큼 걷던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종달새 같은 엄마의 넋두리에

심장이 울컥

딱히 할 대답이 없어서 막막

설명하기도 벅찬 감정 덕에 코끝이 시큰

 

금방이라도 왈칵할것 같은데

망할 택시는 타이밍 좋게도 참 안 잡힌다

끝끝내 자고 가라며 가방을 끌어 당기는 엄마를

좋게 두고 오면 어디가 덧나서

 

'내일 일 있다고!'

괜히 심술을 부린다

 

엄마는 그제야

에휴 그럼 피곤하게 오지말고 주말에 와서 자고가지한다

 

쭈삣거리던 나는 뒤에 있고

가열차게 택시를 잡는 엄마는 내 앞에 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역시나 이곳은 택시가 영 안 잡힌다

 

그러자 엄마는 그 새를 못참고

또 다시 일장연설이다

 

'그래도 밥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엄마네로 와

 너가 오기 전에 전화만하면 엄마가 밥 차릴 수 있잖아'

 

..........

.........

........

.........

.......

 

그러다말고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엄마의 옆 얼굴이 보인다

 

퉁퉁거리며 나는

'왜'

 

그러자 떨리는 대답

'아니 다른게 아니구 엄마가 요새 드는 생각인데

 내가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너희가 막 큰 소리치면 엄마가

 

 

 

되게 서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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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택시 번호판 넘버를 외우는 사람

 

나는 그런 엄마를 눈 앞이 흐려져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때까지 백미러로 보고 또 보았다

 

동네에 도착해 택시비를 내려고 가방을 보니

언제 찔러넣었는지 신사임당 4장이 고이 접혀있다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잘 도착했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왜 이리 금새 도착했냐고 묻길래

기사 아저씨가 심하게 밟아서 오는 내내 후덜거렸다고

싱겁지도 않은 농담 한 마디 더 했을 뿐

 

사고 날 뻔 했다는 말에

엄마는 그 기사 아저씨를 향해

세상의 모든 욕을 퍼 부었다

 

-

 

하루도 안 자고 가 버린 나 때문에

엄마는 오늘밤 많이도 뒤척이겠지

 

비가 오는 밤이니

다른 날보다 무릎이 더 시려웁겠지

 

나 온다고 아침에 사다두었던

작은 선풍기

어디다 두어야 할 지 몰라

내일 아침 베란다를 두리번 거리겠지

 

싸 주려던 김치 포기를 내내 바라보며

얼른 흑석동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겠지

 

-

 

그런 엄마 덕분에

나는 지금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

 

긴 밤이다

 

하늘과 땅 사이로 떨어지는

비 한방울의 무한한 중력보다

 

망우동과 흑석동 사이를 가로지르는

피 한방울의 무조건적인 인력에 

 

나는 지금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

 

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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