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등의 동물들은 갓 태어났을때 눈을 뜨지 못한다.
심지어 새들은 기본적인 털도 없이 태어나는 종류도 있다.
물론 나자마자 뛰어다니는 사슴과 얼룩말,고래,송아지등도 있긴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보다 나약하게 태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자라면서 점점 눈도 뜨고 털도 생기고
뛰고 날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 갓 태어났을 때에는 시력이 희미해서 멀리 보지 못한다.
그러나 점점 자랄 수록 시력이 정상이 되어 눈앞에 부모부터 알아보고 멀리멀리 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자연에 나타나는 탄생을 보면
신앙에 있어서 거듭남도 쉽게 이해 할 수 가 있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거듭났을때
처음에는 자기가 태어난건지 죽은건지 자각조차 힘들며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거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사무엘이 어려서 사환으로 일할 때에 하나님이 불렀어도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꾸 자길 부르는 소리가 나니까 제사장 엘리에게 가서 불렀냐고 물어보니
이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이 있는 엘리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임하셨슴을 알고 어떻게 할지 가르쳐준다.
안타까운 것은 엘리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었지만
살면서 믿음을 실천하지 않게 되어 그 후대가 모두 저주받아 비명횡사한다.
물론 본인도 비보에 넘어져 즉사한다.
우리는 성경과 자연현상 그리고 사회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과 이치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여서 처음부터 완전한 믿음이 되는것이 아니라
나무처럼 작은 씨앗에서 시작하여 점점 자라게 된다는 말이다.
씨앗은 자라기 쉬운 땅이 있어야 하고
자라는 데 필요한 물이 있어야 한다.
또 대량 수확을 원한다면 지속적으로 밭을 관리하여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비록 힘들고 지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그대들은 점점 자라서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약하고 바람에 흔들리지만
나중에는 태풍에도 뽑히지 않는 강건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다.
주님이 눈을 뜨게 해준 한 봉사에게
예수님이 묻기를 무엇이 보이느냐고 하자
그 눈먼 봉사가 하는 말이 나무같은 것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잠시후 다시 무엇이 보이느냐 하자 사람이 눈앞에 지나간다고 했다.
사람은 다 나무 처럼 태어나서 자라고
영적인 거듭남 역시 주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서 자라는 것이다.
단번에 확 무엇을 얻고 단번에 확 달라지는 그런 믿음의 세계는 아니라는 거다.
처음에는 실수도하고 실패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돕고 모여야 한다.
군대가 흩어져 싸우지 않고 모여서 훈련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초보는 교회에 나가야 한다.
혼자서는 그 훈련이 힘들고 실패의 확률이 높다
물론 교회간다고 역시 확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교회가면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부족함 때문에 환멸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아의 방주를 바라봐야 한다.
방주속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짐승들이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방주로 들어왔던 것이다.
짐승들과 일년동안 좁은 방주에서 있어보라
온갖 소음과 냄새에 기절할 지경이 될 것이다.
노아의 가족들이 일년간 그렇게 지낸것은 정말 대단한 인내다.
우리도 교회에서 그러한 냄새와 소음과 짜증과 다툼과 요란함을 보게 될 것이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을 위해 싸워야 하지만 군기라는 것은 아군을 몽둥이로 패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군을 향해 총질할수는 없다.
군대의 목적은 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것이고
아군을 공격할 순 없기 때문이다.
저녁을 앞두고 리슈빌에서 느티나무집 올림